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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문고읽기017] 장자 -장자

 

<독서일기>

중국 사상의 양대 산맥인 

유가 유교는 공자로부터 시작되어 맹자와 순자로 계승된다.

도가 도교는 노자로부터 시작되어 장자로 계승된다.

유교의 핵심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으로 즉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학문이다.

도교는 노장사상·역리(易理)·음양·오행·참위(讖緯)·의술·점성, 그리고 불교와 유교사상까지 받아들인 민간신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교가 '성리학'으로 발전하였다. 성리학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경전 일곱을 사서삼경이라 한다.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주역)이다.

《장자》는 도가 계열의 책으로 여러 사람의 글들을 편집한 것이다. 33편이 현존하며, 내편(內編), 외편(外編), 잡편(雜編)으로 나뉘는데, 전통적으로 장자 자신이 이 책의 내편을 썼고, 그의 제자와 같은 계열의 철학자들이 외편과 잡편을 썼다고 본다. -여러 자료를 최용우가 짜집기 

 

<목차>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장자 (莊子) 

장자는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자(字)는 자휴(子休)이다. 그는 송나라 몽(蒙) 사람으로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도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보면, 장자는 전국시대인 B.C.300년경부터 맹자보다 약간 뒤늦게 나타나 활약한 듯하다. 그는 고향인 몽에서 칠원을 관리하는 말단 벼슬아치로 근무하는 한편, 논리학파의 거물인 혜시와 친하게 지낸 박학다식한 학자요 논객이었다. 초나라 위왕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으나, 그는 자유를 속박당하기 싫어 이를 거절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유유자적한 생애를 보냈다. 

 

무위를 주장했던 장자, 어쩌면 노자보다 더욱 자연스러움을 주장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처세술 가운데 하나는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고, 아무 쓸모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득도?하여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공자의 덕와 너무 다른 주장이다. 진정한 자유란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음이다. 장자 내편의 4편인 인간세의 13번째 이야기는 수천년 동안 잘리지 않고 신목으로 자리잡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오랫동안 아무 해를 받지 않고 살아 남기를 원한다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어서는 안되고, 누구의 필요에 대해서도 무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 번 들어보자.

제4편 인간세 중에서 

장석(匠石)이 제(齊) 나라로 가다가 곡원이란 곳에 이르러 사당의 신목(神木)으로 심어져 있는 참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뒤덮을 만하였고, 그 둘레는 백 아름ㅁ이나 되었으며,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이고, 열 길이나 되는 곳에서부터 가지가 나와있었다. 그것도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것이 수십 개나 되었다. 구경꾼들은 장터처럼 모여 있었다. 장석은 돌아다 보지도 않고 멈추는 일도 없이 지나쳐 버렸다. 제자들을 실컷 그것을 구경하고 나서 장석에게 달려가 말했다.

“제가 도끼를 손에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뒤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을 본 일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선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아서라, 그런 말 말아라. 쓸모 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곧 썩어 버리며, 그릇을 만들면 곧 깨져 버리고, 문을 만들면 나무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어 버린다. 쓸 만한 곳이 없어서 그처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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