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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의 <게르음>을 읽다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 몇구절 함께 나눕니다.

1.노동은 하나님의 큰 축복

사람들은 노동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노동 자체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다만, 노동에서 경험하는 열매 없음과 고통이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며,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도 순종을 통한 부지런한 성화의 삶으로 더욱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2.민족을 향한 가슴앓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이 민족을 생각할 때, 늘 마음 아픈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너무나 성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인류역사상 합리적이지 않은 민족이 국민소득 만 불을 넘은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만연해 있는 부정직을 보십시오. 부동산 투기로 한번에 몇 십억씩 벌고 세금을 포탈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실한 삶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우리 민족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가지 곳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새로운 정신사적인 물줄기를 만들어 이 세상의 탁류 속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남들만큼만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서는 이 세상에 아무 감동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그 분의 이름을 빛내며 사는 길은 이 세상의 기분을 훨씬 뛰어 넘는 현저하게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진전 없는 삶

게으른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무엇을 쏟아 내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진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헌신하거나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목표가 없습니다. 물론 게으른 사람에게도 꿈은 있습니다. 그에게도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있고,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불태워서 매진하는 실재적인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목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위한 실제적인 삶은 싫고 단지 그것 자체만 원할 뿐이라면 그것은 한낱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다.

4.목표와 희망

가난해서 지게질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지게로 물건을 운반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리어카를 사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면 그것은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나가던 고급 승용차를 보고 자신도 당장 그런 차를 타고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희망사항입니다. 목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서 있고,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단계에 있어, 꿈꾸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데는 비용이 안 들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비용이 듭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곡 희생하여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5.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회생활

목표 없이, 규칙적으로 일상적인 삶을 고단하게 되풀이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고사시키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저미는 기도제목도 있을 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기 위해서는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간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삶을 계속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있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교회 생활’입니다.

6.환경은 우리편이 아니다

환경이 좋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환경은 영원히 우리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극복하고 싸우면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잘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더구나 영적 게으름은 자신의 영혼을 망가뜨려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뜨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뜨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릇된 모본을 보여, 그 사람의 신앙생활까지도 망가뜨립니다.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7.빛나간 자기 사랑

게으른 것이 나쁘다는 것은 동서고금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왜 게으른 사람은 스스로의 게으른 삶을 정당화하고자 끊임없이 변명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게으른 사람은 본질적으로 빗나간 자기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태도의 옳지 못함을 인정하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충실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기 사랑입니다. 사실 게으른 사람이라고 해서 힘든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의 궁극적인 뿌리는 ‘빗나간 자기 사랑’입니다.

8.게으른 사람 치고

게으른 사람 치고 탁월한 영성을 소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탁월한 영성을 소유했던 사람 가운데 게을렀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게으른 사람에게 그런 아름다운 선물을 주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은혜를 주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9.인간과 노동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지 않으시고 입히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눅12:28-29)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리라고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10.지혜로울 때, 부지런함도 빛난다

부지런함은 단지 기계적인 성실함과 근면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과 함께 지혜로움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쓸모 없이 낭비되던 시간들을 정돈하여 보다 중요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것이고, 급한 일과 꼭 해야할 일들을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소유한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주어진 일을 효과적으로 빨리, 잘 해내는 것이 시간을 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위하여 보다 나은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사람의 특징이자,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11.성경의 진리

성경의 진리는 마치 보석과 같아서, 어둠 속에서 볼 때에는 한낱 유리 알갱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햇빛에 비춰 보면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할 때에는 진리를 보아도 그저 무미 건조한 말씀에 지나지 않지만, 지식의 빛이 비치게 되면 우리는 그저 굴러다니는 구슬처럼 보잘것없이 생각했던 말씀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됩니다. 게으름에 관한 잠언의 많은 교훈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는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오색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보석과 같이 느껴집니다.

12.짐승과 방불한 삶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을 단장하고 하루 살 채비를 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은 일의 노예가 되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허덕거리며 인생의 보람이나 목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든지, 자기의 영혼을 돌아본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시간 되면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일터로 달려가고, 다시 시간 되면 돌아와서 세수하고 밥 먹고 잠옷 바람으로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잠들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거의 동물 수준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아주 커다란 죄악입니다. 이것은 받은 구원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는 것과 방불한 삶입니다.

13.서서히 죽게 하는 독, 게으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름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게으름의 뿌리가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핀다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지 속에서 이 게으름과 동침하며 침륜에 빠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칼을 든 자객을 왕에게 보내는 것만이 왕을 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음식에 조금씩 독을 넣어 서서히 죽이는 것도 왕을 죽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여기서 큰  칼을 들고 덤벼드는 적이 살인, 감음, 거짓말, 배교 같은 것이라면, 서서히 우리를 고사시키는 독은 바로 게으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게으름에 대해 잠시도 주의를 돌려서는 안됩니다.  

14.그 사람의 욕구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15.예수님의 모본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 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산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땀이 핏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지도록 자기를 다 소진하며 기도하시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일하게 살 동안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우리를 안일하고 이기적인 삶으로 이끌고 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게 함으로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 게으름은 우리의 삶에서 싹부터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이 게으름과 야합하려는 자기 자신을 엄중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16.우리의 계산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산술적인 계산을 깨뜨리며 역사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기에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일에 뛰어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게으름을 버리고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결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부지런한 삶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고통과 인내가 아무리 쓴 것처럼 보여도, 게으르게 살다가 정욕에 삼킨 바 된 상태가 되어서 지불해야 할 영혼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7.시간의 소중함

우리는 누가 100만원만 달라고 하면 안색이 변하여 돌아서면서도, 시간 좀 내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관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큰 실수입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시간은 한번 쓰면 다시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에게도, 게으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길이로 지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모두 시간의 소중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타오르는 열망을 펼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18.연약함의 핑계

자기가 태만해져서 의무를 성실히 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라고 핑계 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파렴치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흔히 연약함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게으름의 악인데,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연약함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포장하여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게으름에 부정직을 더한 것입니다.

19.마음을 다하는 사람에게 부어지는 지혜

연장의 역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오래 전에,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는 거의 모든 연장의 기본 형태가 마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연장의 역사를 보면 열심히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것이 만들어졌지, 조금만 힘들어도 끈기 없이 금새 털고 일어나 이곳 저곳 기웃거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모두 실어 최선을 다하며 부지런히 살 때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연장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20.책의 가격

저는 적어도 필요한 책을 살 때만큼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격을 보고 책을 사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리를 읽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비싸서 읽어야할 책을 읽지 않거나, 가격이 싸서 읽지 않아도 될 책을 읽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1.분명한 목표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도우셨는지가 분명해지고 자신이 그 목표대로 잘 살았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명백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감사든 회개든 선명해지며, 회복도 분명하고, 성화의 진전도 뚜렷해집니다.
그런데 목표 없이 막연하게 부지런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하더라도 TV프로그램 한편 보고 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돼지가 깨끗이 씻고 나서도 더러운 구덩이로 다시 돌아가고, 개가 자신이 토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게으른 옛 삶을 다시 반복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벧후2:22)

22.살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

며칠 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얘야! 내가 왜 널 계속 살려 둬야 하니?”라고 물으시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직은 꼭 살아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꼭 살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23.그리스도인의 삶의 윈칙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은 모든 것을 과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 밥을 먹는 것, 여가를 즐기는 것, 휴식을 취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24.게으름과 잠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그 목표에서 빗나가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싫습니다.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붙는 인생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잠은 목표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꼭 완성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아침 일찍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일찍 깹니다. 분명한 목표 의식 없이 그냥 기계처럼 시간에 쫓겨서 생활하기 때문에 늘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든 것입니다.    

25.나는 고3이다

저는 나태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고3이다’라고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고3은 모든일에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고3은 여행을 가고 싶어도 ‘대학에 들어가서 하자’ 하고 참아야 하고,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대학에 들어가서 사귀자’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쉬고 싶고, 놀고 싶어도 ‘천국 가서 하자’하며 참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가여야 하는 종말론적 긴장입니다.
고3이 모든 즐거움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하듯, 우리도 이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26.낭비 없는 인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건강과 물질과 시간과 열정으로 당신을 섬기기를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내어놓는 일이 힘든 것은 우리 안에 게으름이 자리잡고 그 자원들을 하나님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해 쓰자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27.잠자는 즐거움

필요 이상의 잠을 자는 것은 방탕입니다. 우리는 흔히 동물적인 삶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자고 싶은 대로 다 잔다면 그것은 동물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돼지가 자명종 틀어 놓고 자는 것 보셨습니까?

28.하나님의 주인공

게으른 신자가 육체의 요구에 굴복해서 푹 자는 동안 충성스러운 신자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자기와 싸우며 기도합니다. 게으른 신자가 고단하다는 이유로 따뜻한 이불 속에 있는 동안 충성스러운 신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와서 봉사합니다. 게으른 신자가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웃고 있을 때, 충성스러운 신자는 말씀을 섭취하고 은혜로 마음을 채웁니다.
이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똑같이 대우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전자의 사람은 항상 엑스트라였고, 후자의 사람이 늘 주연 배우였습니다.

29.요구하는 것 이상을 하라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일에 실패하는 사람은 용서해도, 출퇴근에 있어서 실패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지만, 출퇴근의 문제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고용한 사람에게는 우리의 1분이 모두 돈인데, 출근 시간에 늦게 오고 퇴근 시간에는 시간이 되기도 전에 몰래 살금살금 퇴근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빛 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빛 된 존재로 살기 원한다면, 직장에서 요구하는 시간이 8시간이더라도 10시간을 투자할 마음으로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일도 남보다 완벽히 하면서 남을 돕고 복음까지 전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30.은혜의 하나님

이 세상에는 간혹 눈먼 돈이 찾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경품을 타기도 하고, 우연히 산 복권이 당첨되기도 하고, 헐값에 사 놓은 집의 값이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 생활에서는 눈먼 은혜란 없습니다. 은혜를 사모하지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도, 게으른 삶을 고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복권 당첨되듯 커다란 은혜가 내게만 툭 떨어져 나를 옭아매던 영적 문제들을 한 순간에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다고 해서 수수방관하며 구경만 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든 선한 목표를 쫓아 살아 보려고 몸부림 칠 때, 우리를 붙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택한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계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31.영혼의 싫증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운동과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읽고 도전을 받는 것은 쉬워도 오래된 자신의 식습관을 고치고 몸소 운동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일은 쉽지 않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름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깨닫고 찔림을 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삶을 돌이켜 부지런히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게으른 습관을 버리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삶을 살도록 내적 동기를 제공해주는 영혼이 그러한 신앙적인 삶에 쉽게 싫증을 내기 때문입니다.

32.감화력이 없는 고집

흔히, 고집 센 사람은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강함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총과 칼에 의해 정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칼이 아무리 밟고 지나가도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면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총칼이 아닙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힘은 감화력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은 감화력으로 세상을 지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들고 설치는 베드로를 말리고, 무기력하게 병사들에게 끌려가셨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그 발달한 병기를 가지고도 지배할 수 없었던 헬레니즘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배하셨습니다. 오직 거룩한 은혜와 인격적인 감화로써 말입니다.

33.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은 그 자체로 악의 온상이 됩니다. 잠언은 게으른 사람을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잠15:19)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에게는 늘 부정의 소지가 있습니다. 데구나 게으른 사람은 잡담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누설할 위험이 있습니다. (잠20:19)
하지만 무엇보다 게으른 사람을 피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분발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고 있다가는 사업의 중요한 기회들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고통이 됩니다.

34.실천을 통해 맛보는 신앙의 진수

기독교신앙이란 실천을 통해서 그 진수를 맛보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당위성, 기도생활과 말씀 생활의 필요성, 성화의 길 등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진수는 단지 책상에 앉아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할 때가 아니라 구도자적인 추구로 그렇게 살고자 몸부림 칠 때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진수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삶 속에서, 기도의 진수는 기도를 맛보는 자리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에 관한 책을 읽고, 전도하라고 하면 전도 많이 한 사람 데려다가 특강 듣고, 거룩해지라고 하면 거룩에 대한 강의에 참석하고, 충성하라고 하면 충성스럽게 산 사람들 데려다 간증 듣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신앙을 즐기는 것이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스스로 살아본 만큼 깊어집니다.
삶의 영역을 떠난 신앙은 의무를 저버린 신앙이며, 의무를 저버린 신앙은 한낱 영적 유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