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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영성의 실제를 경험하는 길>을 읽다

이 책은 정원목사님이 가장 첫 번째로 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영성>을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낸 책입니다. 이미 읽고 독서일기를 쓴 책이지만 다시 한번 읽으면서 각 단원을 한 줄로 요약합니다. 단원을 한 줄로 요약하는 방법은 중요한 책을 읽을 때마다 제가 쓰는 독서방식입니다.

1.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거기에는 따뜻함이 있고 부드러움이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깊은 평온이 주의 임재 앞에서는 흐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나누는 것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2.오늘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 많은 분열과 싸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슬퍼하시는 문제이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싸우고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싸워야 할 중요한 문제라기 보다는 정말 시시한 것들을 가지고 싸웁니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싸웁니다.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안다고 화를 냅니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분노합니다. 그들은 교회를 위한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하여 열심히 분노하는 것입니다.
3.기독교의 기초이고, 영성의 시작이며,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주님을 만지는데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실제적으로 주님을 만질 때 변화가 시작되고 주님은 그러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나 신앙의 지식이나, 신앙의 역사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주님 자신을 간절히 구하여 만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져본 일이 없다면 아직 신앙생활을 시작도 안한 것입니다.
4.섣불리 자신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준다고 해도 우리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 자신을 붙잡아야 합니다.

5.오늘날 이 시대는 극히 내면이 공허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다 외형적인 만족과 쾌락을 구하며 그리하여 그 내면의 심령은 심히 외롭고 허무하고 비참합니다. 그런데 외형적인 측면만을 중시하는 이 세상의 문화가 기독교에도 깊숙이 침투하여 내적인 생명을 상실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내면적인 것으로서 그 영혼이 눈을 뜨고 그 영 안에서 주님과 내적으로 연합되며 이에 따라 생명적인 변화와 성숙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풍성한 삶의 열매와 봉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6.예배의 중심은 주님의 임하심입니다. 주님의 살아계신 임재가 풍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영적 유익이 없습니다.
7.왜 기도가 아름다운가 하면 그것은 우리가 기도로 교제하는 그분이 아름다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8.예배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은 찬양이며 찬양은 신자가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찬양을 드리면 미움과 두려움과 근심의 영들이 떠나가며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심령이 깨끗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찬양을 몹시 좋아하고 잘 부르지만, 그의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드리고 있는 찬양이 정말 영적이며 실제적인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9.진정 주님께로부터 임명받은 주님의 종이라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오직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알며 오직 주님만을 기대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그의 전부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 사역자는 아무 하는 일이 없지만 그냥 그 자체만 가지고도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주님의 종이라 하면서도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신의 계획과 재능과 수단과 방법으로 열심히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 바뻐서 주님을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현대식 미려한 성전(?)을 세우고, 크리스탈 강대상을 들여놓고, 숨소리조차 세미하게 들리는 최고급 엠프시설을 하고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습니다. 어떤 면에서 현대에 있어서 전도의 가장 큰 능력은 주님의 능력이 아니고 건물의 힘인 것 같이 보입니다. 크고 멋진 건물에는 전도를 하지 않아도 새신자가 계속 밀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의 힘이지 주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10.예배를 드리면서 때로 성도들은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사랑합니다'하고 고백을 하거나 '우리는 하나'라고 노래하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면 한 사람은 60평의 궁궐 같은 아파트로 돌아가고 그의 손을 잡았던 한 사람은 지하의 셋방으로 돌아간다면 이것은 진정 하나됨일까요?
물론 다행스럽게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지하 셋방에 사는 사람은 그런 부자가 다니는 교회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두 벌 옷과 두 개의 구두를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이 표현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지만, 남는 것에 대하여 나누지 못하면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의 얼굴을 대하기가 부끄러울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 초라한 개척 교회와 대형 교회의 풍성함을 보면 과연 교회가 하나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역자는 순전히 생존을 위하여 고통하고, 어떤 사역자는 좀 더 수준 높은 고통을 겪습니다.

11.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영적인 모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를 마치기가 무섭게 열심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남편 자랑이나 험담, 유행하고 있는 연예계 가십, 부동산 투기 이야기, 맛있는 음식점이야기가 나누어지는 것이 보편적인 교회의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예배가 끝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12.어떤 프로그램을 안 하면 우리 교회만 뒤떨어지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이런 저런 훈련 프로그램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프로그램들은 그리스도와 말씀과 신앙의 진리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 어떤 자신감, 자부심과 영적인 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실체가 결여된 채 훈련과 프로그램만 마치면, 실제로 신앙에는 별 유익이 없고 과정을 이수했다는 자부심과 이에 따른 영적 교만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신앙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이나 경험이 형성되어 평생토록 신앙생활의 기준이 그 경험으로 고착화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