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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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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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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끌어모으려고 피자 내건 한국교회…
독자 '수의 노예된 언론과 닮아
자전거 일보와 언론
"신문 신규 신청시 국산 최고급 21단 기어 자전거를 드립니다."
이 문구는 몇몇 대형 신문사들이 신문 구독자를 모을 목적으로 고가의 자전거를 내놓고 거리를 오고가는 시민들을 유혹한 현수막의 내용이다. 족히 30만원은 넘을 고가의 자전거를 1년 구독료 1만원밖에 되지 않는 신문 구독을 위해 기꺼이 주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신문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자전거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신문구독에 사인을 하게 된다.
대형 신문사 중에 유독 조선일보는 자전거 판촉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혹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자전거 일보'라고 불렀다. 이 얼마 우스운 일인가. 자전거 한 대로 한국의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언론과 독자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언론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어주고 소통시켜주어 그 공동체가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조선일보와 같은 몇몇 대형신문사들은 언론의 본업에 충실하기 보다 물량공세로 언론을 장악하여 권력화하려 했다.
한국 언론시장에 '자전거 일보'가 기승을 부리자 생계의 위협을 느낀 전국의 자전거 대리점 대표들이 각 신문사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찾아가 항의를 하였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몇몇 신문사들은 자기들이 큰 양보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고가의 판촉물을 거두어들이겠노라고 했다. 지금은 자전거를 거리에서 거두어들였지만, 얼마나 갈 것인가. 또 다시 돈 많은 대형 신문사들은 탐욕스런 악마의 얼굴을 들어내놓고 언론권력의 독점을 위해 자전거보다 더 고가의 미끼로 우매한 독자들은 유혹할 것이다.
한국 교회와 피자 한판!
단풍잎이 노랗게 물들어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도 노랗게 물 드리던 지난 가을 어느 날, 우리 교회 학생부 담당 교사가 서울로 시집을 갔다. 젊은이들은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나이든 성도들만 남아 있는 시골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서울교회 전도사에게 시집 보내는 목사의 심기는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축하해 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교회 승합차에 성도들과 학생들을 싣고 결혼식이 있는 서울교회로 갔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먼저 교육관 3층 식당에 마련한 피로연 장소로 가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다과를 맛있게 먹었다. 신랑 신부를 아끼는 사랑하는 교우들의 정성이 음식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음식을 맛있게 먹었음을 물론이요, 교우들의 사랑도 함께 나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식당을 벗어나 아래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어 금방 속이 거북해졌다. 우리의 속을 불편하게 한 것은 내려오는 계단 정면에 붙어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 때문이다.
전도하는 ○○교회 어린이
1-2명 전도하는 어린이는 파리바게트 시식권, 롯데리아 시식권.
3-4명 전도하는 어린이는 도서상품권.
5명 이상 전도하는 어린이는 피자헛 한 판 시식권.
말로만 듣던 도시교회의 전도방법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전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이들은 자기가 전도해야 할 친구들의 얼굴을 피자 한판이나 롯데리아 햄버거로 보지는 않을까, 예수님 얼굴을 생각하면 기름기 철철 흐르는 피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쑥을 캐며
시골에서 특별한 놀이가 없는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주일이면 교회에 온다. 노래도 배우고 놀이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간식도 받아먹고…. 벧엘교회에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도를 열심히 한 것도,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의 간식을 바꾼 것이다.
그 때 나는 과자봉지를 높이 들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벧엘교회 어린이 여러분! 여기 과자 봉지가 보이지요? 앞으로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과자를 간식으로 주지 않을 생각이에요."
과자봉지를 쓰레기 봉투에다 밀어 넣자, 일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잠시 후 아이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간식에 연연하지 않고 교회에 나온 아이들은 상관이 없으나, 간식 받아 먹는 재미로 오는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앞으로 가게에서 산 과자나 공장에서 찍어내 해로운 음식을 우리 친구들에게 주지 않겠어요. 대신 사모님과 선생님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으로 여러분에게 간식으로 줄 생각이에요."
몇몇 아이들은 실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눈치이다. 그 달콤하고 새콤하며 혀 끝에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주는 과자를 이제 교회에서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그 날 간식으로 사모가 준비한 찐 고구마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자, 대다수의 아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갔으나, 그 중에 몇 명은 "저는 그런 거 안 먹어요"하며 받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동네 아이들 모두가 교회에 열심 나오고 있지만, 과자를 간식으로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다음 주일예배에는 1/3 정도의 아이들이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 때부터 사모와 나는 교회 옆으로 흐르는 개천의 넓은 들판에 파릇파릇 돋아난 쑥을 캤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쑥개떡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철 과일과 열매는 어김없이 간식으로 제공되었고, 요즘에는 현미 가래떡을 구워 주고 있다.
아이들의 병을 키우는 교회
요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장 아이들을 끌어 들릴 목적으로 돈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온갖 감미료와 화학첨가제로 범벅이 된 과자류를 주고 있다. 심지어 재정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교회에서는 피자와 햄버거를 배달시켜 나누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식품의약안정청과 이화여대 오상석 교수는 감자칩과 프렌치프라이 이외에 건빵, 비스킷, 시리얼, 커피, 초콜릿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여러 가지 식품에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발암의심물질 아크릴아마이드가 들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데도 교회는 생명의 주님을 고백하면서 아이들을 교회에 모을 목적으로 기계로 찍어낸 죽은 식품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66만명 중에 20여만명의 아기들이 아토피 피부병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아토피는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속병이다. 그러니까 피가 맑지 않고 장이 깨끗하지 않아 그것이 피부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90년대 들어 이렇게 아토피 신생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요즘 아기를 출산하는 70년 생의 산모들이 햄버거, 피자, 콜라, 햄, 소시지, 과자, 초콜릿 등 소위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음식을 즐겨 먹어온 세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로 찍어낸 음식에 의존해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이 땅에 아기들은 아토피 병은 안고 계속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아토피 피부병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의 발원지가 될 것이다.
자전거와 피자 한판
한 사회에서 가장 건전하고 깨끗해야 할 곳은 언론과 종교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언론이 건강하면 좋은 생각, 좋은 뜻을 모아 그 공동체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고, 종교가 건강하면 사람 살아가는 곳에 천상의 향기가 가득하여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 것이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자전거일보'로 변질된 한국의 언론과 달콤한 과자봉지와 피자 한판으로 아이들을 끌어 모으려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에 오염되었으며, 숫자의 노예가 되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목회란 숫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99마리를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길을 떠났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목회가 아닌가. 우리는 다만 길 잃은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어미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지금 여기에 서 있을 뿐이다.
언론과 종교는 참됨을 추구해야한다. 그 참됨은 부단한 자기 혁신과 참회를 통해 온다. 돈으로 진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한 대로 정론(正論)을 펼칠 수 없고, 피자 한판으로 예수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13일 14:29:48
독자 '수의 노예된 언론과 닮아
자전거 일보와 언론
"신문 신규 신청시 국산 최고급 21단 기어 자전거를 드립니다."
이 문구는 몇몇 대형 신문사들이 신문 구독자를 모을 목적으로 고가의 자전거를 내놓고 거리를 오고가는 시민들을 유혹한 현수막의 내용이다. 족히 30만원은 넘을 고가의 자전거를 1년 구독료 1만원밖에 되지 않는 신문 구독을 위해 기꺼이 주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신문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자전거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신문구독에 사인을 하게 된다.
대형 신문사 중에 유독 조선일보는 자전거 판촉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혹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자전거 일보'라고 불렀다. 이 얼마 우스운 일인가. 자전거 한 대로 한국의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언론과 독자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언론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어주고 소통시켜주어 그 공동체가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조선일보와 같은 몇몇 대형신문사들은 언론의 본업에 충실하기 보다 물량공세로 언론을 장악하여 권력화하려 했다.
한국 언론시장에 '자전거 일보'가 기승을 부리자 생계의 위협을 느낀 전국의 자전거 대리점 대표들이 각 신문사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찾아가 항의를 하였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몇몇 신문사들은 자기들이 큰 양보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고가의 판촉물을 거두어들이겠노라고 했다. 지금은 자전거를 거리에서 거두어들였지만, 얼마나 갈 것인가. 또 다시 돈 많은 대형 신문사들은 탐욕스런 악마의 얼굴을 들어내놓고 언론권력의 독점을 위해 자전거보다 더 고가의 미끼로 우매한 독자들은 유혹할 것이다.
한국 교회와 피자 한판!
단풍잎이 노랗게 물들어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도 노랗게 물 드리던 지난 가을 어느 날, 우리 교회 학생부 담당 교사가 서울로 시집을 갔다. 젊은이들은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나이든 성도들만 남아 있는 시골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서울교회 전도사에게 시집 보내는 목사의 심기는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축하해 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교회 승합차에 성도들과 학생들을 싣고 결혼식이 있는 서울교회로 갔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먼저 교육관 3층 식당에 마련한 피로연 장소로 가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다과를 맛있게 먹었다. 신랑 신부를 아끼는 사랑하는 교우들의 정성이 음식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음식을 맛있게 먹었음을 물론이요, 교우들의 사랑도 함께 나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식당을 벗어나 아래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어 금방 속이 거북해졌다. 우리의 속을 불편하게 한 것은 내려오는 계단 정면에 붙어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 때문이다.
전도하는 ○○교회 어린이
1-2명 전도하는 어린이는 파리바게트 시식권, 롯데리아 시식권.
3-4명 전도하는 어린이는 도서상품권.
5명 이상 전도하는 어린이는 피자헛 한 판 시식권.
말로만 듣던 도시교회의 전도방법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전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이들은 자기가 전도해야 할 친구들의 얼굴을 피자 한판이나 롯데리아 햄버거로 보지는 않을까, 예수님 얼굴을 생각하면 기름기 철철 흐르는 피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쑥을 캐며
시골에서 특별한 놀이가 없는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주일이면 교회에 온다. 노래도 배우고 놀이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간식도 받아먹고…. 벧엘교회에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도를 열심히 한 것도,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의 간식을 바꾼 것이다.
그 때 나는 과자봉지를 높이 들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벧엘교회 어린이 여러분! 여기 과자 봉지가 보이지요? 앞으로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과자를 간식으로 주지 않을 생각이에요."
과자봉지를 쓰레기 봉투에다 밀어 넣자, 일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잠시 후 아이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간식에 연연하지 않고 교회에 나온 아이들은 상관이 없으나, 간식 받아 먹는 재미로 오는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앞으로 가게에서 산 과자나 공장에서 찍어내 해로운 음식을 우리 친구들에게 주지 않겠어요. 대신 사모님과 선생님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으로 여러분에게 간식으로 줄 생각이에요."
몇몇 아이들은 실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눈치이다. 그 달콤하고 새콤하며 혀 끝에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주는 과자를 이제 교회에서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그 날 간식으로 사모가 준비한 찐 고구마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자, 대다수의 아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갔으나, 그 중에 몇 명은 "저는 그런 거 안 먹어요"하며 받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동네 아이들 모두가 교회에 열심 나오고 있지만, 과자를 간식으로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다음 주일예배에는 1/3 정도의 아이들이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 때부터 사모와 나는 교회 옆으로 흐르는 개천의 넓은 들판에 파릇파릇 돋아난 쑥을 캤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쑥개떡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철 과일과 열매는 어김없이 간식으로 제공되었고, 요즘에는 현미 가래떡을 구워 주고 있다.
아이들의 병을 키우는 교회
요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장 아이들을 끌어 들릴 목적으로 돈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온갖 감미료와 화학첨가제로 범벅이 된 과자류를 주고 있다. 심지어 재정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교회에서는 피자와 햄버거를 배달시켜 나누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식품의약안정청과 이화여대 오상석 교수는 감자칩과 프렌치프라이 이외에 건빵, 비스킷, 시리얼, 커피, 초콜릿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여러 가지 식품에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발암의심물질 아크릴아마이드가 들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데도 교회는 생명의 주님을 고백하면서 아이들을 교회에 모을 목적으로 기계로 찍어낸 죽은 식품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66만명 중에 20여만명의 아기들이 아토피 피부병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아토피는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속병이다. 그러니까 피가 맑지 않고 장이 깨끗하지 않아 그것이 피부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90년대 들어 이렇게 아토피 신생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요즘 아기를 출산하는 70년 생의 산모들이 햄버거, 피자, 콜라, 햄, 소시지, 과자, 초콜릿 등 소위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음식을 즐겨 먹어온 세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로 찍어낸 음식에 의존해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이 땅에 아기들은 아토피 병은 안고 계속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아토피 피부병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의 발원지가 될 것이다.
자전거와 피자 한판
한 사회에서 가장 건전하고 깨끗해야 할 곳은 언론과 종교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언론이 건강하면 좋은 생각, 좋은 뜻을 모아 그 공동체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고, 종교가 건강하면 사람 살아가는 곳에 천상의 향기가 가득하여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 것이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자전거일보'로 변질된 한국의 언론과 달콤한 과자봉지와 피자 한판으로 아이들을 끌어 모으려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에 오염되었으며, 숫자의 노예가 되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목회란 숫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99마리를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길을 떠났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목회가 아닌가. 우리는 다만 길 잃은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어미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지금 여기에 서 있을 뿐이다.
언론과 종교는 참됨을 추구해야한다. 그 참됨은 부단한 자기 혁신과 참회를 통해 온다. 돈으로 진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한 대로 정론(正論)을 펼칠 수 없고, 피자 한판으로 예수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13일 14: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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