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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더불어 사는 삶 - '시골교회'에 다녀와서

생명환경자연 박태현............... 조회 수 3321 추천 수 0 2004.06.25 15: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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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태현 / 이화여대 02학번 사회과학부

'시골교회'에 대한 자료를 여기저기서 모아 읽고 또 읽으면서 정말 궁금했다.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길래 여기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라는 궁금증을 갖고 ‘시골교회’를 찾아갔다. 서울을 벗어나고 포천을 지나 백운산 가까이 들어서면서 고요하고 묵직하게 서 있는 산과 계곡을 만났다. 그 시원한 푸르름을 보자 눈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찾아간 ‘시골교회’는 바로 그런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에 돌집이 보였다. ‘시골교회’라고 삐뚤빼뚤 써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꽤 여러 채의 돌집이 있었다. ‘시골교회’ 식구들의 힘으로 지어 올린 것이란 얘길 듣고 그저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임락경 목사님과 이애리 원장님께 큰절로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각자 자기 소개를 마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게 느렸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건 내 몸놀림과 이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놀란 내 마음뿐이었다. 산은 그대로 멀리에서 내려다보고 있고 마을도 고요하게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얼마나 조바심치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시계는 정확하게 똑같은 간격으로 제 길을 가는데 그걸 어떻게 느끼냐는 각자의 마음 상태에 달렸다며 시계처럼 살겠다는 동우 형의 말이 떠올랐다. ‘이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자.’라고 생각하니 차츰 이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나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제서야 ‘시골교회’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우리가 짐을 내려놓은 사랑채는 창이 시원하게 나 있었는데 나무로 만든 집 같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나무결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끊임없이 물이 흐르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 뭔가가 파닥파닥 뛰어다니고 있었다. 개구리였다.

우리가 짐정리를 하고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손님들이 수박과 떡을 들고 찾아 왔다. 그것들을 나눠먹기 위해서 주방을 찾아 들어갔는데, 주방은 바로 거실과 연결되어 있고 거실에서는 여러 명의 장애우들과 할머니들이 쉬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니 한 장애우는 웃기만 하고 또 다른 어떤 장애우는 벽을 향해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음식을 그릇에 담아 내놓으며 걱정이 되었다. ‘장애우가 허겁지겁 먹다가 흘리거나 체해서 다른 사람들 먹는 걸 방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정도가 정신 지체 장애우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엄청난 오해란 걸 나무 탁자에 그릇을 놓자마자 알게 되었다. 한 장애우(은경이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더니 그릇에 떡과 수박을 조금씩 담았다.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것을 벽만 바라보고 있는 장애우 앞에 놓고 떡 하나를 쥐어 주는 게 아닌가? 벽만 바라보고 있고 도대체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 같아서 나는 음식을 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 자연스러움이라니……. 동생을 챙기듯 따뜻하게 떡 하나 쥐어 주며 먹으라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 그 사람이, 우리가 다운 증후군 환자라고 비정상으로 여긴 그 사람이었다.

부엌 한쪽에 써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삶을 있는 그대로 만나렴.” 난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한 거다. 만나기도 전에 마음에 담을 쌓고 도와 줘야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거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누구를 도운 건가?  밖에서 봉수 형이 대신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대신이는 ‘시골교회’에 와서 살고 있는 선혜 언니의 아들이다. ‘시골교회’에는 다양한 식구들이 산다. 밖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어울림이 있다. 목사님과 토란을 심으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런 자연스러운 어울림이었다. 목사님이 부르시는 민요 한 자락에 우리 모두는 흥이 나고, 하나가 되고, 토란을 더욱 잘 심게 되었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거기에 더해져 흙과 내가, 나와 네가 하나가 되었다. 서로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곳 ‘시골교회’에서 식구들과 함께 밥 한끼 먹으면 볼 수 있다. 필요 없는 사람은 없었다. 목사님께 때때로 달려와 무등 타는 옹혜야(수진이의 애칭이다.)부터 봉수 형, 현수 오빠, 은경 언니까지 다들 자연스럽게 밥 먹을 때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맡아서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저녁 찬으로는 ‘시골교회’ 식구들이 유기농으로 가꾼 채소로 만든 것들과 직접 담은 된장으로 만든 국이 올라 왔다. 거기에 아까 우리가 뜯어온 취나물이 함께 올라 온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직접 기른 것을 먹는 마음은 어떨까? “자기가 먹는 것, 입는 것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생산이고 자립이다.”는 원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저녁을 마치고 뒷정리를 할 때에도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기가 가장 잘 쓰일 데를 알아 찾아가는 모습,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여덟 시부터 일요 예배가 시작되었다.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부르긴 했어도 참농부로만 는데, 목사님이 찬송을 부르셨다. 함께 찬송 부르는 목소리가 가지가지다. 그대로 재미있고 어울렸다. ‘시골교회’에서는 따로 설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목사님이라고 늘 설교를 하시진 않는다고 했다. 그날도 손님으로 찾아온 우리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를 보낸 이야기, 지금 심정, 졸리운 이야기 따위. 이야기도 각양 각색이었다. 모두들 귀기울여 남의 말을 잘 들어 주었다. 봉수 형이 내 이야기가 끝나자 손뼉을 쳐 주었다. 기분이 괜찮았다. 공동체란 이 곳에서처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누면서 어울려 사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이 혼자 살아가며 필요한 것을 다섯이 함께 살면서 공유하면 그만큼 덜 쓰고 자연에 무리를 안 주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해 물어 보는 우리에게 목사님이 주신 명쾌한 답이다. 옹혜야가 달려와 무등 타면 떨어질까 조심스레 안아 주시고, 삼십이 훌쩍 넘은 봉수 형이 “아빠, 아빠!” 하며 노래부르자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어떤 장애우가 달려와 껴안으면 따뜻하게 받아 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바로 그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과 다르듯이 남이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함께 살아도 불편없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모습과 허겁지겁 음식에 손을 대려는 태은이의 손을 가볍게 내치며 조금씩 떡을 입에 넣어 주는 목사님의 모습이 겹쳐져 내 마음에 그대로 다가온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네 손으로 일하라. 이렇듯 삶을 있는 그대로 만나라. 네게 참으로 필요치 않은 것은 구하지 마라. 그 대신 숲, 바다와 강, 단순한 인간의 정직성, 좋은 책, 가을의 색, 그리고 새벽과 같이 참으로 최고인 것들을 찾아라. 무엇을 만들든 최선을 다하라.’ 시골집 벽면에 목사님이 옮겨 놓으신 어느 분의 시 구절이다. 목사님과 시골집 식구들의 삶의 모습을 시로 표현한다면 이쯤 될 게다.

“간단하게 살려는 게 목적 아니냐, 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알고 있는데 좀더 편하게 살려고 하니까 어려운 거다. 배운다고 돌아다니면서 머리만 키우지 말고 있는 자리에서 아는 만큼만 지키고 살면 된다.” 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매서웠다. 매서운 가운데 가슴에 시원하게 길이 뚫리는 것 같았다. 여기 저기 기웃거릴 것 없이 자신을 살피고 주위를 살피며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임락경 목사님과 이애리 원장님, 시골집 식구들이 사는 모습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말고 떠나 달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다음에 올 손님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머문 자리를 정돈했다. 떠나기 전에 원두막에 둘러앉았다. 삶을 들여다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느낀 점과 앞으로의 마음가짐 들을 나누었다. 각자 느낀 바가 많았다. 사람은 그가 한 말로 평가할 게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평가해야 한다. 얼마나 진실하게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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