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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와 함께 30일

30일묵상 이현주 목사............... 조회 수 1964 추천 수 0 2014.03.27 15: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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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와 함께 하루를]


  아마도 서구사회에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만큼 영적 상상력을 발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그가 이룬 정도로, 그가 취한 방식으로, 종교와 문화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 특이한 인물에 온 세계가 전례 없이 호감을 보이고 있거니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는 “작고 가난한 사람”(the little poor man)으로 불리었다.

  세계 각처의 정원과 공원에 그의 동상들이 서 있다. 키가 크고 조용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더 친절하고 더 온유한 세상을 희망하며, 자기 어깨 위에 앉아 쉬려고 날아오는 새들을 향해 팔을 공중에 들어올리고, 숲의 짐승들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프란체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하고 벌레들을 가엽게 여기고 돌들 위로 얌전히 걷고 해와 달과 별을 형제자매로 대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그가 어떤 값을 치르고 어떤 각오로 얼마나 애를 써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 깊은 평온을 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프란체스코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낭만적인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칠고 엄격하고 혁명가다운 영혼의 항해자였다. 그는 감상적인 구원과 값싼 은혜를 전하는 사람도, 재치 있고 친절한 얘기꾼도, 서로 다투는 영혼들을 화해시키는 조정가도 아니었다.

  그는 가난이라는 은유(metaphor)를 말하며 안이하게 사는 쪽이 아니라 실제로 거칠고 가난하게 사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가 세상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 까닭은 그것들이 예쁘고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 안에서 공동의 창조주를 비추는 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적이고 다양한 수준의 영성가족을 설립하고 이끌고 보충하고 운영한 실천의 사람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속이는 자들에게는 등을 돌렸고, 자기 자신과 영적 도반들에게 요구한 문자 그대로의 실천적 가난을 가벼이 여기는 자들은 돌려보냈다.

 


  프란체스코는 1181년 무렵 아시시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는 부잣집 도령답게 으스대며 장난스러운 행실로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또한, 모험심에 부풀어 전쟁터에 나갔다가 거기서 포로가 되기도 했다.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삶으로 복귀할 마음이 없었고, 젊은 날의 꿈이었던 군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그의 인생을 크게 뒤바꿔놓은 세 가지 사건이 있다. 아버지와 오랜 친구들을 등진 대가로 그는 황폐해진 시골 교회를 재건하고 극빈한 삶을 선택한다. 그 무렵 나환자들을 만나는데, 자기 속에 있는 뿌리 깊은 혐오감을 극복하고 그들을 껴안는다. 그리고 어느 주일 미사에서, 지닌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감동받아 평생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13세기에 세상을 향해 보여준 반응으로 오늘 21세기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방법과 동기를 보여주는 특별한 인물을 만난다. 그는 가난한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하였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그의 가난은 오늘 노숙자들의 가난만큼 아프고 가혹했다.

  프란체스코와 함께 가는 이 여정은 가난과 겸손뿐 아니라 오늘 모든 영성생활인들이 마땅히 회복해야 할 연민과 자비(compassion)를 보여주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프란체스코 영성은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의 전형이 될 만하다. 그는 정책적으로 요구되고 지도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가난과 겸손에 뿌리내린 연민과 자비의 영성을 문자 그대로 살았던 것이다.

  엄격하고 영감에 찬 사람이 조용한 자신의 정원에서 나와 번잡한 세상의 우리에게 완벽한 안내자가 되고, 그의 영성생활이 굶주리고 탐욕스런 세대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범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묘한 역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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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일

 


  거룩한 성령님이 젊은 프란체스코를 사로잡는 순간이 닥쳤다.

  자기 영의 충동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때가 바야흐로 익은 것이다.

  이제 그는 여태 자신을 지배하던 세속의 관심사를 등지고

  영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자기 소유를, 타고 다니던 말까지, 모두 팔았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오래 되어 낡은 성 다미엔 교회와 그곳의 가난한 사제를 만났다.

  그는 새로 찾은 자신의 영적 갈증을 늙은 사제 무릎에 쏟았다.

  그때까지 사치스런 젊은이들의 영웅이었던 한 젊은이의

  너무나 갑작스런 회심이 믿어지지 않은 늙은 사제는

  좀처럼 그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주님을 위하여, 교회에 머물도록 허락해달라고

  늙은 사제에게 빌고 또 빌었다.

 


  마침내 사제가 허락하여

  프란체스코는 교회에 머물게 되었으나

  젊은이의 아버지를 겁낸 사제는 끝내 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더 이상 자기에게 쓸모가 없고 지니고 싶지도 않은 돈을

  창문 밖으로 던져 거기 쌓여있는 흙더미와 하나로 만들었다.

  그에게는 돈이 흙보다 조금도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프란체스코는 오직 금보다 귀한 지혜,

  은보다 값진 사려분별을 지니고자 간절히 열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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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일

 


  주님을 섬기기로 한 첫날,

  낡은 교회당을 재건하면서 프란체스코는

  안락한 특권층 삶을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바꿨다.

  낡은 교회의 늙은 사제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별난 인생의 변화였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이어지는 힘든 노동은

  프란체스코를 지치게 만들었다.

 


  마음이 불편해진 늙은 사제가

  가난한 살림살이에 기름진 음식은 아니지만

  끼니마다 정성껏 특식을 장만하였다.

  노인의 말 없는 친절을 알고 프란체스코는

  마음속으로 크게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말하였다.

  “생각 있는 주의 종이라면 끼니마다

  이런 특식을 먹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결코 가난한 삶이 아니다.

  이런 식사에 익숙해지지 말자.

  여기에 익숙해지면

  네가 등지고 떠났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안락한 삶을 추구하겠지.

  차려진 식탁을 떠나거라.

  마을로 가서 문전걸식을 하여라.

  그들이 주는 것을 주는 대로 받아먹어라.”

  그리하여 그는 자기 영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는 거의 먹을 수 없을 만큼 험한 음식 찌꺼기를 모았다.

  그러면서, 너는 주님의 종이니까

  너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사랑은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고

  쓴 것을 달콤하게 만든다고, 자신에게 일러주면서

  구걸한 음식을 기쁜 마음으로 먹었다.

  이렇게 프란체스코의 길은 처음부터 가난한 길이었고

  보통사람의 비범한 경험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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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3일

 


  아들이 영혼으로 들은 소명(召命)을 인정할 수 없었던

  프란체스코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를 예전의 삶으로 돌려놓기 위해 찾아 나섰다.

  한 달 동안 프란체스코는 동굴에 은신하여

  남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기도하며 울며 주님께 애원하였다.

  지난날에는 자신의 노력을 신뢰하였지만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맡기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를 가둔 캄캄한 감옥 안에서

  전에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황홀한 기쁨을 바야흐로 맛보게 되었다.

 


  영혼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느낌으로

  그는 동굴에서 나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만났다.

  그의 새로운 삶을 용납할 수 없는 옛 친구들이

  미쳤느냐면서 큰소리로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러고는 돌과 흙덩이를 그에게 던졌다.

  그렇게 그는 온 마을의 놀림감이 되었다.

  하지만 인내의 사람이 교만의 사람보다 강한 법.

  프란체스코는 그들의 분노와 증오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그들의 분노와 증오는 그를 바꾸지도 꺾지도 못하였다.

  그는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진심으로 구도의 길에 나선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공격을 받을수록 그는 더욱 강해질 뿐이다.

  그래서 옛말에, 겸손히 자기를 낮추면

  대범한 영혼이 더욱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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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일

 


  프란체스코가 거리의 화젯거리로 되었다는 소문에

  그의 아버지는 즉시 아들을 찾아 나섰는데,

  아들을 살리기는커녕 파멸하기 위해서였으므로

  그 모습이 흡사 양떼를 쫓는 늑대 같았다.

  이윽고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수치심과 굴욕감에 휩싸여

  프란체스코를 집으로 끌고 와서는,

  무자비하게 며칠 동안 어둠 속에 가두어 놓고서

  자기가 알던 예전의 똑똑한 아들로 돌려놓으려 하였다.

  처음엔 말로 타이르다가, 통하지 않으니까

  매질을 하고 마침내 사슬로 묶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새로 찾은 인생목적에 확고히 섰다.

  아버지의 욕설도, 사슬에 묶인 몸의 탈진도

  그의 인내를 무너뜨리진 못하였다.

  한 번 주님을 위한 시련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쉽사리 자신의 결심을 포기하여

  그리스도의 양떼에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매질도, 욕설도, 사슬도 소용이 없다.

  그는 증오와 반대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시련이 크고 심하여 우리를 덮어 누르려 할 때

  당신은 그보다 더한 시련을 견뎠노라고 일러주시는

  하느님 아드님의 안전한 항구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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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5일

 


  하느님 은총 앞에 무릎을 꿇기 전,

  세상에 푹 빠져 지낼 때 프란체스코는

  흉한 나환자들을 멀리서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를 움켜쥐고 등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병환자 하나를 만났는데

  갑작스런 연민에 휩싸여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프란체스코는,

  그를 구원하신 분의 자비로 말미암아

  자신에 대한 혐오를 극복할 때까지,

  예전의 자기 행실에 대한 수치심으로 몹시 괴로워하였다.

 


  아직 세속에 있을 때에도 그는 기본예절이 있었기에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고

  괴로움을 겪는 자들에게는 동정을 베풀었다.

  그런데 하루는, 가난한 사람 하나가

  하느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어달라고 간청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를 등지고 돌아섰다.

  그러고는 즉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 이름으로 간청하는 당신을 등지고 돌아선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제 앞으로는 결단코

  하느님의 사랑을 청하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결심을 착실하게 이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 다음에야 그는 마침내

  자신을 옹근 제물로 하느님께 바칠 수 있게 되었다.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라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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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일

 


  어느 날 미사 도중에 복음서가

  특별한 방식으로 프란체스코에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금이나 은이나

  돈을 가지면 안 된다는 복음서의 말이 들렸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보따리도 전대도 빵도 지팡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신발도 여벌옷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의 나라와 참회를 설교해야 한다.

 


  그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기쁨에 찬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이는 내가 진심으로 살고 싶은 바로 그 삶의 방식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곧장 복음의 말씀을 좇아 살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지팡이도 버리고

  한 벌 옷을 입는데,

  가죽 띠 대신 노끈으로 허리를 동였다.

  세속의 유혹을 멀리서 물리치려고

  자신의 참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특별히 거친 옷감으로

  아무도 시새우지 않도록 단순하고 싱겁게

  십자가를 본떠 디자인한 겉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렇게 그는 복음서에서 들은 말씀을

  지체 없이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프란체스코는 복음을 수동적으로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씀을 진지하게 붙잡고 가슴에 새기며

  문자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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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7일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프란체스코는 하찮게 여겼다.

  그의 야망은 훨씬 더 높은 데 있었다.

  가난한 사람 되기를 온 몸으로 갈망한 것이다.

  세상은 가난을 피하고 싫어했지만 그는 알았다,

  하느님 아드님이 그것을 보물로 여기셨음을.

  가난은 그의 배필이 되었고 평생 연인이 되었다.

  그는 가난의 아름다움을 사랑했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 붙잡고자 아버지 어머니를 버렸다.

  가난과 하나 되기 위하여 그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한 순간도 자기 연인에게 불성실하지 않았다.

  이것이 완덕에 이르는 길이요 영원한 부(富)의 보증이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늘 말했다.

  아무도 그가 가난을 동경하듯이 황금을 동경하지 못했고

  그가 복음의 보화를 지키듯이 재물을 지키지 못했다.

  가난을 거스르는 짓을 하는 동료들을 보는 것만큼

  그를 화나게 하는 일이 없었다.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그가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겉옷 한 벌, 노끈 띠, 잠방이 한 벌이 전부였다.

  습관처럼 되어버린 그의 가난이

  그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고 안전하고 자신 있게 살았다.

  이 세상 보물들을 팔아

  백배의 보상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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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8일

 


  어느 날 저녁 무렵, 프란체스코와 그 일행은

  먼 길에 굶주리고 지쳐서 어느 황량한 곳에 이르렀는데,

  사람들 사는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먹을 것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웬 사람이 나타나서는

  약간의 빵을 건네주고 문득 사라져갔다.

  그들의 놀라움은 곧장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보름 동안 그들은

  거의 사람을 볼 수 없는 외진 곳으로 돌아다니며

  가까운 마을에서 먹을 것을 구할 경우에만

  잠시 그곳을 떠나곤 했는데, 그러면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구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극심한 가난과 함께 고독한 삶 또한 좋아하였고,

  자기들에게 커다란 영적 위안이 되어준 가난을

  세상 모든 곳에 분양하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소유욕이 일어나 가난이 주는 기쁨을 삼켜버릴까,

  그것이 두려워서 그들은 거기를 떠나야 했다.

 


  이윽고 그들은 과연 사람들 가운데 있어야 할는지

  아니면 자기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동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살아야 할는지,

  프란체스코에게 의견을 묻게 되었다.

  자기 지혜를 결코 믿지 않았던 프란체스코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래 기도하였다.

  만인을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 없이

  자기 맘대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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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9일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마을에

  프란체스코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평화를 설교하고, 구원을 가르치고

  죄 용서받기 위한 회개를 아울러 권하였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인간의 이성(理性)에 호소하는

  웅변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하였다.

  담대하게 설교하되,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하거나

  그럴싸한 약속을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눈에 띄는 죄마다 날카롭게 공격하였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입술이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설교하기 전에 먼저 그대로 살았다.

 


  지극히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많이 배운 사람까지

  사방에서 그의 말을 듣고자 모여들었고

  그리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들에게는 그의 메시지가 하늘에서 내리는 번개 같았다.

  땅의 얼굴이 달라지면서

  음울한 죄의 얼굴이 상쾌한 매력으로 바뀌었다.

  버려진 들판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돌보지 않은 포도나무가

  주님을 선포하는 새 꽃을 피웠고,

  황무지에서 새 열매가 맺혔다.

  사방에서 감사와 찬양의 샘이 흘렀고

  수많은 사람이 복된 설교자로부터

  창조주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법을 배우러

  세속의 삶을 등지고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삶의 규범을 제시하고

  자신의 살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로

  프란체스코는 구원의 길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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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0일

 


  어느 날 프란체스코 일행이 골짜기를 지나는데

  거기 온갖 새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본 프란체스코는 일행을 떠나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새들에게로 달려갔다.

  새들은 평상시처럼 날개 짓을 하는 대신

  조용히 나뭇가지에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

  “동무들아, 너희는 마땅히

  너희를 지으신 창조주를 사랑하고 찬미해야 한다.

  그분은 너희에게 깃털로 옷을 입히시고

  날개로 날게 하시고 다른 모든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

  하느님은 너희를 가장 고상한 피조물로 지으셨고

  깨끗한 허공에 깃들게 하셨고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않는데도

  너희를 먹이시어 아무 염려 하지 않게 하셨다.”

 


  새들은 고개를 저으며 날개를 퍼덕이고

  벌어진 입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프란체스코가 십자 성호를 그어 축복하고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하자,

  저마다 자기 갈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새들이 겸손하게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보고서

  기쁨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일행과 함께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 뒤로 프란체스코는 모든 새들과 짐승들과 파충류와

  감정이 없는 생물들까지, 전심으로 타일러

  저희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 찬미와 사랑을 바치게 하였다.

  날마다, 그의 입이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의 이름이 불릴 때면

  온갖 새들과 짐승들이 복종하는 것을 그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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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1일

 


  사도 바울로가 가르친 대로 프란체스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이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지는 것을 힘써 구하였다.

  무엇보다도, 혼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였다.

  자신의 고요한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한 것이다.

 


  혼자서 하느님과 함께 있기를 방해받지 않으려고

  세상의 모든 자극에 스스로 귀먹었고

  들려오는 소리들을 막아버렸다.

  그리하여, 마음을 온통 하느님께 쏟을 수 있는

  동떨어져 한적한 곳을 자주 찾았다.

  “바위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아가 2, 14).

 


  하지만 그는 결코 이웃을 잊지 않았다.

  기회를 만났다 싶으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나섰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 안전한 항구는 기도였다.

  그것은 어쩌다가 짧게 드리고 마는

  게으르고 건방진 기도가 아니라

  겸손하게 고요하게 온 몸과 마음으로

  오래도록 드리는 기도였다.

 


  걸으면서, 앉아 있으면서, 먹으면서, 마시면서

  그는 항상 기도에 골몰하였다.

  황폐한 곳에 있는 버려진 예배당에서

  홀로 밤새워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 하느님 은총의 그늘에서

  많은 두려움과 번민을 그는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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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2일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였다.

  한번은 그의 제자 하나가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가난한 척하는 부자인지 아닌지,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 말에 가난한 사람은 상심하였고

  프란체스코는 크게 화를 내며 제자를 꾸짖어,

  그 가난한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발에 입 맞추며 용서를 빌라고 명하였다.

  프란체스코는 자주 말하였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오.

  가난한 사람은 우리를 위하여

  몸소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형상이오.”

 


  나뭇짐이나 다른 무거운 짐을 진 가난한 사람을 보고

  연약한 자기 어깨에 그 짐을 옮겨서 지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드물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보는 것이

  그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거니와

  그것이 어떤 거짓된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동정과 연민 때문이었다.

  입고 있는 옷이 이미 넝마 같았지만

  그마저 없는 이를 만나면 벗어주어야 했다.

 


  추운 날에는 부자를 찾아가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으로

  외투와 목도리를 얻었는데, 그것들은 곧장

  다음 차례에 만나는 가난한 사람한테로 건너갔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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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13일

 


  하느님이 지으신 것들에 대한 프란체스코의 사랑이,

  온갖 피조물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알아보는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를 묘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 기쁨으로 그는 해와 달을 보았고

  밤하늘 찬란한 별들을 응시하였다.

  작은 벌레들한테서도 창조주를 보았고

  그래서 그것들이 밟혀 죽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로 옮겨 주었다.

  겨울에는 벌들이 굶지 않게 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특별히 꽃들을 사랑하였다.

  그것들이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설교를 하고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설득하였다.

  콩밭과 포도원, 돌무더기와 숲, 다른 모든 푸성귀들,

  정원, 우물, 들판, 대지, 불, 바람 그리고 물한테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라고 말하였다.

 


  그는 모든 피조물에게, 젊음의 열정으로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자고 권하였다.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모든 피조물에서

  그것들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느님을

  쉬지 않고 찬미하며 언제나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렸다.

  모든 피조물을 ‘형제’라 불렀고, 그의 민감한 가슴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특별한 방식으로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의 비밀을 드러내었다.

  마치,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영광과 자유를

  일찌감치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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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4일

 


  젊은 베르나르도가 질문을 품고서

  프란체스코를 찾아왔다.

  “어떤 사람이 오랜 세월 너그러운 주인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더 이상 간직하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이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프란체스코가 대답하였다.

  “그것들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되겠지.”

 


  베르나르도가 말했다.

  “저한테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것들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겠어요.”

 


  이튿날 이른 아침, 두 사람은 교회로 가서

  주님께 인도해달라고 기도드린 다음,

  복음서를 펼쳐 아무데나 읽고

  거기 기록된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들은 책을 열고 함께 읽었다.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마태오 19, 21).

 


  두 번째로 책을 열고 읽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루가 9, 3).

 


  세 번째로 읽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 23).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베르나르도는

  일점일획 어긋남 없이 복음서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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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5일

 


  프란체스코의 생애는 많은 기적들로 두드러져 보인다.

  형제와 자매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앞일을 예언하고

  그밖에 여러 가지 비범한 축복과 은사들을 보여주었다.

 


  그 모든 것이 실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프란체스코의 영혼은 세속의 관심사로 어둡지 않았다.

  육체의 쾌락은 잘 통제되었고,

  그의 마음은 마음껏 날아다녔다.

  ‘말씀’이 그의 말에 빛과 생명을 주었다.

  살아 있는 동안 고요와 평화가 그의 날들을 채웠고,

  많은 선행이 뒤를 이었다.

  그의 동료들 가운데도 성스러운 기운이 맴돌았다.

  그의 말은 권능으로 충만하였다.

  영원한 것들을 보화로 하늘에 쌓아둔 까닭에

  이 세상 것들도 언제나 모자라지 않고 풍성하였다.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어둠 속에 갇혀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가 그의 비범한 은사들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육에 얽매여 땅의 관심사들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하늘로 들어 올릴 필요가 있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때에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것,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땅에 묶여 있는 한, 땅 밖에 보지 못한다.

  눈이 하늘에 고정되어야만 비로소 하늘의 것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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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일

 


  하루는 프란체스코가

  주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감미로운 자비를 생각하고 있을 때,

  자기와 자기 동료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를

  주님이 보여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하던 대로 조용히 기도드릴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면서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 섰다.

  그리고 번민하는 영혼 깊은 곳에서

  방탕하게 보낸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이 말을 거듭하였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차츰차츰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말 못할 기쁨과 큰 달콤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줄어들고

  본인의 죄 때문에 가슴 속에 쌓여있던 어둠이 사라지면서,

  그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고

  주님의 은총이 그에게 회복되었다는 확신이 내면에서 솟아나왔다.

 


  프란체스코는 자기 몸을 떠나

  모든 것을 에워싸는 빛 속에 삼켜진 느낌이었다.

  그의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그 환상으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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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일

 


  기도 중에 큰 위로를 받은 프란체스코는

  기도 처소에서 돌아와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형제들이여, 우리에게 이미 주신 선물에 대하여

  믿음과 헌신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가오는 날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대들은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경멸하고

  그대들의 뜻을 버리고

  육신의 욕구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즉 그대들은 둘씩 짝을 지어 세상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에게 죄 용서받는 회개와 평화를 선포하시오.”

 


  “주께서 그대들을 택하여 부르신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분은 당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시니,

  확신을 품고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지 참고 견디시오.”

 


  “묻는 이들에게 겸손히 답하시오.”

 


  “그대들을 욕하고 해코지하는 이들에게 감사하시오.”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대들의 소명에 복종하시오.”

 


  “영원한 나라가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오.

  주님이 그대들을 잡아주실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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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8일

 


  한 때 의사가 매일 프란체스코를 방문하여 그 눈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프란체스코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의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좋은 음식으로 대접합시다.”

  한 형제가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우리에겐 그를 대접할 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말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시오.”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어깨 너머로 들은 의사가 말했다.

  “형제님들, 당신들의 가난을 나눠주시는 것보다 맛있는 식사 대접이 없을 겁니다.”

 


  동료들이 자기들한테 있는 것으로 식탁을 차렸다.

  작은 빵 한 개, 포도주 조금, 거기에 몇 가지 야채를 곁들였다.

  그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빵, 생선, 파이, 꿀, 포도 등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든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모두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의사와 동료들은 프란체스코의 성스러움을 입증하는 기적이

  자기네한테 베풀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잊지 않으신다.

  그들이 가난할수록 더 많은 당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을 잘 아신다.

  군주들보다 가난한 자들이 더 풍성한 식탁에 초대받고 있다.

  하느님이 사람보다 더욱 너그러우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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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일

 


  부활절이었다.

  동료들이 깨끗한 보자기와 유리잔으로 다른 날보다 우아한 식탁을 차렸다.

  움집에서 나온 프란체스코는 사치스런 식탁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

  발길을 돌려, 가난한 사람의 모자를 빌려 쓰고

  그의 지팡이를 짚고 문밖에 서서 식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동료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 그가 문밖에서 크게 소리 질렀다.

  “하느님의 자비로 불쌍한 나그네에게 밥 한 술 주십시오!”

  그들이 황급하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느님의 자비로 그대를 환영합니다.”

  그가 방으로 들어와 재를 뒤집어쓰고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마땅히 앉을 자리에 내가 지금 앉아 있소.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물려주신

  가난의 모범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오.

  그대들이 차린 이 식탁은 문전걸식하는 가난한 이들의 식탁이 아니오.” 

 


  이렇게 프란체스코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말을 나누면서

  그 가슴을 뜨겁게 한 그날의 외로운 순례자를 모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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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20일

 


  안락한 삶을 원하는 동료들에게 프란체스코는 말했다.

  “영의 맛을 잃을 때 살과 피의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게 마련이오.

  영이 만족을 모른다면 육의 욕구 말고 무엇이 우리에게 남겠소?

  짐승의 욕구가 우리 삶을 채우는 필수적인 요소로 되고,

  육신의 욕심이 양심을 대신할 것이오.”

  반드시 필요하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것들에 대하여

  정말 그런지를 우리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가난과 헤어질 때 세상은 우리를 버릴 것이오.

  그리하여, 열심히 찾지만 그 찾는 것을 만나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우리가 가난 부인을 품을 때 세상은 우리를 품을 것이오.

  우리가 가난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존재로 파견되었기 때문이오.”

 


  프란체스코는 끊어지지 않는 서약으로 가난 부인과 한 몸이 되었다.

  그녀의 지참금이 현재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고,

  그는 그렇게 알았고 그렇게 설교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여 자주 불렀던 시편은 가난을 노래한 것들이었다.

 


  “가난한 사람, 아주 잊히지 아니하고

  억눌린 자의 희망, 영영 헛되지 아니하리라.”(9, 18).

 


  “비천한 사람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을 찾는 자들아, 너희 마음 부풀게 하여라.”(69,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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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일

 


  가끔 부잣집 식탁에 초대받았을 때 프란체스코는

  먼저 가난한 이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여 탁발하고 나서 그 초대에 응하곤 했다.

  그러는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그가 대답하였다.

  “내가 유산으로 받은 것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요.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부(富)를 위하여 그것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를 그 나라의 상속자요 왕으로 만드는 것은 이 세상 부(富)가 아니라 가난이오.”

 


  한번은 주교의 식탁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가 탁발한 음식을 다른 손님들에게 돌렸다.

  주교가 기겁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형제여, 어찌하여 내 집에서 나를 이리도 부끄럽게 하시는가?”

  프란체스코가 답하였다.

  “나는 주교님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을 기뻐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주교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렸어요.

  우리의 존엄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지신 주님의 뒤를 따르는 데 있습니다.

  나는 산해진미로 화려하게 꾸며진 밥상보다

  탁발한 음식으로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이 훨씬 더 좋답니다.”

 


  그러자 주교가 말했다.

  “주님이 그대와 함께 하시니, 그대 좋으실 대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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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2일

 


  가난한 이들을 향한 프란체스코의 긍휼을

  누가 무슨 말로 설명할 것인가?

  그에게는, 진실로, 타고난 친절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이 그것을 두 배로 키웠다.

  그의 가난한 영혼은 가난한 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고,

  가진 것이 없어서 적선할 수 없을 때에도

  그들에게 애정을 보여주었다.

  궁핍한 사람을 볼 때 그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가난한 이들의 헐벗은 몸 앞에서는

  어머니 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를 보았다.

 


  하루는 프란체스코가 설교하는 자리에

  가난한데다가 병까지 든 사람이 나타났다.

  가난과 질병이라는 이중고(二重苦)에

  가슴이 아파진 프란체스코가 동료에게 말했다.

  “형제여, 가난한 이를 볼 때면

  그에게서 그리스도와 그 어머님을 보아야 합니다.

  병든 이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그에게서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몸소 짊어지신 병고를 생각하십시오.”

 


  그는 항상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우리 질병을 대신 앓는 그 슬픈 이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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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일


 

프란체스코는 항상 기도하였다.

늘 깨어있어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의식하게 해달라고,

하늘과 땅 사이의 장벽을 허물게 해달라고.

그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갈망하였고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으로도 오직 그분께 자기를 의탁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가난한 이들을 상대할 때에도 기도를 “끝”내지 않았고,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자신의 가장 깊은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세상은 별로 흥미 없는 곳이었다.

 


주님이 찾아오실 때 자기 영혼뿐 아니라 육신까지도

평안하게 숨어있을 만한 곳을 그는 찾았다.

자기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사를

세상에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할 수만 있으면 남들 앞에 얼굴을 감추었고,

감출 수 없는 경우에는 영혼만이라도 성소에 머물렀다.

사람들 있는 곳에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영적 은사들을 배반하는 일이 그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는 달랐다.

눈물도 흘리고 고함도 지르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께 탄원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배필과 즐겁게 지냈다.

그는 기도하려고 애쓰는 대신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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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24일


 

프란체스코에게 기도는 자양분이었고,

기도하는 시간은 평화와 고요의 시간이었다.

기도를 방해받으면 속으로 크게 화를 냈고,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곧장 그 자리에서 자백해야만 했다.

실제로, 마음을 모으지 못하게 하는 물건은,

그것이 무엇이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버렸다.

예컨대 어느 날 그는,

자기가 만든 작은 항아리를 자꾸 들여다보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기도를 마친 그가 항아리를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고 말했다.

“주님과 이야기하면서 쓸모없는 물건에 눈길을 주다니, 부끄러운 일이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프란체스코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무척 노력했다.

자기가 받은 특별한 은사를 남에게 보여주면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기가 기도를 마치고 동료들에게 돌아올 때가 되면

“이 생에서 저에게 주신 이 큰 위안들을 거두시어

다음 때까지 보관해주십시오.”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린다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큰 은사를 하느님께 받았다 해도

여전히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세상에 보여줘야 하니까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소한 기쁨 때문에

은사 자체를 잃을 순 없지 않소?”

사람들한테서 기도 부탁을 받으면

자기가 할 임무를 수행하듯이

곧장 그 부탁을 실천하였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애정이 우리를 부추겨

서로에게 은혜로운 선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영적 여정(旅程)에서 서로 도움 받고 도와주고,

그리스도 면전에서 서로 격려하고 격려 받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을 궁극적으로 증명해주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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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25일

 


  프란체스코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선물로 받은 신성한 지혜였고

  그 지혜가 그로 하여금 성경을 깊이 꿰뚫어보게 하였다.

  그는 신앙의 심오한 신비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영성의 천재였다.

  학자들의 지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external) 차원에 머물러 있다.

  프란체스코의 영적 지식은 그를 신비 자체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가 성경구절을 한번 읽으면 그로써 충분했다.

  곧장 그 구절이 가슴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이 그의 서재였다.

  어떤 소리도 건성으로 듣지 않았고,

  자기가 들은 영적 진실에 대하여 깊게 그리고 끈질기게 묵상하였다.

  그는 영적 지식으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지,

  수 천 페이지의 글을 읽는 데 있지 않다고 가르쳤다.

 


  참된 철학자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그에 앞서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는 가르쳤다.

  하지만, 겸손하게 그리고 선입견 없이 성경을 읽으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하느님까지 알게 되리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어느 날, 저명한 신학박사가 프란체스코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자기를 찾아온 학자의 학식에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자기가 아는 성경지식으로 소박하게 대답하였다.

  학자가 그 대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동료들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사람의 신학은 순결한 삶과 겸손한 묵상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창공에 높이 떠 있는 독수리 같다.

  그의 신학에 견주어 우리 학문은 땅에 얽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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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26일

 


  프란체스코는 영혼의 희열을 맛보는 것이 유혹에 대한 최선의 방어라고 굳게 믿었다.

  “영혼한테서 희열을 훔칠 때 악마는 기뻐합니다.

  영혼이 기뻐할 때 악마는 힘을 못 쓰지요.

  그런 까닭에 틈만 나면 영혼 안에 의심과 불화의 씨를 뿌리려고 하는 거예요.

  악마는 기쁨이 충만한 영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슬퍼하고 침울할 때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자에게 굴복당하기 쉽지요.”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자기 안에

  기쁨의 영과 좋은 생각들이 충만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낙심과 좌절의 기미(氣味)마저 피하려 했고,

  그것들이 일어날 때면 재빨리 기도로 돌아갔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곧장 기도하시오.

  그렇게 해서 현존하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 그분 안에 머물면

  이내 영혼의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프란체스코는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특별히 좋아하였다.

  그에게는 영혼의 기쁨이 영성생활을 위하여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기에,

  형제자매들을 위한 규범에 그것을 포함시키기까지 하였다.

 


  “침울한 표정을 짓거나 거짓으로 슬픈 척하지 마시오.

  그대들의 기뻐하는 영혼을 세상에 보여주시오.

  성령의 열매인 희락과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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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7일

 


  프란체스코는 이 세상을 잠시 동안의 유배지로 생각하여 늘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이 세상은 위험한 곳이기도 하지만,

  창조주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빛나는 상(image)이기도 하였다.

 


  그는 예술(art)에서 예술가(the Arti st)를 보았다.

  만들어진 모든 것에서 만든 이(the Maker)를 보았다.

  하느님의 작품들을 즐겼고,

  그것들을 통하여,

  그것들을 있게 하고 살게 하는 근원을 보았다.

 


  모든 아름다운 것에서 그는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

  그에게는 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善) 자체이신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그것들을 지으신 창조주의 발자취를 보았고, 그 뒤를 따랐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왕의 왕에게로 가까이 가는 사다리로 만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보았고,

  자기와 함께 창조주를 찬미하자고 그것들을 권면하였다.

  촛불과 등잔에서는 영원한 빛(the Eternal Light)의 상징을 보았고

  그래서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기를 기원하였다.

  그는 ‘반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를 기억하여 땅 위를 얌전하게 걸었다.

  동료들에게는, 나무밑동을 자르지 말라고,

  그래서 그 나무에 다시 꽃이 피게 하라고 일렀다.

  채소밭에는 작은 화단을 따로 가꾸어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그것들을 자라게 하시는 분을 생각할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

  창조된 세계의 아름다움에서 그는 만유의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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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28일

 


  자신을 모든 피조물의 형제로 여기는 프란체스코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더욱 깊이 사랑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간 영혼의 구원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에겐 없었다.

  이점에서 그는 인간을 구원코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특별한 방식으로 닮았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써 기도하고

  지칠 줄 모르고 설교하면서

  끝없이 모범을 보였다.

  그리스도의 벗은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자기를 따르는 이들이 세상을 등지면서

  아울러 하늘나라까지 잃는 일이 없게 하려고

  그는 사랑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썼다.

  그의 우선적인 관심은 자기 자신보다 동료들의 구원에 있었다.

 


  남들을 살리기 위하여 그는 스스로 고단한 삶을 택하였다.

  말보다 행동이 더욱 믿음직하고 교훈적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말보다 행동이 더 부드럽게 말하고

  더 쉽게 설득하고

  더 분명하게 길을 보여준다.

  천사의 혀로 말한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말하는 자에겐 별 유익이 없고 듣는 자에겐 전혀 유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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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29일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결정지은 덕목 하나를 든다면,

다른 모든 덕목들을 이끌어낸 ‘겸손’(humility)이 그것이다.

사람들 눈에는 그가 성자로 보였겠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여전히 죄인이었다.

 

바로 이 확신 위에서 그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졌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말과 모범으로 겸손을 가르치고자

아버지 옆자리를 버리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그는 자주 형제자매들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남들 눈에 돋보이려는 자들이 있지만

하느님은 그들의 속셈을 아신다.


 

그대가 하느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그게 바로 그대다.

남들의 칭찬에 우쭐거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죄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서 칭송을 들으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죄인들도 금식하고 기도하고 울고 참회할 수 있다.

죄인이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은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하느님께만 돌려드려야 하는 칭송을 기대하지도 용납하지도 말라.

오히려, 하느님을 성실하게 섬기며

그대에게 오는 모든 칭송을 하느님께 돌리고

그분이 주시는 은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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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30일


 

프란체스코는 불타는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였고,

그 열정에 스스로 흡수당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만 해도 그 영혼에 불꽃이 타올랐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에게 그 보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주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부유한 사람의 부유한 몸짓이었다.

 

반면에, 사랑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오직 사랑만이 하늘나라를 얻을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의 가슴에서 불타올랐고,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의 힘에 의하여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갈망하였다.

그의 눈길이 미치는 곳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있었다.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그의 사랑을 능가하는 것은

오직 그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뿐이었다.


 

그런즉 프란체스코 성인이여, 수많은 위험들로 에워싸인다 하여도

당신의 모범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시어

우리의 동기(動機)들이 순수해지고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동정(compassion)과 기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의 겸손과 당신의 가난,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을 변함없이 사랑한

당신의 그 큰 사랑을 우리가 닮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사시며 영원토록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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