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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하여

수도관상피정 십자가의 요한............... 조회 수 2602 추천 수 0 2009.12.21 23:34:20
.........
출처 :  
십자가의 요한, 방효익 역, ?가르멜의 산길? II,11.

외적이고 육체적인 감각들에게 초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으로
지성의 지각들 안에서 가질 수 있는 해로움과 장애에 대하여 다루고,
이들에 대하여 영혼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1. 앞의 장에서 우리가 말한 첫 번째 깨달음들은 본성적 방법을 통해 지성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에 대하여 영혼에게 감각의 밤이라는 것을 다루는 첫 권에서 이미 적절한 가르침을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서 우리가 다뤄야 하는 것은 단지 지성에 초자연적으로 속하는 지각들과 깨달음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그리고 맛을 보는 것이다. 열심한 사람들에게 이것들은 초자연적인 대상이나 목적들이 될 수 있고, 또 자주 그렇게 된다.
   시각의 경우에 있어서 열심한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의 인물들이나 형상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어떤 성인들이거나 천사와 악마들의 형상들이고, 어떤 빛이거나 예외적인 번쩍임이 되기도 한다.
   청각의 경우에 있어서 예외적인 어떤 소리들을 듣는데 이미 보았던 형상들을 통해서 듣거나 또는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볼 수 없으면서 듣기도 한다.
   후각의 경우에 있어서 가끔 어디서 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감지되는 아주 달콤한 향기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각의 경우에 있어서도 역시 아주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하며, 그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뼈는 물론이요 골수까지 즐거워하고 활짝 밝아지고, 쾌락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것을 바로 영적인 도유라고 흔히 부른다. 깨끗한 영혼들 안에서 정신으로부터 감각으로 스쳐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한 사람들에게 이런 감각의 즐거움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신심행위와 애착에서 생기는 것인데 열심한 사람들 각자에게 자기 방식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2. 알아두어야 할 것은, 비록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육체적 감각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그것을 확신한다거나 받아들이지 말고, 더 나아가서 그것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시험해보려는 마음조차도 먹지 않으면서 그것들로부터 피해야 한다. 이것들이 더욱 외적인 것들이고 육체적인 것들인 만큼 그만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확실성이 덜하다. 하나님의 드러내심은 감각에게 보다는 정신에게 매우 일상적인 것이고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이 영혼을 위해서는 훨씬 더 안전하고 도움이 된다. 이것들은 감각에게는 통상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착각을 일으킨다. 마치 육체와 영혼, 그리고 감성과 이성의 차이처럼 영적인 것들과 감각적인 것들 사이에 대단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것들을 마치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육체적 감각이 영적인 것들을 판단하거나 심판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육체적인 것이 이성적이고 영적인 것들을 모른다는 것은 마치 당나귀가 이성적인 것들을 모르는 것과 같거나 그보다 훨씬 더 하다.

3. 육체적인 감각에 주어지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를 것이며, 이렇게 속은 사람은 엄청난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적어도 영적인 것으로 가는 데 있어서 자기 안에 확실하게 장애를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저 육체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과 비교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악마로부터 오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야 한다. 악마는 내적이고 영적인 것보다는 외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손을 더욱 많이 뻗치고 영혼을 아주 쉽게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4. 이런 육체적인 형상들과 대상들은 그 자체로 더욱 외적일수록 내적인 것과 정신에 도움이 덜 된다.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는 비교되는 것이 거의 없고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은 항상] 영적으로 (얻어지는 것인데,) 비록 육체적인 것들로부터 약간의 영적인 것들이 얻어진다 할지라도 그 얻어짐이 매우 영적이고 내적인 것들이 주어질 때보다 훨씬 적다. 그래서 영혼 안에 헛됨과 자부심과 잘못을 키우기가 매우 쉽고 자주 반복된다. 이것들은 매우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각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영혼의 판단에 따라서 더욱 감각적일수록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되면서 영혼은 신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육체적인 형상들과 대상들이 지닌 빛이 자기가 원하던 하나님과 일치의 방법이고 안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육체적인 감각에 주어지는 형상들과 대상들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영혼은 신앙이라는 일치의 방법과 길을 더욱 더 잃어버리게 된다.

5. 이것 외에도, 이런 예외적인 지각을 느끼는 영혼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이미 중요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것은 겸손과 반대되는 것이다. 또한 악마도 영혼에게 숨겨진 자기만족을 불어넣을 줄 알고, 때로는 그것을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악마는 자주 감각들에게 이런 대상들을 넣어주는데 시각에는 성인들의 모습이나 엄청나게 아름다운 빛들을 보여주고, 귀에는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말을 들려주며, 입에는 아주 부드러운 향기와 달콤함을 넣어주고, 감촉에는 쾌락을 가져다준다. 악마는 이렇게 영혼이 이런 것들에 푹 빠져들게 하면서 끔찍한 악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육체적 감각에 주어지는 현상이나 감정들을 항상 물리쳐야 한다. 혹시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물리치는 것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며, 영혼이 그것들을 물리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현상이나 감정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원하시는 열매나 효과들을 받아들이기를 영혼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육체적 현시나 혹은 다른 감각들 가운데 어느 것에 느껴지는 영적인 느낌이 영혼의 가장 내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 순간에 정신 안에 이미 그 효과가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에 영혼은 그것을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겨를이 없다. 이런 것들은 [영혼의 재능이나 충분한 성실성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것들이며, 하나님께서는 현시나 영적인 느낌들과 함께 영혼에게서 원하시는 효과를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정신 안에서 수동적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느낌들이 있고 없고는 영혼이 그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만일 누가 벌거벗은 채로 있는 사람에게 불을 질렀다고 한다면 이미 불에 던져진 사람이 불에 타지 않기를 바랄지라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불은 자신의 열기를 가지고 효과를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시들을 비롯한 좋은 현상들은 비록 영혼이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영혼이 육체 안에서 우선적으로 그 효과를 낸다.
   또한 악마로부터 오는 이런 작용들도 비록 영혼이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토 영혼이 정신 안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냉담함과 허영과 자만심이 일게 한다. 악마로부터 오는 작용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들이 영혼 안에서 이루는 좋은 효과만큼 그런 정도의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악마의 작용들은 단지 의지 안에서 초기의 충동들을 일으킬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만일 영혼이 원하지 않는다면 영혼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길게 가지 않는 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으나 만일 영혼이 작은 용기와 신중함을 지니고 있다면 그렇게 오래가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건네주시는 은총들은 영혼을 꿰뚫고 들어가며 사랑하도록 영혼의 의지를 움직이고 그 효과를 남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유리창이 태양의 빛을 받을 때 유리창의 입장과 같다.

7. 그러므로 내가 말한 대로, 영혼은 그런 현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 할지라토 절대로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받기를 원한다면 여섯 가지의 불편함을 갖게 될 것이다.
   첫째로, 감각들로 체험하게 되는 것들이 신앙을 많이 없애기 때문에 신앙이 약하게 된다. 이미 말했듯이, 신앙은 감각을 초월해있는 것이다. 이렇게 감각의 모든 현상들에 대하여 영혼의 눈을 감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방법을 멀리하게 된다.
   둘째로, 만일 이런 현상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영혼이 그것들에 사로잡히게 되고 정신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가시는 것은 성령께서 오시기 위해 필요했던 것(요 16:7)이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원인들 가운데 하나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활하신 뒤에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도 당신께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신 것(요 20:17)도 바로 신앙에 의존하라는 것이었다.
   셋째로, 영혼이 이런 현상들에 집착한다면 정신의 진정한 벗어버림과 포기의 길을 갈 수 없다.
   넷째로, 영혼이 별로 본질적인 것이 아닌 관능적인 것에 눈을 빼앗겼기 때문에 영혼은 이런 현상들의 효과를 점점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그런 현상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으키는 영적인 힘까지 잃어버린다. 결과적으로 그런 현상들이 만들어내는 영적인 힘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런 영적인 힘은 순수한 정신과 거리가 먼 관능적인 것을 부정하면서 보존할 수 있고, 깊이 남아있게 된다.
   다섯째, 영혼이 이런 현상들에 집착하고 잘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현상들에 집착하거나 잘 이용하지도 못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현상들을 영혼이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그런 현상들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것은 다른 많은 비슷한 것으로 영혼을 속이도록 악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악마는 그런 것들을 마치 좋은 것처럼 여기도록 잘 속이고 위장할 줄 안다. 사도께서 말했듯이(고후 11:14) 악마가 빛의 천사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세 번째 책, 영적 탐식을 다루는 부분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8. 그래서 이런 현상들이 누구에게서 오든지 영혼은 그것들에 대해 눈을 감으면서 물리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악마에게 자리를 펴주고 힘을 쓰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상들은 점점 줄어들고 악마가 주는 현상들만 받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악마의 것들만 남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상들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방심했거나 조금밖에 아는 것이 없는 영혼들에게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법인데 이런 현상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영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신앙의 순수함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영혼들은 이런 현상들에 이미 악마가 깊이 개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현상들을 부정하고 눈을 감는 것이 좋다. 나쁜 현상들에서 악마의 잘못이 없어지고 좋은 현상들에서는 신앙의 장애가 없어진다면 정신이 그 현상들에서 열매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린데 영혼이 그런 현상들을 받아들일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열매를 없애주신다. 영혼이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 하고 제대로 이용하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이 이것들을 받아들일 때에 악마는 즉시 참견하면서 자기 것들을 늘려 가는데 자기가 일을 할 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이런 현상들을 물리치거나 반대한다면 악마는 영혼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짓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그런 현상들에 집착하지 않는 영혼에게는 작은 일에 충실했던 종에게 해주신 것처럼(마 25:21) 은혜를 넘치게 베풀어주시고 많은 것을 이루어주신다.

9. 만일 영혼이 이미 성실하고 이런 은혜들 가운데서 조금만 고요해진다면, 주님께서는 영혼이 변화와 거룩한 일치에 점진적으로 오르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영혼을 끌어주시기 위해 영혼을 시험하시고 깨끗이 씻어주시고, 영혼의 능력에 따라서 감각에 따르는 외적이고 초라한 것을 먼저 주신다. 처음에는 영혼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루시면서 힘과 영양을 생각해서 조금씩 유아식을 주시지만 점점 갈수록 푸짐하고 좋은 음식을 주신다. 첫 번째 악마를 이겨냈다면 다음 단계로 건너갈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역시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넘어갈 것이다. 여기서부터 계속 넘어갈 수 있는 방은 일곱 개인데 이것은 사랑의 일곱 가지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영혼은 신랑께서 자신의 완전한 애덕의 포도주 방(아 2:4)에 넣어주실 때까지 들어갈 것이다.

10. 사랑의 일곱 단계에 반대하는 머리 일곱 개를 가진 계시록의 짐승(계 12:3)을 거슬러서 싸울 줄 아는 영혼은 행복하다! 이 짐승은 각각의 머리를 가지고 사랑의 각 단계에 반대해서 시비를 걸며, 영혼이 들어가야 하는 각각의 방에서 영혼에게 결투를 벌이는데 하나님 사랑의 각 단계에서 이기는 영혼은 행복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만일 영혼이 각각의 방에서 성실하게 싸워서 이긴다면 단계를 오를수록 많은 은혜를 얻게 될 것이며, 짐승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개의 머리를 잘라내면서 방에서 방으로 옮기는 가운데 마지막 방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요한이 말하듯이 저 짐승은 성도들과 싸울 수 있는 권세를 받았으며, 사랑의 각 단계에서 성도들을 이길 수 있도록 많은 무기와 탄약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므로 영혼에게 대단히 살벌한 싸움이 될 것이다(계 13:1-7). 이렇게 이 짐승을 거슬러 영적인 전쟁에 돌입하는 많은 영혼들이 세상의 감성적인 것들을 부정하면서 첫 번째 머리를 자를 수 있는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대단한 노력을 하면서 첫째 머리를 잘랐지만 우리가 말하고 있는 감각의 현시들이라고 하는 두 번째 머리를 잘라내지 못한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어떤 이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자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 번째 머리까지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즉 앞으로 말하겠지만 묵상의 단계를 지나면서 내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감각들까지 다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순수한 것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영적인 짐승들에게 굴복하고, 그 짐승은 첫 번째 머리까지 되살아나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굴복했던 악령이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자리 잡고 살게 되면서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눅 11:26).

11. 그래서 만일 열심한 사람이 사랑의 첫째 방에 들어가고 생생한 신앙의 두 번째 방에 들어가면서 이 짐승의 첫째 머리와 둘째 머리를 잘라내기를 원한다면 신앙에게 가장 위협적인 감각들에게 주어지는 것에 포로가 되거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외적인 감각들에 주어지는 현세적인 쾌락들과 함께 따라오는 모든 지각들을 부정해야만 한다.

12. 다음으로 분명한 것은 이런 현시들과 감각적인 지각들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일치의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요 20:17)와 도마가 당신을 만지지 않기를 원하셨던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영혼이 (사적) 계시들을 받아들이기를 원할 때와 영혼이 그리로 기울어져 있다고 보일 때를 악마는 제일 좋아한다. 악마는 할 수 있는 한 신앙의 힘을 빼버리고 영혼이 실수하도록 유도하는 기회를 잡기 위해 손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말했듯이, 이런 지각들을 좋아하는 영혼은 신앙을 간직하기 위해 대단한 부담이 주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서 엄청난 유혹을 느낄 것이고 무례함을 저지를 것이다.

13, 나는 다음에 다루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약간의 암시를 주기위해 외적인 지각들에 대하여 길게 말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그칠줄 모를 정도로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오히려 지나치게 짧게 말한 것이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만일 내가 말한 것이 아주 이상한 생각이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로 충분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이미 말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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