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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목사] 망함 vs. 형통

무엇이든 제임스............... 조회 수 82 추천 수 0 2020.05.02 03: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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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함 vs. 형통] (시편 1편)


1. 망함


사람이 망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사람 중에 망하는 사람이 많고
한 사람의 인생 중에도 망할 때가 많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경우에 망할까?
한 사람의 인생 중에도 어떤 경우에 망할까?
망함을 피할 수 있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 망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시편 기자의 정의는 간단하다.

(시 1:6 b 새번역)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악인의 길'이 망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악인의 길은 어떤 길일까?

(시 1:1, 새번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악인의 길'을 더 자세히 묘사해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라고
시편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

능력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힘이 없고 지능이 낮아서 망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 잘못 만나서 망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망하는 이유를 전혀 다르게 말하는데
그 길은 너무나 선명하다.
어디를 걷고 어디에 서고 어디에 앉느냐가 중요하다.

먼저는 악인의 꾀(조언)을 따라 걷고, (walk)
그 다음에는 죄인의 길에 선다. (stand)
그런 다음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sit)
그게 망하는 길이다.

어디에 걷고 서고 앉을지를 잘 결정해야 하는데,
걷고 서고 앉는 것에 대해서 '장소'를 언급하지 않고
'사람'을 언급한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비웃는 자)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그들의 길을 따라 걷게 되고
그들이 서는 곳에 서게 되고
그들이 앉는 곳에 앉게 되어서
결국 그들과 함께 망하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어울리느냐가
망할 것인지 망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자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악인이나 죄인이나 조롱하는 자들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2. 형통의 전제조건


망하는 길과 형통한 길을 대조하고 있지만
망하는 길을 피한다고 해서
무조건 형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형통한 삶이 되어야 하는데,
우선 형통의 전제조건이 있다.

(시 1:3, 개정)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이란 그 전에 도달해야 할 단계가 있는데
두 가지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과
'잎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첫째,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갈라디아 5장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인격과 성품에 맺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형통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공하고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인격과 성품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인격과 성품이 성숙해가는 것이
형통의 전제조건이다.


둘째, 잎이 마르지 않음


잎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과 영혼이 메마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음과 영혼이 메마르면 인격적인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서걱거리는 내면의 상태를 가지고서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기뻐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함께 슬퍼하는
촉촉한 내면을 갖는 것이 형통의 전제조건이다.


3. 형통이란?


형통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
남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
그래서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성경에서 형통이라 말하지 않는다.

형통이 무엇일까?
형통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데,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다.

(시 1:1-2, 새번역)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망하는 길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형통한 삶, 복 있는 삶이 되지 못한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역시 두 가지다.


첫째,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


말씀이 즐겁다면 형통한 삶, 복 있는 삶이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이 땅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설교를 들을 때 그 설교가 지루하기만 하다면,
그리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기만 하다면
삶이 심각한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삶이
형통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고
참된 복과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형통을 소원하며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는데
말씀이 즐겁지 않고 재미 없고 지루하다면
죽도록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복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주의 말씀이 즐거워야 한다.
주의 말씀이 기뻐야 삶이 형통할 수 있다.
그런데 말씀이 즐겁지 않다면 어떡해야 할까?

즐거워하는 것은 '감정'인데
그걸 억지로 만들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번째가 필요하다.

 

둘째,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


시 1:1-2 말씀을 주어와 동사만 요약해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가 된다.

말씀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기록된 순서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다음에 '묵상하는' 순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순서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밤낮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
주의 말씀이 즐거워진다.
그것이 삶의 형통의 비결이다.

주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형통한 삶의 비결은 없다.

그런데 삶에서 '형통'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형통이란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이다.

신자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주의 말씀을 즐거워 해야 한다.


4. 주의 말씀을 즐거워 해도 형통하지 않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설교를 열심히 듣고
결코 성경을 멀리하지 않는데도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지 않고
'형통'이라 말할 수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성경을 열심히 가까이 한다는 분인데
그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간다고 보기가 어려운
이상한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성경을 읽기는 하고
때론 성경을 연구하기도 하는데,
그리고 말할 것도 없디 설교를 열심히 듣기는 하는데
성경을 개인적으로 '묵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의 변화는 사실 '묵상'을 통해서 일어난다.
말씀을 읽고 읽고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는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성숙한 신앙인이 될 길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성경을 읽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고
설교를 듣기만 하고 묵상하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데 자신의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하지는 않는다면 결코 성숙한 내면이 되지 못하고
결국 성경이 약속한 '형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주의 말씀을 밤낮 '묵상'하는 것이
열매를 맺는 성숙한 삶,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형통한 삶의 비결이다.


5. 나는?


내면이 참으로 메말랐다.
잎이 마르지 않는 삶 따위는
전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서 억지로 일으키면
하루의 힘겨운 삶이 큰 바위처럼
나의 삶을 향해 달려왔다.

서걱거리는 내면을 부둥켜 안고
전쟁터로 가는 일개 병사마냥
두렵고 무서운 마음으로 하루의 삶일 시작했다.

나의 메마르고 거친 내면은
일상의 삶에서 그대로 드러나서
종일 죽을 듯 힘들게 겨우 버티는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다.

참고 참아서 겨우 겨우 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살긴 했으나
속으로 억압하고 눌렀던 분노의 감정이
한 번씩 표출되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고
주일을 칼 같이 지켰고
늘 빡빡한 삶을 살면서도 십일조를 거르지 않았고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를 열심히 했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헷갈리면서 살았다.

나의 삶이 형통한 삶이라고는 거의 생각한 적 없었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감정과
나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았었다.

그대로 살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그대로 살다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전혀 행복하지 않게 살다가 의미없이 죽어 간다면
그보다 비참한 삶은 없을 것 같았다.

살고 싶어서 말씀을 붙들었다.
과거에 읽었던 묵상 관련 책을 다시 읽고
과거에 들었던 말씀묵상 강의들의 강의안들을 다시 보면서
묵상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새겼고
묵상하는 방법도 다시 되살렸다.

그리고 아침마다 모자라는 잠을 깨워서
말씀을 펼쳐 들고 묵상하기 시작했다.
어짜피 피곤해서 죽을 것이라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라도 하면서 죽어야겠다 싶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가 넘어야
일이 끝나는 삶이었기 때문에
잠을 줄이고 말씀을 묵상하면 분명히
피곤해서 죽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피곤해서 죽지 않았다.
잠은 모자라지만 마음에 작은 평화가
말씀 묵상을 통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거칠고 황량하고 메말랐던 나의 내면에
작은 물줄기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거칠어지고 메말라졌던 마음인데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면 촉촉함을 회복했다.

물론 또 하루의 일상을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가
밤이 되면 다시 메말라진 내면과 만나야 했지만
다시 회복할 희망이 있으니 살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목사가 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종종 묻는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라고.

매일 묵상하는 비결은 사실 어렵지 않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설정하면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설정해도 어렵다.
억지로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말씀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말씀이 주는 생수가 나의 내면을 적셔서
촉촉함을 회복하는 그 경험이 누적되어서였다.

메말랐던 내면에 말씀이 주어지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되고
그래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 감격을 말씀을 통해 누리는 그 과정이
하루하루 나를 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도 말씀이 즐겁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

목사로서 나는 두 가지에만 관심이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여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어가는 삶이 되는 것과

성도들이 동일하게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묵상하여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복된 삶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가끔 목사님들이 나에게 물으신다.
교회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어떻게 교회의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지를.

나는 정말 죄송하게도 '조직으로서의 교회'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목사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그렇게 세워가려고 마음을 먹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시도를 하려 했더니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면서
목사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굳이 목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나는 여전히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내 관심은 교회의 본질인 '신자들' 뿐이다.
조직을 세우지 않아도
신자 개개인을 말씀의 사람으로 세워서
신자 각자가 말씀 안에서 참된 복을 누려간다면
목사로서의 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말씀을 통해 행복을 누려가고
성도들도 말씀을 통해 행복을 누려가고
말씀 속에서 누리는 참된 복을
나누는 참된 교제를 누리는 곳이 교회라고 나는 믿는다.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에게 약속하신 이 참된 복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누려가는
나와 성도들의 삶이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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