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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87 추천 수 0 2016.01.17 16: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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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11-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장 11절-13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 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하늘의 표적은 벌써 앞 절에서 4천 명을 먹이심으로 보여줬다. 4천 명, 또는 다른 복음서에는 5천 명으로 나오는데 그게 하늘의 표적이다. 즉 이것은 표적이니 일반사회에서 없는 사람을 구제하는 것처럼 교회가 구제를 하라는 그 뜻이 아니다. 해석이 그렇게 돌아가면 성령으로 감화된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성이 없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의 뜻이 없어지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자에 주시는 구원도리나 구원이치가 없어진다 그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을 닮지를 못한다. 성경이 일반화가 돼버린다.


교회에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빨리 바꿔지기도 하고 영능의 실력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치가 없으면 일 년 믿으나, 십 년을 믿으나, 수십 년을 믿은 거나, 첫 날 믿은 거나,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속이나 똑같다. 그렇게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 이건 얻어맞는다. 일반적으로 죄 안 짓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하나님 앞에 몽둥이감이고 재앙감이고 하나님의 형벌감이고 징벌감이다.


쉬운 예를 들면 학교에 들어가면 들어간 그 날부터 실력성장이 올라가서 졸업 때 영광의 졸업장, 실력의 졸업장을 따야 하는 건데, 그런데 학교에 들어간 그 날부터 졸업할 때까지 그 실력이 학교 안 다닌 학생이나 똑같다면 얻어맞아야 한다. 식구들에게도 얻어맞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외면당한다. 외면당하는 게 얻어맞는 거다. 이건 나쁘다가 아니라 학생으로서 공부의 신분을 벗어난 거고, 학생으로서 공부한 거치가 없는 거고, 그러니까 시간 투자성, 먹고 마신 게 다 날아간 것이다.


믿는 우리는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왜? 네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의 뜻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과를 먹고 죽지 않는 정신 사상으로,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거다. 성경은 누누이 그 말씀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신28:에 그렇게 안 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취급한다는 게 있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차원을 가지고 교회 다니고, 일반차원으로 예수 믿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세상은 세상대로 앞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남보다 많이 배우려고 하고, 존귀영광자로 부귀영광 쪽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고, 세상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세상이다. 안 그러면 그건 세상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하는 거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게 원 기초 기준적 지식이다. 이 지식은 만능의 능력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닮아가는 와중에 영원히 가는 것과 임시성을 구별시켜 줘서 ‘네가 어느 것을 가질래?’ 할 때 임시의 것을 가지면 너의 생각은 임시성이고, 네 존재도 임시성에서 끝이다.


하나님께서 인간 내 존재를 만든 그 자체가 영원 궁극적인 그 세계를 놓고 만들었다. 그러니까 교회의 메시지가, 이해타산 사고방식이 영원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생각이 영원히 가는 게 옳은 거다.


십 년 가는 것보다 백 년 가는 게 오래 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백 년 가는 것만이 아니라 천 년 만 년 영원히 간다. 현재 순간적으로 예수 믿어서 자기 속에서 가치판단을 하는 그것이 현재 자기에게만 있는 것 같으나 죽어서 신령천국까지 가서라도 그 효력을 자기가 볼 수 있는 것으로 현재 들어가야 만이 믿음의 사람의 판단이다. 이게 정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일반 사회 윤리도덕성적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 그건 왜냐? 일반 사회의 모든 지식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행복도 기쁨도 존귀도 영광도 부귀도 다 임시성이다. 그리고 그런 소원 목적을 갖고 산다고 할지라도 자기 평생에 그것이 이뤄질 런지 안 이뤄질 런지도 의문스럽다. 이 세상의  돌아가는 모든 게, 세상 역사적인 진보 섭리성이 예수 믿는 너의 구원을 위해서 돌리는 것이니 너는 그 세상에 기준을 맞추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의사성에 맞추면 현실에서 자기 앞에서 지나가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 환경이 말씀에 의해서 지혜롭게 보여진다. 내가 그걸 잡고 싸우느라고 시간을 보내야 될 런지, 내 앞에서 그게 지나가기 전에 말씀의 이치로 그걸 빨리 활용하고 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세상 것을 붙잡는다고 해서 붙잡히는 것이냐? 아니다. 세상 것은 다 지나간다. 아무리 좋아도 지나가고 나빠도 지나간다. 그것이 자기 앞에 있는 순간만큼 빨리 빨리 이용 사용 활용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가 없으면 안 된다.


쉬운 예를 들면 자기 집에 부모님이 계실 때 부모님이 자기보다 먼저 돌아가실 수도 있고 자기가 먼저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게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다.


얼마 안 있어서 부모가 떠나가면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할 수가 없다. 그러면 부모공경성이라고 하는 그 도덕성이 이제는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말씀의 이치를 못 깨달으니 나이 많은 부모를 내버리기 일쑤다. 이러면 부모공경이라는 구원이 자라겠느냐? 못 자란다.


그런데 알았던 몰랐던 그동안 실천을 못한 부모공경을 성경말씀을 통해 깨달으면 이미 부모는 돌아가셨지만 그 도덕성이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이웃의 부모나 교회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을 공경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부모는 ‘주 안에서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실천을 못한다. 맨 날 돈이다. 눈만 뜨면‘ 돈, 부자’ 타령이다. 그러니 자녀에 대한 사랑성이 말씀의 이치대로 어떻게 자랄 것이며, 사랑이라고 하는 구원이 어떻게 자라겠느냐? 부모공경도 자녀교육도 성경에 기초를 둔 원리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것은 다 지나간다. 지나가는 것을 잡지 말아라. 안 잡히는 거다. 네가 어리석으면 세상에게 붙잡혀서 종노릇한다. 네가 영리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우면 지나가는 세상을 빨리 잡아서 영능의 실력적으로 자타의 구원으로 활용을 한다. 어느 게 참 실력이냐?


하루 세 끼 안 굶고 산다면 부자 되려고 힘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선악과 따먹은 속성이 들어있는 고로 ‘물질성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고, 물질이 자기의 뭘 보장해 주고’ 이렇게 들어간다. 어리석다.


안 믿는 사람도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라고 한다. 그 말은 맞는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을 하신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실속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없으니 껍데기다. 말은 집사 장로 목사 권사라고 하지만 속은 비었다.


12절-13절: 마음속 깊이 탄식을 하면서 ‘그런 자들에게는 어느 시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지 표적을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지 않겠다’ 하시고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자기에게 능력 달라고 하고,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해도 그런 자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기 딴에는 하늘을 보고 왔다느니 해도 그건 정확하게 말해서 마귀장난들이다. 그건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신 그 천국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항상 말씀의 역사가 있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깨달음이 있지만 이게 없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도 없고, 말씀도 깨닫는 역사도 없고, 아무 역사도 없다. 단지 인간 생각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본다든지 그런 사고방식으로 설교를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느끼도록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말씀의 이치를 깨달아라. 그래야 네가 이치의 사람이 되고, 그래야 사람이 현명해지고 명철해진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적을 구하는 철야기도 산기도 이런 등등을 하면 신앙사상 정신이 악하고 음란한 자다. 이건 생명과를 따먹으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다. 이건 불순종이요 악한 것이다. 이적기사나 무슨 표적,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그런 것을 구하는 자는 전부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


악한 신앙을 갖지 말라. 사람을 두들겨 패고 욕을 하는 것은 선악과 따먹은 일반차원에서도 양심적으로 악한 것으로 안다. 하나님 앞에서 악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자체가 선이시고 신령한 분이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본질이 아닌 이질로 된 것은 전부는 악하고 나쁘고 흉악한 것이다. 이건 일반사람의 차원에서 사회 윤리 도덕적으로 생각하는 개념과는 다른 거다.


그러면 다르다고 해서 엉터리냐?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신령한 영적 도덕성을 가지라는 게 성경이다. 그리고 성경에 관한 도덕성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옳음이 들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의 속을 다 읽는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안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 목적이 어디에 붙어있고, 무엇을 소원하고 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된다고 하는 건 나오는 거다. 점쟁이가 아니라도 나오는 거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는 것은 참된 것이다.


점쟁이는 예수 믿는 사람의 속을 못 본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데 마귀는 그 차원이 못 되는데 그걸 어떻게 보느냐? 소경이라서가 아니라 보는 차원이 아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것은 전부는 물질적 개념으로 ‘재수 있다. 복이 들어온다’ 한다. 이건 다 세상에 관한 것이요 하늘 아래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우리는 그 점쟁이 속에 뭐가 들어있는 것을 다 아는 거다. 점쟁이 속에 마귀가 들어 있느냐, 성령이 들어 있느냐?


그런데 성경에 악령 마귀 사단 귀신 이런 게 나오는데 나는 표현하기를 이런 모든 것들은 성도의 구원을 망치는 악령류들이라고 한다. 그러면 같은 악령류인데 왜 이렇게 각각 다른 용어를 썼느냐? 성경에 또 보면 뱀이라고도 하고, 용이라고도 하고, 옛 뱀이라고도 하고, 리워야단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이름이 다르냐?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거냐? 아니다. 아버지가 학교에 가면 교장선생님, 집에 와서는 아버지, 사회의 어떤 클럽에서는 회장님이다. 한 사람인데도 그런 것처럼 같은 악령류인데 각기 다른 이름을 쓰는 이유는 성도를 유혹하고 미혹하는 면에서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마귀가 목사에게는 성경을 가지고 달려들고, 그 다음에 사단은 사람을 막 헐뜯고, 또 자기의 정신없는 성격 성질이 안 고쳐지면 그 사람에게는 귀신이 역사한다. 이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수치다. 그러니 빨리 빨리 사람이 (중복적으로)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서 보면 아무리 공부 많이 했어도 맨 싸움판이다. 그래놓고 의원 임기가 다하면 변호사 하고. 그 참 하나님 앞에서 보면 웃기는 사람들이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선과 악을 구별 분별시켜 주어야 하는데 선악과 먹은 그대로 교회에 갖고 들어와서 성경가지고 일반적인 사회 악을 들어서 말을 하고 있으니 사람이 하나님이 성품이 사람으로 고쳐지지를 않는다.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어도 선악과 먹은 지식의 차원, 그 도덕성을 가지고 믿는다면 이거는 형벌감이다. 멸망감이다. 예수 믿어도 이건 멸망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 자체가 멸망이다. 못 쓰게 됐다 그 말이다.


사회에 나가면 기술자요 장사요 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걸로 따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인격의 성품을 가지고 보는 거다. 따라서 늙어 죽도록까지 수십 년을 예수를 믿었어도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니 자란 게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아기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의 눈을 가지고 우리 속의 영적인 것을 보신다. 당신이 말씀하심은 우리의 영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육적 개념으로 말을 하고 육적으로 알아들으면 이건 거짓교회요 이단교회다. 교회가 들고 일어나서 ‘저건 이단교회다’ 안 해도 그런 교회는 거짓이요 이단성의 교회다.


그리고 자기가 육적인 개념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혹 교리적으로 이단성이 있는 교회를 향해서 ‘저건 이단이다’ 할지라도 그 손가락질을 하는 본인들부터가 이단성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정답을 가지고 보지 못하면 그건 못 보는 거다. 이단과 거짓은 질이 같아서 통한다. 거짓이 이단을 몰고 온다고 했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건 진리가 있는 사랑인데 교회가 진리가 없는 인간 조작배기 사랑, 인인 간의 사랑, 사회 윤리 도덕적인 사랑으로 들어가면 그 교회는 망한 교회다. 교인도 그렇고 목사도 그렇고 하나같이 망했다. 쓸모가 없다. 이게 말세교회의 현상이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많은 교인들이 귀가 간지러워서 귀신의 말을 들으려고 쫓아다니는구나.


예수 믿으면서 깜짝 놀란 만한 일을 자꾸 찾으려고 하면 시험에 걸린다. 우리는 그런 데 마음 둘 것 없다. 왜? 세상을 각자 나를 위해 잡아 돌리는 거니까. 정치를 위해서 세상을 돌리는 게 아니고 세상의 주격은 바로 예수 믿는 자기다. 교회는 집이 아니고 모두 성도들이다.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돌리는구나. 우리에게는 세상이 내려앉고 하늘이 꺼진다 해도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자기를 알게 해 주는데, 자신을 안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성경은 자기를 인간으로 만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말해주고 있는데 성경을 통해 이걸 아는 것이 자기를 아는 것이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위해 인간 자기를 만든 것인데 자신에 대한 구원의 일을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악한 자다.


예수 믿는 사람은 기본구원은 다 받았다. 따라서 지금 죽어도 천국은 올라간다. 기본구원을 얻은 자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당신의 피로 나를 산 것이다. 그러니 구원 얻은 우리의 몸은 예수님 당신의 것이다. 그 다음에 구원 얻은 자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당신처럼 닮아가는 것. 이게 인간 중에 인간이다. 우리가 보면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물건 중에 물건이 있듯이 인간 중에 인간이 있다. 그런 인간 중에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지구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막:에 보면 주님의 제자 중 두 형제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지명제가 아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고, 첫째가 되고자 하면 종이 되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서 예비했건 간 그 자리는 아직 비어있다’ 라고 하셨으니 이는 각자에게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누구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 누가 앉겠느냐? 목사? 장로? 아니다. 바로 자기를 염두에 두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다. 그 자리는 않을 자를 위하여 세상 끝 날까지 비어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으면 좋겠느냐?


이건 은밀계시다. 그러니까 글자적으로는 “‘네가 그 자리에 앉아라’ 그런 말은 써 있지 않지만 그 말씀을 보는 네 속에 어떤 마음이 일어나느냐” 하고 말씀하시는 거다. ‘먼저 간 사람이 다 앉았겠지’ 한다면 성경을 볼 필요가 없다.


‘자기를 구원한다’는 말은 이룰구원에서의 말인데, 이제 예수학교에 들어왔으니(기본구원을 얻었으니) 예수님을 많이 알고 아는 만큼 인격화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으로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예수 믿어 천국 가는 건 주님께서 이미 다 해결해 놓았으니 우리가 염려할 건 아니다. 자식이 ‘나는 부모님의 자녀입니다’ 하면 부모가 ‘너는 그건 걱정 말고 제발 네 실력이나 쌓아라’ 하는 것과 같다.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음란한 세대란 신앙 영적 면에서 정신 사상 면에 지조가 없고 난잡한 자들을 말한다. ‘음란한 세대여’ 하는 것은 ‘음란한 족속들아’ 그 말이다. 일반세상도 사회적으로 음란한 자들이 많다. 참 난잡하게 논다. 이건 뭐 도덕성이고 뭐고 없다. 그러니 인간대우를 못 받는 거다. 이걸 음란한 족속들이라 그러는 거다.


신앙적으로 음란한 자들은 깜짝 놀란 만한 것을 자꾸 찾는다. ‘누가 놀랄만한 일을 한다. 누가 예언 방언을 한다. 누가 안수한다’ 하면 자꾸 그 쪽에 달라붙고, 또 ‘누가 기발한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켰다. 누가 큰 건물을 짓고 숫자적으로 부흥을 했다’ 하면 또 거기 달라붙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분을 닮는 게 구원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건 없이 눈에 나타나 보이는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고 좇는다면 그 분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지조가 없고 악하고 음란한 자들로 보신다. 그러니까 악하고 음란한 자를 안 믿는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해서 세상을 좇는 교회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니 얼마나 차원이 높으냐?


교회는 당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정신이 들어있다면 안 믿는 사람을 두들겨 패겠느냐? 당신의 자녀를 두들겨 팬다. 일반적으로도 자기 자식이 잘못하면 남의 자식을 두들겨 패느냐? 그건 악한 부모다. 자기 자식을 나무래야 한다. 지혜 없고 도덕성이 없는 자기 자식을 나무래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자들은 진리신앙에 지조가 없고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다. 교회는 그렇게 보는 거다. 일반세상은 보나마나 세상을 좇는 것이니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일반 사회 도덕성을 배우지 않아도 성경에서 바로 배우면 그 차원이 엄청난 거다. 일반사회는 ‘어떻게 조심하고’ 그런 거지만 성경으로 들어가서 보면 일반차원의 위다. 그러니까 사람을 바로 만든다. 사람을 다스린다 그 말이다. 이게 머리다. 성경은 사람을 머리 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예수 믿으면서 교회 안에서 일반 도덕성이나 공중도덕을 모른다면 이게 뭐냐? 이러면 진리를 들은 가치가 없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신령한 도덕성을 받는 건데 일반 도덕성도 못 지키면 이건 얻어맞는 거다. 이렇게 되면 사건이 와서 두들겨 패지, 하나님이 사건을 주었다 뺏었다 하지, 귀신이 들어와도 내버려 두니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건 짐승들에게 밟히는 거다. 이러면 누가 아프고 서럽고 고통스럽겠느냐? 바로 자기다. 성경은 안 그렇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 도덕성도 몰라서 눈총 받고 지탄을 받고 하면 그게 되겠느냐?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고자 하는 것부터 분별하라. 영의 생각인지, 육의 생각인지? 생각도 육의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다. 시장에 가면 가시나무에서 나는 두릅이 있는데 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두릅이 있고 땅에서 나는 땅 두릅이 있다. 값도 차이가 있고 맛도 다를 것이다. 또 참기름도 토종 한국산이 비싸다. 중국산은 절반 값이다. 그리고 맛도 다르다. 이게 뭘 보여주는 거냐?


온대지방에서 나는 과일이 따로 있고 열대지방에서 나는 과일이 따로 있다. 아주 추운지방은 열매가 없다. 이건 기후고 기온에 따른 것이지만 신앙을 놓고 볼 때 여기서 뭘 깨달을까? 이렇게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구별이 되는 게 세상인데 신앙의 세계에서는 왜 구별 분별을 안 하느냐? 더 해야 한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속에서 하고자 하는 그 생각을 분별하라. 세상 사람들은 몸 밖의 것을 놓고 ‘구별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지만 교회에서는 생각을 구별 분별을 하되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이건 세상 일반지식으로는 안 된다. 마음의 구별 분별, ‘마음이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느냐’ 하는 이거는 세상 일반지식으로는 구별 분별이 안 된다. ‘나만 좋으면 되지’ 그게 아니고 자기에게 좋아도 구별 분별해보면 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무슨 소문이 도는지? 소문을 다른 말로 하면 바람인데, 유행바람 전쟁바람 정치바람 등등의 소문도 일종의 바람인데 교회 안에 이런 세상의 바람이 불고 있지는 않은 건지? 말하자면 교회 안에 영적 기근은 어떻게 오느냐 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이치가 없으면 온다. 다른 면으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이치가 없으면 그 교회는 세상 판이 된다.


이런 교회는 인간사랑은 절절 끓는데 그러나 생각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건 없다. 그러니까 이런 교회는 세상생각이 네 속에 내 속에 막 들어간다. 이건 다른 말로는 전염병이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네’ 하는 그 홍수만 보지 말라. 사람이 많이 운집해 있다가 끝마치면 홍수처럼 떠나간다. 그 안에 들어있으면 밟혀 죽을 가능성이 많다. 그걸 알아라.


육적 기근이 들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눈이 뒤집히고 뭐든지 먹으려고 도둑질도 하게 된다. 그러면 육신에 병이 들기 시작한다. 그 끝은 죽는 거다. 그런 것처럼 교회 안에 세상의 소욕의 소문이 돌면 이것은 전염병이다. 교회 안에 영적 기근이 들면 교회 안은 진통이 오기 시작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즉, 구원을 전하는 곳에는 두 세 사람만 있어도 예수님이 계신다고 약속했다. 거기에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는 세상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말해준다. 교훈을 합치면 그게 다 나온다.


방법론을 목적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떠나갔으니 그들에게는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거다. 우리는 구원이 목적이고, 그 다음에 활용 활동하는 방편은 수단에 불과한데, 그런데 세상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수단 방법이 목적이 된다. 여기는 여러 악령류들이 막 역사를 한다. 이런 곳에는 예수님이 떠나갔으니 구원은 안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의 성품은 안 입어진다. 예수 믿는 효력은 없다.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이 안 닮아지는 그 예수는 왜 믿느냐? 왜 그렇게 믿느냐? 예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섬기고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려고 왔다. 예수님은 그걸 이루셨다. 그렇다면 나는 그 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소원 목적을 보고 나도 그 정신을 가져서 예수 믿는 효력이 발생하게 믿어야 한다. 말씀의 씨를 뿌렸으면 싹이 트고 올라와야 한다. 싹이 안 트면 씨가 썩었거나 마귀가 마음 밭의 씨를 주워 먹었거나 이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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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7 고린도전 화목하라 고전1:10-13  강승호 목사  2017-01-21 415
13956 사무엘상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말라 삼상27:1-7  전원준 목사  2017-01-21 579
13955 이사야 기뻐하는 삶 사9:1-4  강승호 목사  2017-01-20 495
13954 요한일서 빛 가운데 행하라 요일1:5-10  강승호 목사  2017-01-18 449
13953 마태복음 보상도 없고 계급도 없는 신앙생활 마19:27-30  김부겸 목사  2017-01-16 260
13952 마태복음 하늘나라를 일구는 경제활동 마20:1-16  김부겸 목사  2017-01-16 220
13951 마태복음 경계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람 마20:17-19  김부겸 목사  2017-01-16 187
13950 마태복음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마21:1-11  김부겸 목사  2017-01-16 484
13949 마태복음 무화(無化)의 영성 마21:12-13  김부겸 목사  2017-01-16 282
13948 마태복음 산을 옮기는 거룩한 힘 마21:18-22  김부겸 목사  2017-01-16 396
13947 마태복음 땅의 나라, 하늘의 나라 마21:23-32  김부겸 목사  2017-01-16 385
13946 마태복음 하느님의 대언자(代言者) 마21:33-39  김부겸 목사  2017-01-16 138
13945 요한계시 두아디라 교회 계2:18-29  강종수 목사  2017-01-15 248
13944 마태복음 기도할 때에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6:1-8  김경형 목사  2017-01-15 519
13943 마태복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38-48  김경형 목사  2017-01-15 361
13942 시편 복을 심으면 복을 거둔다. 시119:2  한태완 목사  2017-01-15 1131
13941 사무엘상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라 삼상26:5-12  전원준 목사  2017-01-14 634
13940 미가 구하시는 제사 미6:6-8  강승호 목사  2017-01-14 252
13939 이사야 너를 택하셨으니 사49:1-7  강승호 목사  2017-01-12 464
13938 역대하 선지자를 신뢰하라 대하20:20  강승호 목사  2017-01-11 594
13937 신명기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신1:2-8  이한규 목사  2017-01-10 545
13936 신명기 중간 리더의 책무 신1:9-13  이한규 목사  2017-01-10 268
13935 신명기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 신1:14-18  이한규 목사  2017-01-10 255
13934 시편 복된 인물이 되는 7대 원리 시26:1-12  이한규 목사  2017-01-10 359
13933 신명기 가나안의 축복을 얻는 길 신1:19-33  이한규 목사  2017-01-10 432
13932 신명기 축복의 모델이 되는 삶 신1:34-39  이한규 목사  2017-01-10 590
13931 신명기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신1:40-46  이한규 목사  2017-01-10 383
13930 잠언 좋은 인생이 되는 길 잠16:18-25  이한규 목사  2017-01-10 733
13929 신명기 즉시 순종하십시오 신1:40-46  이한규 목사  2017-01-10 326
13928 로마서 사랑하는 만큼 달라집니다 롬13:8-10  이한규 목사  2017-01-10 456
13927 로마서 쉽게 비판하지 마십시오 롬14:1-12  이한규 목사  2017-01-10 294
13926 누가복음 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 눅22:39-46  이한규 목사  2017-01-10 924
13925 로마서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롬14:19-23  이한규 목사  2017-01-10 515
13924 로마서 진정한 승리자 롬15:1-3  이한규 목사  2017-01-10 429
13923 로마서 진정한 승리자(2) 롬15:4-7  이한규 목사  2017-01-10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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