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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707 추천 수 0 2018.05.06 16:29:19
.........
성경본문 : 마25:34-4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5344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임금은 권세 잡은 자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창세로부터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런 자들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 신령세계를 주고 싶으신 아버지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무엇을 했다는 것이냐? 임금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임금이 언제 주렸느냐? 40절을 미리 보면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 누가 반가이 맞아들였던가? 하루저녁 자고 가려고 할 때도 여관방에서 서로 안방을 차지하려고 했지! 또 사도들이 천국복음을 전할 때는 박해가 심한 때인데 누가 쉽사리 맞아들였던가?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고 누가 그를 자기의 형제처럼 맞아들였던가? 참말로 적은 소수의 무리들이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신앙 때문에 오는 배고픔, 목마름입니다.

 

주리는 것도 먹을 게 없어서 육신의 배가 고픈 것이 있고, 영적으로 먹을게 없어서 영의 배가 고픈 것이 있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하다 보니 육의 양식이 없어 배고플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가진 자가 천국복음에 동참하는 뜻으로 육의 양식을 공급할 수가 있습니다.

 

형제가 영의 양식에 굶주림을 당하는 것을 볼 때에 영의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자들이 선행에 대해 착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할 일도 않고 어쩌다 돈이 생기면 술 퍼먹고 담배 피우고 펑펑 쓰다가 없으면 굶고 앉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거룩한 일에 쓰여질 하나님의 헌금이 일반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정을 가진 자들이 바람을 피워 가지고 죄악의 씨를 낳아 버린 자들의 씨를 맡아서 키우는 그런 곳에 쓰여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선행이 아닙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본질적 의인으로 바꾸는 일이 선행인 것입니다.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면 배부르고 만족하듯이, 목마를 때 마시게 하면 갈증이 풀리고 속이 시원하고 상쾌하듯이 영적인 면에 진리를 먹이니 만족해합니다.

 

영적인 면으로 먹인다는 게 무슨 뜻일까? 깨닫지 못하고 애타할 때에 진리생수를 먹으면, 진리이치의 확실한 것을 주면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천국복음을 수행하는 자에게 필요한 대로 공급을 하는 것도 참 시원한 일입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나그네는 집 떠나면 나그네입니다. 고향사람이 아닌 타향사람이 잠깐 볼일을 보고 가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본향이 천국인고로 이 세상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나그네의 삶이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고독하고 외롭고 피해도 많고 한스러움이 많겠느냐?

 

천국의 나그네는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적해야 되고, 하늘나라를 증거해야 되고. 세상은 정 둘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조만 간에 떠날 곳입니다.

 

천국의 백성들을 부를 때에,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살았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천국 쪽으로 돌아올 때에 마귀의 세상은 자기 것을 빼앗아간다고 얼마나 환난 핍박을 주겠느냐? 피하여 도망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때에 돕는 사람도 같은 피해를 보니 누가 쉽게 자기 형제를 돌보듯이 돌보겠느냐? 환난의 때 참 어려운 일들입니다.

 

환난의 때 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를 자기 집 식구처럼 돌본다고 하는 것은 참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기독교를 불허하는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많은 박해를 받는다면 누가 그런 성도를 돌보겠느냐?

 

자기 혼자 살려고 외국으로 나가서 사는 그런 나그네들을 말함이 아닙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물질적인 옷도 있고, 영적인 옷도 있습니다.

 

옷은 몸을 보호하고,

활동을 잘 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감추어줍니다.

 

무형적 물질에 속한 것이지만 사람이 무엇을 아는 면에서 지식이 없으면 그 만큼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알면 부끄럽지 않습니다. 신앙인격 면에 진리의 옷을 입히면 그 사람의 죄악성, 부끄러움이 감추어집니다.

 

옛사람의 노출은 옷을 벗은 거와 같습니다. 진리의 인격을 입히면 사람의 부끄러움이 감추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한 활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천국복음을 힘써 전하다 보니 육신의 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신앙정신 사상 면에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신앙이 약하면 병들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살펴보아서 신앙회복을 준 것입니다. 불신세상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죄짓고 돌아다니다가 병이 들어 누운 것을 돌아보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돌아보았느니라

 

왜 옥에 갇혔느냐? 도둑질하다가, 사기 치다 붙잡혀 옥에 갇혔느냐?

 

그런 자들을 돌아보았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세상이 오해를 하고 깨닫지 못하여 가두어 옥에 갇힌 것입니다.(사도바울)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무형적인 옥에 갇혀서 진리로 자유하지 못하고 있을 때 와서 깨닫게 하여 자유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253740: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의인들은 대답하기를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펄쩍 뛴 것입니다.

안 해서 안 했다고 솔직히 말한 것이냐?

해 놓고도 겸손히 말한다고 안 했다고 한 것이냐?

해 놓고도 잊어버린 것이냐?

 

그런데 임금의 말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그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내 형제라 함은 임금의 형제이니 곧 왕족들입니다. 왕족들이란 천국의 백성을 말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세상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는 형제는 따로 있습니다.(20:17, 2:11, 12:50)

 

지극히 작은 자란

 

어떤 사건 환경에서도 천국백성의 긍지를 가지고(왕족들이니까) 주님을 배반치 않고 신앙정조를 지키며 성화구원을 이루며 열심히 사는 자입니다.

 

불신세상이 몰라주고 알아주지 않아도, 환난 핍박 중에도 진리신앙을 붙잡고 좁은 길을 가는 자입니다.

 

임금이신 주님이 알아주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아무리 작아도 임금의 형제들입니다. 종교를 디딤돌로 삼아 세상에서 자기 영웅 되려고 하는 것은 임금의 형제가 아닙니다.

 

254146: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왼편에 있는 자들은 임금이 말하는 것을 다 수행했다고 했는데 사실 그들은 안 한 게 아니고 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대답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임금의 말대로 본다면 임금의 식구들에게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기는 했는데 누구들에게 했다는 말인가? 왼쪽에 있는 자들의 말투로 보아서 주의 이름으로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하게 했는지 주님에게 하는 것처럼 그 마음을 가지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 얼마나 더 확실한가? 그런데 임금의 말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볼 때는 왼쪽에 있는 자들이 오른 쪽에 있는 자들보다 더 잘한 것 같아서 상을 줄 만한데도 말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안 한 것이 아니고 했고, 일반 도덕적인 악을 행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을 했는데 그것이 뭐가 어때서 영벌에 처해졌느냐? 그게 어째서 영벌에 해당되는 일이냐?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양과 염소는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양과 염소는 엄연히 다릅니다. 질적으로 다릅니다. 결과적으로 미리 본다면 왼쪽에 있는 자들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주님과 같은 의인으로 만들어지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그렇게 활동을 하면 의인이 된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바리새인들 생각처럼!

 

주님이 계시는 신령천국은 주님의 의로서 된 곳으로 사람이 만들어지지 못했으면 일반적인 의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곳입니다. 일반적인 의는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의이기 때문입니다. 천국복음은 사람을 하나님의 진리의 본질로 온전케 하는 운동인 것입니다. 일반 사회적 구제운동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주님의 의의 개념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벌은 끝이 없는 형벌로 고통이고 왼쪽에 있는 자들이 받는 것인데, 일반 도덕적인 악도 아닌 예수 믿고 주의 이름으로 한 것인데 왜 그렇게 영벌에 처해지나? 영벌은 그 면에 대해 용서가 없다는 말입니다. 봐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이 의를 이룬다고 한 것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가진 의의 개념과 똑 같은 개념으로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의 개념을 가지고 가르치면 하나님 앞에 염소의 짓이 되고, 하나님의 본질적 진리의 개념을 가지고 가르치면 하나님 앞에 양의 질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양이 안 되면, 의인이 안 되면 영벌에 처해지는 줄 알아야 합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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