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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하라

마태복음 강종수목사............... 조회 수 3094 추천 수 0 2007.08.05 18: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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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6:23-24 
설교자 : 강종수 목사 
참고 : 사이버신학교 http://cafe.daum.net/st888 

자신의 의지와 목숨까지 부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요구입니다.그럼에도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가질 자세로 교훈하십니다. 우리는어떻게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은 예수께서 잡히실 날이  가까워졌을 때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시니까  베드로가 선생님을 아끼는 마음으로 말로서는 그랬습니다.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면서 주님을 보호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때 주께서 베드로에게 꾸짖으시고 명하신 말씀을 토대로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상고하려 합니다. 부인한다는 이 단어 아팔네오마이(ajparnevomai)는  자기 존재에 대한 강한 부정을 말합니다. 자기 생명에대한 자기 욕구와 자기 자랑과 자기주장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아주 거절하는 것을 뜻합니다.

1. 기독교는 무엇을 버리고 다시 더 좋은 것으로 찾는 종교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래 우리에게 전해지지않으신 분입니다.
요 17: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그런 영광 중에 계시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광스런 자리를 비우시고 버림을 당하신  마치 천국의 영광에서 좌천되어 더러운세상에 오신 것 같이 되신 분입니다.

빌 2: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하신 말씀이 그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부활이라는놀라운 새생명의 사람으로 다시사심으로 온 세상에 당신이 알려지게 되었고, 인생의 진정한 소망을 증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사후의 세계에 영원한 영생의 나라를 가능한 예언으로 믿어지게 부활이라는 전혀 새로운 몸을 이 세상에서 증거하셨습니다.

그 영광스런 부활의  영광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2천년의 세월을 거룩하게장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십자가로 죽으신 비참한 버림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제자들은 기적을 연출하시던 주님이 이런 절망의  말씀을 하실 때 베드로가흥분한 듯이,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이 베드로의 언행은 주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고 우리 죄를 위해 속죄양이되실 것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고 단지 그 동안에  역사하시던 주님이 희망이었기에 죽으시게 된다는 말씀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가 되는 과정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더 영광스럽기 위해 하늘 영광을 비우시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죄많은 세상에 오심같이우리도 새로운 영생의 몸을 위해 이 세상의 조건들, 부모와 형제,친척과 고향, 모든 세속의 기회와 영광을 뒤로하고 오직 주님을 먼저 찾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일반 종교와 같이 이해하려 합니다.이것은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세상의것들을 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의 것들과 자기 목숨마저 버리고 새 목숨, 영생을 바라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롭게 하여 주시는 것을 다시 찾는 종교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참된 기독교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자기를 부인하는 종교로서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하나님을 인정하려면 자아를 부정해야 합니다. 이 버리고 찾는 것은 한 사람이 두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여러 기적의 현장에 함께 했고 5병2어의 기적은 직접 행사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로그들은 예수님이 당대에 이스라엘의 소망이고 다윗이나 솔로몬시대처럼 신성한 영광의 정치가로 서시게 될 것을 기대했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요 18: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게 되는 것은 우리  이방인까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오래된 예정이었습니다. 주께서 죽으시게 될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너무나 당황한 태도로 주님을 붙들고 만류했습니다.

그때 주께서 주신 말씀,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인간적이었고 그 인간적인 생각은 용서할 수 있는 정도가아니라 바로 사단의 역사였습니다. 어찌 이렇게 강하게 비판받고 꾸짖음을받았을까 의아(疑訝)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이 대조적인 표현에서 우리는 순수복음주의의 신본주의와 인간의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는 인본주의라는 신학용어를 생각하게 합니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본문에서 베드로가 사단의조종을 받았듯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사람의 뜻을 먼저 생각하다가 신학이 좌경되고 교회가 어지럽게 되어버린 일들입니다.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사람의 동정과 사람의 뜻을 내세우면 교회가 무너집니다.주님은 단호히 베드로를 꾸짖으시고  이어서 주신 말씀으로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로 죽으시는 것은 평범한 생각으로는  별로 종교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는 죄인 취급받는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에속죄를 위해 어린양을 잡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주신 속죄 제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 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마 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3.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목숨걸고 하는 행위입니다

24-25『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눅 9: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는 종교인으로서 사회 문화인이  아니라 기독교는 세상 어떤 사상보강한 사랑과 절대적 진리를 지닌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 받은 단체입니다.
기독교가 2천년간 이어 온 역사는 가히 피의  역사라 할 만큼 순교가 많았고 수고와 땀을 많이 흘린 종교입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의 불모지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기독교는 철학이나 종교적 낭만이 아닙니다.사람들이 모여 감동하고 베드로처럼  예사로 고백이나 하는 정도의 단체가아닙니다.기독교는 감동과 고백만으로는 부족합니다.사실은 기독교인이 제대로 되려면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합니다.

요즘 들어 생명을 담보로 믿어야 하는  성경적인 신앙에 대해 교훈이 없어지고 매일같이 세상의 복이나 받으라는 설교 때문에 교회의 본질이 완전히무너져버렸습니다.

전통적인 교회의 성경적 복음을 외치면 고지식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양태는 교회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는 불행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으로 족하고 우리는 복을 받으면 된다는 기복신앙주의에 현혹되었습니다.

예수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예수를 인간적으로보호하고 지키려는 베드로의 정신입니다.그 마음은 사단의 정신이었습니다.내 말이 아니고 본문에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셨습니다.그런데 우리가알 것은 우리 자신이 성도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주님처럼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삶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 '자기 십자가'란 말씀은 우리가 가질 개인적인 여러 경우의 핍박과환난 그리고 신앙으로 살기 위한 곤고한 일들입니다.신앙은 긍정적인 삶을가져다 주는 삶의 쉬운 방식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른 사상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사상입니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세상의 사상과는 대화가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모든 교주와 성현들과 달랐듯이 우리 자신들도 모든 종교인과  다른 사람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서 살아가는 매우 특별하고도 세상에 이해 받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엡 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히 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런 사람이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총칭합니다. 기독교 신앙인으로 진리를 따라 산다는 사람으로서 세상에게 이해해 달라는 식은 옳지않습니다.세상이 예수를 아직 모르듯이 우리를 모릅니다.세상은 예수를 핍박했듯이 우리를 계속 핍박할 뿐입니다.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6 사람이 만일 온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너무도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그 정신은 목숨을 담보로 하라는 뜻으로 아주 극단적인교훈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우리 기독교를 일방적이고 독선적이라 합니다. 맞습니다.왜냐면 진리는 절대적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감히 목숨을 걸고 쟁취할만한구원이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목숨 걸만한 일들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특히 종교인으로 살아가는중심이 목숨 걸고 믿는 종교는 더더욱 잘 없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이슬람교도 아니고는 목숨걸고 종교인이 되는 종교는 기독교가 가장 강합니다.그러나 기독교는 사랑과 진리로 목숨겁니다. 지금  탈레반 이슬람교도들은악의 무리로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종교! 우리 기독교입니다. 새로운 자신을 얻기 위해 주님을 뜻대로  우리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할 때 얼마나 영광스러울지  곧 이어지는 17장에서 주님은 해 같이 빛나는몸으로 변형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장면을 연출하시어 제자들에게 과연 십자가로 돌아가셔도 그렇게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날의 부활영광을 위해 주님처럼 사람의 뜻을 따라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뜻을 따라 목숨을 거는 자들로 지혜와 용기를 다하는자가 되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힘있는 주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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