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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누가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534 추천 수 0 2016.02.16 18: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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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0:29-3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5.12.13 여의도순복음교회 

1512131848_01.jpg“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중략)…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29∼37절


율법과 종교의식은 생명을 살릴 수 없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되시는 주님 우릴 살리셨기에
우리도 고통받는 자들의 선한 이웃 되어야 해


 유대인들은 강대국 바빌론과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그 나라에 끌려가서 고생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포로귀환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던 유대인들 중에 유대의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피가 섞여 어머니가 이방인이든지, 아버지가 이방인이든지 한 편이 유대인이 아니게 태어난 이들과 섞인 혈통을 가진 자들이 유대사회에 들어오려고 하니 유대사회에서는 그들을 개 취급하며 받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목에 집을 짓고 모여 살았고, 그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이 아니고,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인 그런 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생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물으셨고, 율법교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율법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주님께서 “네가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하자 주님께서 이웃이 누구인 것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는 강도가 많았습니다. 왜냐면 여리고 평지는 비가 많아 물이 충분히 있고 땅이 비옥해서 많은 양식을 산출했습니다. 그 양식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것을 전부 팔아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는 그 길에는 돈 많은 자들이 지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길목을 강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물건을 팔고 난 다음에 돈을 허리춤에 묶고, 포켓에 넣고, 예루살렘에서 자기 고향 여리고로 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 안 죽을 만큼 얻어맞고, 옷과 돈을 다 뺏겼습니다.

 “사람 살려!”라고 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데, 제사장이 거기를 지나가다가 이 강도 만나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보고 도와줄 생각을 안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단단히 보고 다니지 왜 저 모양이냐? 쯧쯧쯧”하며 지나가 버렸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제사장이 도와줄 줄 알고 고함을 쳤으나 제사장은 유대종교의 수행자인데도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레위인이 총총 걸음을 하고 그 길로 왔습니다. 레위인은 의식주의자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초하루날이다, 보름이다, 무엇을 먹어야 된다, 무슨 옷을 입어야 된다’라고 하며 형식과 의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레위인도 보더니 “아유 많이 얻어맞았군. 쯧쯧. 요사이에는 정신을 차리고 다니지 아니하고 걸어가다가 저렇게 강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불쌍하다. 그러나 난 바빠서 도와줄 수 없구나”하고 그냥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자 이 사람은 이제 죽게 됐습니다. 제사장도 피해 가버리고, 레위인도 피해 가버렸습니다. 제사의식을 드리는 율법도 지나가고, 의식과 형식을 주장하는 의식적인 종교도 도울 수 없어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거리로 말을 타고 오다가 이를 보고 “큰일 났구나. 여기 사람이 죽게 됐구나”라고 하며 말에서 내려서 이 사람의 상처 입은데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포도주는 알코올성이 있기 때문에 균을 죽여서 곪지 않게 만들어 주고, 그 다음에는 기름을 부어 상처를 부드럽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자기 옷을 붕대로 만들어 감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에 태워 주막집에 데리고 가서 방 하나를 빌려 먹을 것을 먹이고, 주인을 불러서 “이 사람 이 주막에 입원을 했으니 치료해 주십시오. 두 데나리온 선불금으로 주고, 그 다음 내가 사업을 하고 돌아올 때 또 다시 들릴 테니까 그때 비용이 더 나오면 내가 비용을 갚아 주겠다”라고 하며 다시 자기길을 떠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이 율법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참된 이웃이냐?” 예수님이 물으시자 그 율법교사는 “두말할 것 없이 피하여 가버린 제사장도, 피해 가버린 레위인도 아니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좋은 이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렇다. 사마리아인이 좋은 이웃이다. 그러니 당신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사랑과 율법

 율법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법으로서 사람을 보면 안 잡힐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먼지와 티끌같이 세상에 죄가 없는 데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죄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주셨으므로 그 보혈을 의지해서 우리는 영원히 용서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죄가 또 우리 몸에 붙으면 회개하고, 죄를 멀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1절에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라고 했습니다. 이 제사장은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인데도 사랑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은 어떠한 도움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죄지었을 때 지적해서 벌을 받게 하는 것이지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은혜와 진리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 그들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죄가 뭔지도 모르고,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율법과 은혜가 무언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는 양심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면 고통을 당하였기에 양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양심시대가 지나고 율법시대가 왔습니다. 율법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계명으로 사람을 벌주는 것입니다. 그 율법시대가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기고 피 흘려 율법 아래에서 지은 모든 죄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다 청산해 버리셨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이 사람은 벌을 받아야 됩니다”라고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죄하면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아닙니다. 내가 대신 죽었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저 사람이 살인죄 지은 것 내가 대신 갚았는데 이 사람은 벌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변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큰 소리로 “회개해, 끊임없이 회개해. 죗값은 내가 갚았으니까”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율법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 아닙니다. 은혜요, 은혜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돌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주듯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으면 보혈이 값없이 우리를 씻어서 구원해 주셨기에 천국에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당당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평생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상태인데 그와 같은 상태로 죄많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보통 사람은 부끄러워서 설 수 없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서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로 25절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율법 밑에 있는 것은 초등학교 선생 앞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율법을 어기면 너는 죄인이야!”하고 꾸지람을 받을 때,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예수님반에 들어 왔습니다”라고 하면, 초등학교 율법교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들에게 채찍을 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의식주의적인 종교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먹고 어떤 기구를 문간에 차려 놓아야 되고, 몸에 부적을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하고 특별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의식과 형식주의를 통해서 보호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2절에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라고 했습니다. 이 강도 만난 사람을 의식주의를 주장하는 레위인도 보고 지나갔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 16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런 음식을 먹어야 되고, 이런 물을 마셔야 된다. 절기는 지켜서 이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있어야 된다. 초하루에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 안식일 제사도 드려야 된다’라고 하며, 온갖 의식과 형식을 다 드러내었습니다. 그것은 의식종교인데 그 의식 역시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율법주의나 의식주의자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2.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
 
 여기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기름과 포도주와 붕대를 가지고 우리 주위에 와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 되시는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과거에는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전혀 의미를 모르고 교회 가서 목사가 설교해도 자꾸 꾸벅꾸벅 잠을 자면서 ‘아 이거 빨리 안 그치나. 아∼지루하네. 억수로 길게 하네’라고 했던 것은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속에 계시면 몸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어도 속에 성령이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면서 자꾸 말씀에 동조하니 잠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마음에 달아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이 되어 말씀이 마음에 달고 들어도 들어도 피곤치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고 끌어당기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기가 막힌 천국의 매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매력이 우리에게 있어 우리가 말씀을 증거하면 귀를 기울여 듣게 되고, 기도하면 응답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하신 이 말씀은 성령이 우리 속에 성전삼고 거하며, 이 성령이 항상 우리에게 기름부음이 되시고, 포도주가 되시고, 또 위로와 보호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처음 보혜사요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함께 계신 자임으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령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같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도 먼저 성령님을 불러야 합니다. “성령님 기도합니다. 성령님 내게 기름 부어주시고 도와주셔서 기도를 올바르게 하고 잘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당해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보혜사 성령이여 무슨 말인지 대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님이 우리를 통하여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중하고, 큰 선생님을 모시고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되시는 예수는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니 피는 우리의 영원한 의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7편 3절에도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싸매어주고, 고쳐주고, 돌보아주시는 선한 사마리아인 되시는 예수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3. 세상에 있는 주막 교회

 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이 요즘의 호텔이었습니다. 교회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주막교회’입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이곳이 ‘천국호텔, 주막교회’인 것입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이 강도 만난 사람을 주막교회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첫째 일이 치료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침과 동시에 치료를 해주십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주막교회인 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모든 병을 고치십니다. 시편 103편 3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했듯이, 죄 용서와 병 고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목마른 자에게 말씀의 생수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쳐서 씩씩한 사람으로 일어서게 만들어주면 주님께서 그 수고에 대해서 반드시 상급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병을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저주에서 해방이 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입술의 말로써 씨앗이 심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을 말합니다. 죄 사함에 대해서 말하면 용서와 의를 우리 주위에 심는 것이고, 치료를 말하면 치료의 씨앗을 심은 것이고, 십일조를 드리고 주님이 아브라함의 복을 주신다고 말을 하면 축복을 심은 것입니다. 말이 죄사함이 다가오는 길목이 되고, 말이 치료가 되고, 말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고 말했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성경에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배고픈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오병이어로 먹여주셨습니다. 외아들을 잃고 관을 걸머지고 가면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청년아 일어나라’하며 살려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고치시고, 먹이시고, 죽음에서 살리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치료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웃에 있는 사람이 멀리 있는 친척보다 더 가깝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웃사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옆집에서 조금만 큰소리를 내어도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계층 간에 소음으로 시끄럽다고 싸움이 붙어 칼을 들고 와서 휘두릅니다. 심지어는 이웃에 누가 죽었어도 죽은지도 모르고, 죽은 지 한 달 만에 죽은 시체를 발견할 정도로 이웃과 담을 쌓고 너무나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선한 이웃이 사라져 가는 사회를 탓하지 말고,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따지지 말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다 우리 이웃이요, 우리 형제인 것을 알고 우리가 돌봐주어야 될 것입니다.

 

-기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아픔을 치료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선한 이웃이 없음을 한탄하지만 말고, 내가 선한 이웃이 되어 고통당하는 자들을 돌아보게 하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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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1 로마서 호모 데우스 Homo Deus 롬7:14~25  허태수 목사  2018-02-10 276
14900 마가복음 미치광이(狂人)이길 포기하지 말라. 막5:1-15  허태수 목사  2018-02-10 200
14899 요한일서 하나님과 사랑 요1서4:7-12  허태수 목사  2018-02-10 237
14898 요한복음 나는 지금 ‘그’사람 때문에 살고 있다. 요21:15-17  허태수 목사  2018-02-10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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