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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지혜로 사는 영성생활

마가복음 김부겸 목사............... 조회 수 319 추천 수 0 2015.11.21 23:59:35
.........
성경본문 : 막12:18-27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blog.naver.com/malsoom/111439541 

2010년 8월 15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가복음 12장 18절~27절

설교제목 : 동양의 지혜로 사는 영성생활

 

  <책 이야기>

【<주역> 등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동양은 항상 조금은 모자라는 상태를 완전한 것으로 보았고, 가장 완전한 것은-가령 <주역>의 ≡+≡와 같은 것-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동양의 현인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를 더 선호했고, 일이 지나치게 잘 풀리면 곧 경계태세로 들어가 언제 닥칠지 모를 불행에 대비하곤 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무조건 가장 성(盛)한 것이나, 한 방향으로만-그것도 바깥쪽이나 위쪽으로만- 뻗어 나가는 것, 다시 말해 음양 중에 양(陽)적인 데에만 가치를 편중하는 것 같다. 서양의 유명한 역사가 슈펭글러(Spengler)는, 구미의 문화가 무조건 위로 혹은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만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파우스트(Faust, 전지전능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 영혼을 판다는 차원에서)적이라 불렀다.


이것을 그들의 언어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건물의 위아래를 왕복하는 기계라는 뜻에서 승강기(昇降機)라 하는 것을, 그들은 엘리베이터(elevator) 혹은 리프트(lift)라 부르면서, 다만 올라가는 양(陽)적인 기능만을 일방적으로 지칭해서 부른다. 또 우리말의 문을 말하는 출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동시에 말하는 반면, 영어에서는 엑시트(exit)라 하여 나가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들어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외에도 많은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서양인들은 동양에서와 같이 균형과 조화에 대한 철학에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동양은 늙은 현인의 노숙한 문명을 가졌다면, 서양은 발랄한 젊은이의 문명을 가졌다고 말하면 쉽게 이해될 지 모르겠다.(최준식 교수의 『개벽시대를 여는 사람들』중에서】


   최근에 읽은 이 글이 참 인상적으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의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실은, 이른 바 현대 서양문명이 동양에서 전파되면서 동양의 문명이 과도하게 서양의 문명을 닮아갔고, 그래서 이제는 동양의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이 섬기고 있는 기독교 정신만 해도 그렇습니다. 원래 동양적 정신인 기독교가 서양의 옷을 입으면서 그 정체성에 크나큰 흠결이 일어났고, 그렇게 탈색된 서양의 기독교가 다시금 동양으로 전파되면서, 진리에서 왜곡된 서양문명의 첨병(尖兵, 행군의 맨 앞에서 경계ㆍ수색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 또는 그런 부대. ‘선봉장’, ‘앞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죽음의 문화 이야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큰 교회를 일궈내신 어느 목사님께서 노환 때문에 사경을 헤매신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언제 목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셨더랬습니다. 일이 이쯤되니까, 그 교회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 목사님의 쾌유를 위해서, 중보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등이 연이어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목사님께서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동을 보면서 “우리 한국교회가 서양문명에 정말 과도하게 오염되었구나” 하는 점을 뼈저리게 느껴보았습니다. 죽음의 문제란 그렇게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닙니다. 연로하신 그 목사님께서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 목사님은 영원히 사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시간만 뒤로 조금 늦춰졌을 뿐, 언젠가 훗날에 반드시 죽음의 문을 열어젖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소동은 서양적인 것입니다. 동양의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동양의 죽음문화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퇴계선생의 최후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여느 대형교회의 목사님처럼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저녁에 눈이 내렸다. 제자들을 시켜서 당신이 아끼던 매화나무에 물을 주게 하고, 임종의 자리를 정돈시킨 다음 몸을 일으켜 달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여, 한평생 지켜온 정좌의 자세로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자전거 여행’ 중에서).


  삶이 인생이라면 죽음도 인생입니다. 오르막인 삶도 인생이고, 내리막인 죽음도 인생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 인생으로 받아들이는 지혜, 그것만이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 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여자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뒤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들이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출 3:6)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 하고 있다."(마가 12:18~27)】


  예수님께서 구분하신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떤 차원의 것일까요? 그것은 곧 지상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곧 ‘죽은 사람’이요, 지상의 삶을 끝낸 사람이 곧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반전과 역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생존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간다고 했을 때, 중보기도와 철야기도, 금식기도로 애걸복걸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퇴계 선생마냥 평소 기르던 매화에게 물을 주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자세로 앉아서 죽음의 시간을 조용하게 맞이하는 것이 더욱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다운 일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동양의 지혜로 사는 영성생활’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김부겸 목사<수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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