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이상호 목사(1351)
남도 1번지 강진 해남에 다녀와서
100대 명산 등반에 도전하여 42번째 강진 덕룡산과 43번째 해남 두륜산에 다녀오며 강진과 해남의 교회들을 다녀왔다. 유홍준이 그의 저서‘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권에서 남도 답사 1번지로 강진과 해남이라 하였다.
강진읍교회(박종화 목사)
7월 8일 먼저 강진읍교회를 찾았다. 마침 금년 5.18때 민중항쟁 사적지로 인정받은 교회다. 1913. 11월에 창립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앞장선 강진읍교회는 6.25 동족상잔의 비극에서는 9대 배영석 담임목사의 순교로 십자가의 길을 걸었고, 1960년대 나라가 어려울 때는 이웃을 살피는 사랑의 교회로, 7-80년대 유신정권과 군부독재시절에는 정의롭고 용기있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사회선교와 통일을 지향하는 좋은 교회를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덕룡산에 올랐다. 덕스럽기보다는 설악산 공룡능선과 같이 험악한 산이라 시속 0.9km로 가장 더운 시간에 아주 힘들고 더딘 산행이었다. 만덕광업에서 동봉에 올라 서봉까지 다녀오는데 불과 3.6km에 불과했지만 하산중 만난 부부는 93좌 산행중 가장 힘든 산행길이라고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인근 가우도에서 바람쐐고 저녁엔 박종화 목사의 사랑으로 맛있는 보양식을 먹고
영랑생가와 모란공원에서 저녁 산책을 하는 등 참 행복한 강진 나들이였다.
용동농민교회(한강희 목사)
강진에서 해남군으로 넘어가는 길은 금방이었다. 옥천면 용동길 450에 위치한 용동농민교회는 고 이준묵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76세시인 1986. 10. 8 개척한 교회로 한강희 목사님이 20여 년간 시무하다 지난 5월 말 은퇴하셨다.
그러나 아직 후임 목회자가 없어서 목포에서 이곳까지 설교하시러 다니시는데 수요예배 후 우리 일행을 영접해주셨다. 마침 교회당 안에 황토집이 있고 교육관이 있어서 넉넉한 공간에서 쉴 수 있었다.
9일 아침도 소머리국밥으로 근사하게 잘 먹었다. 게다가 7순의 한목사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이곳에서 목회하며 하루 10km 이상 걷는데, 특히 우리가 오를 두륜산(해발 700m)은 3천 번쯤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고의 안내자를 만난 셈이다. 덕분에 안전하게 오소재 쉼터에서 대흥사 쪽으로 7km 두륜산 로얄코스를 넘었다.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대흥사(중수중), 유선여관을 둘러보았다. 유홍준이 좋아하는 여관이라 보고 싶었는데 사찰 정화구역 내라 간판도 없고 팔린 모양이다.
해남 역사탐방과 신기교회(박승규 목사)
9일 오전부터 신기교회 박승규 목사가 와서 혼자 산 아래에서 걷기하는 아내에게 말벗이 돼주고 오후엔 우리 일행을 안내하여 해남 명승지를 안내해 주었다.
고산 윤선도유적지에는 찾았지만 QR코드를 요구해서 그냥 돌아나왔다. 그런데 10알 허외과에 들렀다가 허중재 원장의 해남여행기와 윤선도 평전을 받아와서 감사했다.
인근에 한신 선배 고정희 시인 생가와 묘지를 찾았다. 올케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고 차 대접까지 받았다. 서재 겸 기념관과 여러 시들을 둘러보며 담소했다.
이번에는 민족시인 김남주 생가를 찾았다. 시인의 상반신상과 좁은 감옥, 생가, 팬션을 둘러보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란 시를 읽으며 고난의 시인을 기렸다.
끝으로 박목사가 시무하는 신기교회를 찾았다. 마산면 신기길 48 약 2천여 평에 교회, 새날지역아동센타, 주간보호센터 새날을여는집, 요양원 새날의집, 게이트볼장, 사택 등 마을을 이루고 직원들 등 상당한 규모의 사람들이 있었다. 작년에 했던 용전새날마을학교 등 마을과 지역사회를 위해 아주 큰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농촌 인구감소와 지역 초등학교의 존폐문제가 대두되어 염려가 있었다. 도시 인구가 들어와 살아주면 좋은 일이거니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갈 길을 가자고 격려하며 기도로 마무리 했다.
이번 강진, 해남 여행은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에서 마쳤다. 그리고 산에 오르고 또 올라 멋진 풍광과 함께 체력도 키웠다. 무엇보다도 안내해주고 좋은 시간으로 이끌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며 동행한 정주일 신예숙 최용우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며 기행문을 마친다.
이상호 목사(세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