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공동체 탐방기
경남 합천군 쌍백면 하신술곡길 113-33, ☎ 070-4155-8796
대표 : 이재영 장로
7월 14일 오후 점심시간에 도착하여 먼저 직접 농사지은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바로 대표 이재영 장로가 일행을 예배당으로 안내한다. 공동체 식구들이 지은 건물로 1층은 여자들 숙소이고 2층 예배당이었다. 남녀노소, 재소자, 장애인, 비장애인 등 30:30:40%로 35명 정도가 사는데 주일날 예배에는 50여 명이 참석하고 헌금(2-300만)으로 생활하는데 충분하다고 한다. 예배당에서 주말이면 영화를 상영하여 마을극장이 된다.
식당 옆에는 남자들 숙소이고 뒤로 60평 대지에 12평짜리 세 채가 지어져 있는데 분양가가 3,500만원이라고 한다. 모두 공동체 자력으로 짓는데 일반 건축의 3/1수준이면 짓는다고 한다. 토목공사비가 많이 드는데 72세 이장로가 직접 포크레인을 운전한다고 한다.
오두막공동체는 부산에서 기독교 출판을 하던 이장로가 1983년 교도소에 복음책자 ‘에바다’문서선교를 하면서 만난 재소자들을 돕다가 아예 그들과 생활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태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는 말씀을 따라 재소자들이 찾아와 도움을 주었는데 알고보니 술값대주기, 재범에 공범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아예 같이 살다보니 공동체가 된 것이다.
같이 살아도 변화가 없었다. 이곳저곳 옮기는 과정에서 한 동네를 뒤집어놓기도 하고 결국 2006년에는 18명을 알콜 중독으로 입원시켜놓고 이곳 합천에 들어왔다고 한다. 유럽의 모 공동체를 만나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군데 모아놓고 동물 사육하듯 하지 않고 사람 사는 구조로 변화시켰다. 어린이부터 어른, 남녀노소 섞어 살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돌아가게 되었다. 출소자, 알콜중독자, 지적장애인, 건강한 부모 따라오게 하기, 은퇴자, 자원자들을 모으니 마을을 구성하게 되었고 지금은 저절로 돌아가는 체제가 되었다고 한다.
탈 바벨론적 사고로 함께 살면 해결된다고 한다. 농촌에서 문명사회문제들이 해결되면서 하나님 나라로 형성되었으니 이것이 본래 하나님 나라라는 주장이다.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 치유, 회복이 일어나고 스트레스가 없으며 말씀대로 살면 성자된다. 광고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하나님 말씀대로 먹고 살면 건강하고 행복하다.
이제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약 1.5km 정도 위에 위치한 들꽃갤러리카페로 인도했다. 가는 길에 목공소, 건축중인 베이커리,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아주 예쁜 이대표 처제네, 근 2km 산동네에 비닐하우스 카페였다. 여성 화가가 거주하면서 예쁘게 장식하고 커피와 다양한 메뉴의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이미 공동체 가족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이 이상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멀지만 차를 마시기 위해서 걷고 좋아할만 했다.
이장로의 이야기 강연은 계속 이어졌다. 카페에 있는 도구들은 거의가 폐품, 버린 것들을 재활용하는 게 많은데 "못난 것도 모아놓으면 아름답다"고 한다. 공동체나 은퇴 후 잘 살려면 산을 사야 한단다. 작은집 운동을 펼치며 산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산에는 나무, 흙, 돌 등 건축자재가 많이 있고, 대지보다 싸다. 어떤 나무는 수억 원짜리가 있지만 나무 값은 안친다. 그리고 산에는 각종 나물과 열매 등 식물과 동물(산토끼 멧돼지...)까지 있다. 포크레인 한 대만 있으면 될 것 같아 배우고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동체는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스스로 자라나 생명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이 유기체이듯 공동체도 복음적인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물론 거기에는 한 지도자의 희생과 실천적 삶이 숨어있으리라.
이장로는 시골생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한다. 대사회적 약자들이 도시경쟁력에서는 살 수 없지만 농촌에서는 기본적인 먹거리가 생산가능하고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신앙적 측면에서 환란시대를 넘어가기 위해서도 시골생활이 유력하니 공동체는 피난처요 방주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성이 곧 생명성이다” 말도 가슴 뛰게 한다.
모든 땅과 공동체는 사단법인화 되어 있고, 97세 세 노인이 돌봄사역을 할 수 있으며 서울 아파트 1평 값으로 집 한 채 건축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귀촌귀농운동으로 신앙, 선교, 자립, 생활 공동체였다. 실제로 공동체에서 선교사 3가정을 파송하였고 국내에 들어오면 생활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였다. 전통적인 교회가 할 수 없는 큰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목회자인 양지를 부끄럽게 하였다.
내려오면서 천국같이 꾸며놓은 처제네집 정원에 머물며 담소했다. 교사 은퇴한 분이 3년 만에 정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대상포진 재발로 아내와 동행하지 못한 것이 처음부터 못내 아쉽다. 그리고 35년 동안 교회에만 매달려 생명운동, 공동체를 좋아했으면서도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친다. 정말 꿈같은 1박2일이었고, 책상에서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안내해 준 정원범 교수와 경련으로 고생하신 김교수님, 그리고 차량을 운전해준 윤목사님, 함께 해 준 영성모임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