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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春들을 위한 설교

에배소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8 추천 수 0 2021.01.19 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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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2:17-2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9.5.13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성암교회의 靑春들을 위한 설교

엡2:17-20

 

어린이 주일도 있고, 어머니 아버지 주일도 있는데 교회를 젊어지게 하자면서 정작 청년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1930)’앞 머리를 읽는 것으로 청춘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중에 대부분은 심장의 고동도 잠잠하고 피도 더 이상 끓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 수필 한 부분을 읽노라면 묘한 설렘과 흥분을 느껴집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인 청년들도 과연 그들의 현재를 흥분과 설렘으로 맞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청년들은‘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서 5포 세대(3포+취업, 내 집 마련)를 지나 7포 세대(5포 + 인간관계, 희망), 심지어 9포 세대(7포 + 건강, 외모관리)까지 다다라 있습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교회, 사회가 도대체 무슨 희망이 되냐고 따집니다.

 

교회에 청장년이 없다고 푸념하기 이전에, 요즘 청년들은 열정과 패기가 없다고 비판하기 이전에 과연 기성세대들이 오늘의 청년을 바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교회의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저부터가 오늘의 청년에 대해 무지했고, 21세기 청년의 열정을 쌍팔년도 시선에서 낭만화, 대상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청년의 꿈과 가능성은 꼰대가 되어버린 기성세대들의 성공신화를 위해 동원되는 인정투쟁의 산물이지, 그것이 결코 현실의 청년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풋풋함과 포텐(가능성)이 지금껏 찬양되는 이유는 모두가 어떤 청년에 대한 도착적 환상, 즉 관념 속 청년상에 집착하기 때문 아닐는지요. 이런 이유로 거의 대부분의 현실 청년들이 겪는 절망과 시련은 언제나 생략되고 심지어 미화되기까지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청년 갱생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면 환자지 왜 청춘입니까. 우리 사회는 아픔의 근원이 되는 치부를 감추고 무조건 청년들에게 열심히 참고 견디다 보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개천에서 이제는 용이 안 난다는 것을 어른들만 모르지 청년들은 다 압니다. 그 현실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을 하는 기성세대들을 청년들은 이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청년들은 도저히 ‘지금-여기’에서 불안해 못 살겠다고 하면서 약을 먹고, 자해를 하고, 급기야 자살까지 감행합니다.(20대 사망 중 원인 중 1위가 자살이고, 그 비율은 수년간 40%~50%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암울한 21세기 청년의 실존 속에서 우리는 어린이, 어버이 주일을 하면서 청년주일 한 번 변변히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서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부터 에베소 2:11-22 말씀을 통해 지혜를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이 식민지 아시아 주의 수도였습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였고, 동방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중요한 상업도로가 있었던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 못지않은 로마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가 바로 에베소였던 것이죠. 어쩌면 에베소는 제국의 질서, 로마의 이데올로기가 널리 퍼지고 적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21세기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원리에 철저히 종속적이고 충실한 대한민국과 그 중심부 서울을 연상시킵니다. 자본의 논리에 삶의 안전망이 무너진 한국과 로마제국의 그늘 아래 놓여 있던 바울 당시 에베소는, 21세기 제국이라는 할 수 있는 자본과 2천 년 전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제국의 강압 속에서 동일한 제국의 고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닮았습니다. 그 로마제국의 한 복판에 위치한 도시가 바로 에베소였던 것입니다.

 

본문 2장 11-12절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고 쓰여 있는데, 이때 ‘여러분’은 이방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에는 하나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 된 자”(2:13)라고 바울은 정의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평화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해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을 하나 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2:14-18)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는 “막힌 담을 허무는 화해의 공동체”(2:15)이어야 한다고 바울은 힘 있게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 안에 분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바울은 안타깝게 여기면서 눈물로 교회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지금 에베소를 향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비록 지금은 분열되어 있지만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교회를 통해 발생할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에 있었던 공동체입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갈라져 있지만, 비록 지금은 우리가 부족해서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우리 가운데 성령이 오셔서 다시 우리를 하나 되게 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 소망을 간직한 공동체가 바로 초대교회였던 것이죠. 특별히 바울은 좌절과 환란 가운데 있는 현실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그 안으로 도래할 새로운 미래를 소망하는 믿음을 지녔던 사람이었고, 그의 믿음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초대교회를 말할 때 마다 자주 언급하는 것이 교회의 물리적 건축재료인 돌에 대한 묘사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퉁잇돌(2:20)’이 대표적이고, 베드로 전서에는 모퉁잇돌과 더불어 ‘산 돌’(벧전 2;5)이라는 표현도 더불어 나옵니다. 성서에서 교회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돌은 구체적으로 교회를 이루는 개체, 즉 성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짓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돌이 필요합니다. 모든 크기와 형태의 돌이 필요하다는 말은 각각의 권리와 주장을 고집할 수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각각의 돌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릿돌’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마가 12:10-11)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릿돌을 기반으로 다양한 살아있는 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자의 목소리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의 신분이나 성격의 다양성은 그리스도라는 머릿돌 위에서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하는 봉사와 선교가 다른 사회단체가 하는 그것들과의 다른 점입니다.

 

‘죽은 돌’은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습니다. ‘산 돌’은 ‘죽은 돌’에 대한 대립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는 교회를 ‘산돌로 지은 집’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무슨 뜻 일까? 어떻게 돌이 살아있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산돌이란 목수의 아이디어에 자기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살아있는 돌만이 자기를 깎아 다른 돌을 옆에 설 수 있게 하고, 자신도 다른 돌 옆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갈등적 상황을 말하는 가운데 ‘산 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특정세력을 염두에 둔 말일 텐데, 그들을 ‘산 돌’과 대비되는 ‘죽은 돌’이라 가정한다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오해와 불신과 갈등은 자신을 깎아내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죽은 돌’ 같은 성도들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것은 초대교회뿐 아니라 현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에베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가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2:20) 산돌에다가 모퉁잇돌이 부가된 셈이죠. 즉 교회의 성도는 살아있는 돌이 되어야 하고,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에서 모퉁잇돌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퉁잇돌을 끌어들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리서 성전이 됩니다.”(2:21)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건물 전체가, 즉 교회가 연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연결하게, 서로를 통하게 했으니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 역시 교회에서 화해와 소통과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모퉁잇돌이 함의하는 바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교회 청년들에게 당부합니다. 우선, 이런 세상을 여러분들에게 물려주어 미안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기성세대의 믿음이 부족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과 섬기는 교회를 하나님 보기시게, 그리고 젊은 청년들이 보기에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역사는 늘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썼던 에베소 교회도 마찬가지였죠. 열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웠던 교회는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먹었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회 안에서 분란이 생기고, 반목과 시기와 차별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여러분들이 지금의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느끼는 실망감과 절패감 못지않았던 그것이 에베소교회를 짓누르고 있던 때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를 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2:13)라고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2:14)로 인해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바울은 선포합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단절된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화해입니다.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가 전해지는 바람에 “이방사람과 유대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2:19)고 오늘의 본문 에베소서는 말합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안에 평화가 없지만, 우리보다 먼저 갈라진 세상을 잇는 화해의 역사를 일구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이기에 이대로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하나 되게 하는 성령이 우리를 지킬 것이고, 우리가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역사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그것을 믿기에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통해 우리 사이 막힌 담을 허물고 그 사이를 잇는 놀라운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며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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