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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전4: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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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역사상 신앙 공동체들의 실패요인
본문: 전4: 9- 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봉사에도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서로 화합하여 봉사하는 정신과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태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란 책에서 사람이란 말의 어근이 "서로서로"란 말에서, 곧 나와 너와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서로서로 화합하여 봉사할 때의 기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스튜어트 아베리가 쓴 책 "느헤미야를 통해 본 참 지도자론"에서 "서로"란 용어에 붙은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생활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돕고 서로 지지해주며 함께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그 중에 몇 가지를 지적하였다. 서로 위하여 기도하라(엡5:19). 서로를 격려하라(히10:24, 25). 서로 대화하라(엡5:19). 서로 봉사하라(갈5:13). 서로 친절을 베풀라(롬12:13). 서로 사랑하라(요일3:11) 우리는 모두 서로 섬기고 봉사함은 물론 모든 일상생활에서 사랑과 화합을 위해 힘쓸 때 지체로서의 아름다운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본질)은 하나님과 이웃사랑이며, 생명과 사랑의 합주가 진정한 신앙 공동체의 핵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 40)‘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역사상 많은 신앙공동체들이 나타났다가 이단으로 변질되거나 쇠락하고 사라졌다. 그들의 실패요인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자.
1. 신앙공동체이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를 향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호4:1)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3- 6)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인격체로 만남이 전혀 없었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체험이 없었다.
2. 신앙 공동체의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암4: 4- 5)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공법과 정의가 결여된 예배었다.(암5: 21- 24) 따라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께서 거들떠 보지고 않으시고 철저히 거부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나 곡식제물, 십일조 따위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이기적인 사람은 예배를 통하여도 하나님과 만날 수 없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형제로 인식하고 여기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된다.
3. 신앙 공동체가 우상숭배하고 인간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상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형상을 우상화하려는 경향이다. 큰 자연물이나 자기들이 만든 수공물이나 건물을 신격화하여 섬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우상화하는 습성이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치자 무리들이 그들을 신격화하고 제사 지내려한다(행14:8- 15). 누가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그를 신봉하고 높이려고 한다.
사무엘상 8장 6절 이하에 보면 사무엘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고 요구하자 사무엘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엘이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8: 7- 9) 하셨다.
이단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하여 교주로 만들고, 천주교는 교황이나 마리아를 우상화하고 있으며, 많은 개신교의 교회들도 담임목사를 추종하고 교회의 주인으로 삼으려고 한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담임목사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므로 교회에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가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이다. 유혹을 받으면 쉽게 범죄하고, 배반하고 질그릇처럼 깨진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절규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10)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라.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도 포도나무 아래서 취하여 벌거벗고 자다가 자기 아들을 저주하였고(창9:21- 25),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창20:1- 3),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기다리지 않고 하갈을 첩으로 맞아 이스마엘을 낳지 않았는가 성군 다윗은 어떠합니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충신 우리아를 죽게 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한 사실 등을 통하여 이 세상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고 용서하되 인간을 높이고 추앙하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한 곳으로 치중하기 쉽다. 특히 신앙공동체를 이끈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실수했거나 죽었을 때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신앙공동체는 한 인간 중심으로 뭉치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믿을 수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사2:22)
4. 신앙 공동체가 처음에 가진 본질이 훼손되거나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지 1년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왕은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권력을 상징하는 훌륭한 성곽을 세웠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쪽엔 미남 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 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 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경우가 많이 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전통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마음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율법주의자들은 의와 사랑보다 율법을 앞세운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 쓴다는 말도 있다. 사람을 위해 돈이 필요한 건데, 돈 위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마음속에 주객이 뒤바뀌어서는 안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
5, 신앙공동체가 매일 말씀을 상고하지 않고 기도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느냐에 달려 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갖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설 수 있고 그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초대교회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고 사도들이 죽거나 떠나므로 말씀이 속사도들의 구전으로만 전해졌기 때문이다.‘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6. 신앙공동체가 말씀에 따른 순종과 행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 어떤 검객이 집에다 칼을 놔둔 채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만났다. 칼을 든 강도가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자 검객은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소리쳤다. 강도는 웃으면서 “잘 모르지만 내게 귀중품을 바칠 사람으로 안다”고 조롱했다. 검객은 “우리 집에 칼이 있다. 나는 검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도는 “칼도 없는 검객이 입만 살았구나”라면서 달려들어 검객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엡 6:17). 말씀을 깨달았으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성도는 집에 칼을 놔둔 검객과 같다. 또한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히 4:12) 능력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 마귀에게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의 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군인이 무기 없이 보초를 설 수 없다.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났도다”(시 78:9).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7. 신앙공동체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쟁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두 사람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승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이 컸겠는가? 어느 중년의 승객이 참다못해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던 승객은 버스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더니 다투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다.“여기가 교회인줄 알아?”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다툼의 장소로 인식된 것은 슬픈 일이다. 세상에서의 큰 다툼은 작게 인식되지만 교회에서의 작은 다툼은 세상에서 큰 다툼으로 인식된다. 교회는 작은 다툼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성경이 권하는 명령이기도 하다. 교회는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이밖에 신앙공동체의 실패요인은 공동체 지도자의 물질주의와 탐욕, 영적 성숙이 없는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교회가 있다. 그러나 참으로 진리와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교회와 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갈릴리 공동체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공동체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이룩할 것이다. 예수님과 복음을 땅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전하며 당신을 믿음의 형제, 자매로 모시고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저 한다. 연락주세요
*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좀 더 풍성한 신앙생활, 성령충만한 신앙생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예배와 전도와 교제와 봉사와 훈련에 전심을 다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갈릴리 공동체가 의와 평강과 희락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갈릴리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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