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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발로 그린 그림

창작동화 김복근............... 조회 수 1984 추천 수 0 2008.02.15 13:17:32
.........
˝자 무릎을 이용하여 위에서 아래로 죽 그어봐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순이는 발가락에 끼인 크레파스를 도화지 위에다 죽 그었다. 그러나 제대로 그어지지 않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선생님 잘 안 돼요.˝
˝그래, 알고 있단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 순이야,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해보자구나.˝
˝…….˝
발로써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은 순이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몇 해 전, 그러니까 순이가 세 살 되던 해였다. 천주산 아래 있는 소계 마을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철길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때 순이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불행하게도 두 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이 없으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책을 펼칠 수도 없었따. 용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돌봐 주시니까 조금 나았지만 학교에서는 더욱 큰 일이었다.
선생님의 관심과 도움이 큰 힘을 주었다. 그리고 단짝인 나리의 도움도 매우 컸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이 들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차츰 팔이 없는 일상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순이에게 발로써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차라리 입으로 글을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보다는 발로써 그리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하루 이틀 사흘…….
선생님의 자상한 보살핌과 사랑에 힘을 입어 순이도 차츰 용기를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되지 않던 것이 차츰 줄도 반듯하게 그어지게 되고, 글자의 꼴도 제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털이 길게 난 붓 한 자루를 내 놓으시며
˝순이야, 오늘부터는 사군자 연습을 하는 거다.˝
˝예? 제가 어떻게 사군자를…….˝
˝그러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 처음에는 그 몸으로 살 수가 없다고 하였지? 그런데 지금 잘 살고 있잖아. 글씨도 쓸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너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 성실하게 노력만 하면 못할 일이 없단 말이야.˝
선생님의 간곡하신 말씀에 순이의 마음도 움직이게 되었다. 오른쪽 발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나리가 먹물이 묻힌 붓을 발가락에 끼워 주었다.
˝자, 선생님이 하는 것을 봐요. 아래에서 위쪽으로 옳지, 천천히……. 그리고 힘을 주어 죽 그어봐요.˝
사군자를 잘 치시기로 이름난 노 선생님께서 그은 난잎은 살아 움직이는 듯이 죽 그어졌는데 발로써 그은 순이의 난은 모양이 아니었다. 무슨 고목나무 등걸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뭉툭한 것이 제대로 그어지지가 않았다.
˝선생님, 그만 둘래요. 제가 무슨 사군자를 한다고 그러셔요.˝
큰 소리로 외치며 뛰쳐나가는 순이의 어깨를 잡고 선생님께서는
˝순이야, 이 세상에는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얼마든지 많아. 베토벤은 귀가 멀고서도 월광곡을 작곡하였고, 호킹 박사는 소아마비로 걸음은커녕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핵 물리학자가 되었지 않니? 사람은 마음 먹기와 노력하기에 달렸어. 열심히만 한다면 우리 순이도 잘 할 수 있단 말이야.˝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순이는 눈물을 거두었다.
˝선생님 정말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정말 사군자를 그릴 수 있을까요?˝
˝그럼, 될 수 있고 말고.˝
이렇게 하여 순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방과 후에 사군자와 수채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크리파스를 발가락에 끼워 글씨를 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차츰 순이가 그린 난에서도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였다. 순이가 친 난이나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그림 대회에도 한 번 나가보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이 섬세하고 여린 순이가 혹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거나 낙선으로 인하여 심리적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서울에서 전국 장애자 사생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순이와 선생님은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이제는 크리파스나 붓을 스스로 발가락에 끼워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순이는 최선을 다하여 그렸다. 손으로 그리는 아이들보다 더욱 열심히 그렸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려나가는 순이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스케치 하나하나도 섬세하기 이를 데 없었고 채색되어져 나가는 물감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완성된 작품은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 결과 순이는 뜻밖에도 영광의 대상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순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순이의 어깨를 감싸안은 선생님의 눈에서도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순이야, 너는 해냈어. 해냈단 말이야. 드디어 해냈단 말이야.˝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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