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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빨래집게가 된 왕뿔이

창작동화 홍종의............... 조회 수 2088 추천 수 0 2008.03.17 21:06:12
.........
빨래집게가 된 왕뿔이

○○년 ○월 ○일 날씨 맑음

아이가 다 나아서 퇴원을 했다. 집에 돌아와 베란다 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한 달 동안 아이의 병간호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나 보다. 뒷산 쪽으로 나있는 베란다의 문이 반쯤 열려있고 빨래 줄에는 아이의 모자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빨래 줄에서 아이의 모자를 집고 있는 것은 빨래집게가 아니었다. 거짓말처럼 사슴벌레 한 마리가 빨래 줄에 매달려 아이의 모자를 집고 있었다. 사슴벌레는 빳빳하게 말라 있었다.

어둠이 부드럽게 깔립니다. 아파트 꼭대기에서 반짝거리던 햇살이 똑 떨어집니다.
톡, 톡.
아파트 창마다 불이 켜집니다. 마치 꽃망울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굴참나무 구멍 속에서 빠져 나온 왕뿔이는 쭈욱 기지개를 켭니다.
´슬슬 움직여 볼까?´
왕뿔이는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가지뿔이 타닥하고 부딪혔습니다. 조팝나무 잎에 붙어있던 달팽이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립니다. 그 옆에 있던 무당벌레도 덩달아 찔끔했습니다.
˝히 - 힛!˝
왕뿔이는 아주 만족스러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요녀석, 또 무슨 말썽을 피우려고 그러지?˝
엄마 사슴벌레가 왕뿔이를 보고 걱정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앤줄 안다니까.˝
˝…….˝
˝이 뿔이 안보이세요?˝
왕뿔이는 뿔을 슬쩍 내밀어 엄마 사슴벌레의 뿔에 부딪혔습니다. 엄마 사슴벌레는 왕뿔이의 장난을 맞받았습니다.
˝타닥!˝
왕뿔이는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안 아픈 척 했습니다. 간지럽던 뿔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난 네가 걱정이구나.˝
엄마 사슴벌레는 몹시 걱정을 했습니다.
˝에이 참, 엄마는. 쟤들 좀 봐요. 내가 나타나면 찍소리도 못하고 벌벌 떠 는데.˝
왕뿔이는 달팽이와 무당벌레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그래서 더 걱정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요. 쟤네들이 괜히…….˝
왕뿔이는 억울했습니다. 기왕 꾸지람을 들을 바에는 달팽이, 무당벌레를 한 번 혼내줄까 하는 나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슴이라는 아주 큰 동물이 있단다. 눈이 커다랗고 아주 겁이 많은 동물 이지. 사슴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뿔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 자랑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그 뿔이 더 멋져 보이기도 하지.˝
˝나도 자랑을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왕뿔이는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알아, 그래서 우리 이름도 사슴벌레 아니니. 그렇지만 너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그게 탈이야.˝
˝엄마, 걱정 마세요. 그래도 나는 착하잖아요. 히 - 힛.˝
˝그래 아가야. 엄마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구나. 엄마는 네가 그 멋 진 뿔을 착한 일에 썼으면 좋겠다.˝
엄마 사슴벌레는 왕뿔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왕뿔이는 등껍질 밑에 접고 있던 날개를 슬몃 펼쳤습니다. 바람이 살짝 거들어 주었습니다.
˝멀리 가지 말아라. 알았지?˝
엄마 사슴벌레는 다시 걱정을 했습니다.
˝알았어요. 그냥 한 바퀴 빙 둘러서 올게요.˝
왕뿔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습니다. 아파트 불빛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절대 불빛에 다가가지 말아라.˝
엄마 사슴벌레가 다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뿔이는 불빛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불빛이 자꾸만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그냥 쓰윽 지나치면 되지.´
왕뿔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파트 쪽으로 날개짓을 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불빛은 더 포근하고 아늑했습니다.
˝따악!˝
왕뿔이는 깜짝 놀라 멈칫했습니다. 앞서 날아가던 풍뎅이가 유리창에 부딪혔습니다. 왕뿔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옳아! 저래서 엄마가 가지 못하게 했던 거야.´
왕뿔이는 얼른 몸을 틀어 불빛과 멀어졌습니다. 불빛에 먹혀버렸는지 풍뎅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끄응! 끄응!˝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겁이 나 그냥 달아날까 하다가 왕뿔이는 두리번거렸습니다. 다행히 신음 소리는 불빛이 없는 곳에서 났습니다.
˝어디 있어?˝
왕뿔이는 소리를 쳤습니다.
˝끄응! 끄응!˝
다시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 있냐니까?˝
왕뿔이는 답답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 여기야. 여기.˝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덩싯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왕뿔이의 눈앞이 확 틔었습니다. 왕뿔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안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신음 소리를 낸 것은 풍뎅이가 아니라 플라스틱 빨래집게였습니다.
˝너였어?˝
왕뿔이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게·벌·레·구·나.˝
빨래집게가 힘없이 말했습니다.
˝날 그렇게 부르지마. 난 사슴벌레라구.˝
왕뿔이는 기분이 상해 날개를 펼쳤습니다.
˝잠, 잠깐만!˝
빨래집게가 소리쳤습니다.
˝나 좀 도와줘. 나는 너무 힘이 들어. 이제 나는 얼마 못 가서 이 모자를 놓쳐버릴 거야.˝
˝…….˝
˝잘 봐. 내 몸은 이제 낡았어.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빨래집게는 정말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
˝그래, 이 모자의 주인이야. 그런데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거든. 그런데 내가 이 모자를 놓쳐 버리면 아이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피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왕뿔이는 입을 비죽였습니다.
˝부탁이야. 내 대신 이 모자를 잡아 줘. 응? 멋진 네 집게라면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빨래집게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엄마는 네가 그 멋진 뿔을 착한 일에 썼으면 좋겠다.´
왕뿔이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동안 망설이던 왕뿔이는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습니다. 왕뿔이는 네 발로 빨래 줄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그리고 멋진 뿔을 벌려 모자를 꼭 집었습니다. 얼마 못 가 플라스틱 빨래집게는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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