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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창작동화 한희철............... 조회 수 366 추천 수 0 2017.04.16 23:05:57
.........

겨울나무


정말로 추웠던 그 밤,

난 내 앞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꼭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추워도, 추워도 그렇게 추운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밤중까진 그런 대로 견딜 만 했지만, 새벽이 되자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가느다란 가지 끝에서 땅 속 실뿌리 끝까지 구석구석 온 몸을 흐르며 마실 물을 전해 주었던 작은 물줄기가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잎새 하나 걸치지 못한 온 몸이 그냥 추위 앞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늘 정겹던 밤하늘 별들도 그 날은 왜 그리 차갑고 멀던지요.


그렇게 온 몸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찾아온 건 놀랍게도 졸음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와락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아지랑이 같이 아릿한 졸음이 솜처럼 온 몸을 감싸고 말았습니다.

천천히 끝 모를 수렁 속으로 미끄러지듯 나는 잠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잠들면 안 된다는 생각도 순간순간 들었지만, 그건 희미하고 힘없는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토록 매운 추위에 떨면서 추위를 이기려 애쓰는 것보단, 차라리 밀려드는 잠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훨씬 더 편했습니다.

한 개씩 한 개씩 가슴속 불이 꺼져가며, 나는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 때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 바람입니다. 누가 온 몸을 마구 흔들어 대어 눈을 떠보니 바람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그냥 몸을 흔들어 댄 게 아니라, 사정없이 아프게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칼로 긋듯이 얼어붙은 몸을 바람은 그렇게 흔들어댔습니다.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울고 말았습니다. 왈칵,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습니다.

겨우 추위 잊을 만큼 잠이 들었는데, 차라리 그냥 내버려 뒀다면 좋았을 걸, 나를 흔들어 깨운 바람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은 추위보다도 더 무서웠습니다.

그 매운바람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몸이 부러지지 않게 힘주어 온 몸을 감싸 안는 것뿐이었습니다. 바람을 견디다 팔이나 허리가 부러지는 것보단, 차라리 고이 얼어 죽는 게 낫지 싶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바람에 뒤흔들리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온통 내 부러움을 산 그 나무를 말입니다.

그 나무는 추위는 물론 바람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나무는 지난해부터 봄이 되어도 푸른 잎을 내지 않더니, 가을엔 잔가지마저 모두 떨어뜨리고 굵은 몸뚱이로만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우뚝 내 앞에 버티고 서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어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내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터질 듯 얼어붙은 몸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뜬 밤을 새우며, 그 날 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겨울밤은 참 길기도 길었습니다.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사람들은 달력으로 알지만, 우린 햇볕과 바람으로 압니다.

봄이 되면 모든 것이 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나 실은 봄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봄은 겨울을 이긴 자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제가 어쭙잖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지난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제가 그날 밤, 그토록 부러워했던 제 앞의 그 시커먼 나무는 봄이 온 지금도 깨어날 줄 모르는 걸요.


전엔 몰랐지만 이젠 제 몸에서 돋아난 파란 이파리 하나하나와 진분홍 꽃잎 하나하나를 더없이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겨울을 이겨낸, 잠의 유혹을 이겨낸 내 빛깔이며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그렇게 견디기 어려웠던 추위와, 잠든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던 바람, 이젠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눈이 부실 만큼 생명으로 가득 찬 봄은 그들이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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