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하나님께 묻는 삶

더깊은신앙으로 최성수 목사............... 조회 수 47 추천 수 0 2026.04.15 08:41:26
.........
출처 : https://www.facebook.com/choeseongsu.382566 
“하나님께 묻는 삶”
사는 일이 점점 편리해진다. 인공지능 개발에 힘입어 더더욱 편해질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찾아가 물어야 했던 일들을 이제는 손안의 기계 하나로 해결한다.
길을 잃으면 지도를 켜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검색하고, 복잡한 문장이 떠오르면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답은 빠르고 정교하다. 때로는 놀랄 만큼 정확하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것이 제도와 기술로 정리되는 시대에, 굳이 하나님께 묻는 일이 꼭 필요할까. 목회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도 점점 낡아 가는 방식은 아닐까?’
그러나 사람은 답을 안다고 해서 늘 바르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정보를 손에 쥘수록 더 쉽게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겸손해져야 할 텐데, 실제로는 자기 확신만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방향이고, 지식이 아니라 분별이며, 검색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묻는 마음은 아닐지 싶다.
출애굽 후의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며 아직 삶의 질서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백성이었다. 율법도 체계화되지 않았고, 규례도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갈등이나 분쟁이 생기면, 모세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드로는 모세가 홀로 모든 일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에서 사용된 ‘토브’를 부정한 말이다.
이 말은 단지 비효율적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선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질서에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모세 혼자 다 떠안는 구조는 모세도 지치게 하고 백성도 지치게 했다.
그래서 이드로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얼핏 보면 단순한 분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그것은 권한 위임이다. 맡기는 것만이 아니라 판단하고 책임질 권한까지 함께 주는 일이다. 작은 일은 그들이 감당하고, 큰 일은 더 높은 단위로 올리고, 끝내 사람의 지혜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일은 모세가 하나님께 묻는 구조였다.
이 제도는 단지 행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 묻는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질서였다. 모세 한 사람의 영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였던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권한 위임의 중심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맡겼으되,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로 맡긴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반영하도록 맡긴 것이었다.
그러므로 권한 위임은 하나님의 자리를 비워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다스림이 공동체 안에 더 넓게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제도 속에 살고, 법 아래 살고, 전문가의 조언 속에 산다. 그것들은 필요하다. 아니,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허락하신 질서이다. 잘 갖추어진 제도는 하나님의 일반은총 안에서 주어진 선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법이 있어도 억울한 일이 생기고, 제도가 있어도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어떤 체계도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구원하지는 못한다. 옳고 그름을 가려 줄 수는 있어도, 왜 그 일이 내 영혼을 흔드는지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믿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하나님께 묻는 삶”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조건 신비롭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합리성을 버리고 막연한 직감만 좇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제도와 상식과 정보와 경험을 다 사용하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 이 일에서 주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사회가 허락하니까, 법적으로 문제없으니까, 내 판단에 옳아 보이니까, 그 정도에서 끝내지 않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 일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이 물음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를 느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답답함과 느림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영혼을 지키는 지혜다.
묻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된다. 사사기의 비극이 바로 거기 있었다.
사사기의 백성은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 묻지 않았을 뿐이다. 제사의 삶은 멈추지 않았을지 몰라도 일상의 삶은 자기 뜻대로 살았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예배하는 삶은 계속된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하면서, 실제 결정은 이미 다 내려놓은 뒤 하나님을 자기 뜻에 수긍하도록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시대일수록 목회자의 역할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는 모든 문제의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인공지능보다 더 빠른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진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으로 훈련받고, 영혼의 무게를 헤아리며, 삶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석하도록 돕는 일에는 여전히 고유한 사명이 있다.
도덕적 조언을 넘어서 영적 분별을 돕는 일, 겉으로는 단순한 선택 같아 보여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신앙의 방향을 함께 묻는 일, 바로 그것이 목회의 자리다.
만일 인간의 삶이 단지 제도와 정보와 효율의 문제라면 교회는 금세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이 끝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존재라면, 교회와 목회는 여전히 사라질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은 제도를 무시하는 삶이 아니라, 제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는 삶이다. 잘 갖추어진 질서 속에서도 주의 뜻을 묻고,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기도와 말씀과 공동체의 조언 속에서 분별하는 삶이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답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답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자주 물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주의 뜻입니까?’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교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믿음도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품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제도와 기술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일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4 더깊은신앙으로 교리와 교의학 -유신진화론과 이단 판단 new 최성수 목사 2026-06-12 5
73 더깊은신앙으로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 유감: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 최주훈 목사 2026-06-10 9
72 더깊은신앙으로 예수의 네 번째 시험: 복음의 확장인가, 본질의 변질인가? 최성수 목사 2026-04-18 22
» 더깊은신앙으로 하나님께 묻는 삶 최성수 목사 2026-04-15 47
70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4] 순교자 file Yong K. Park 2024-06-11 136
69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3] 초대교인의 자격 file Yong K. Park 2024-06-10 119
68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2] 교회의 시작 file Yong K. Park 2024-06-08 130
67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1] 모든 길은 로마로, 복음은 로마를 통해 file Yong K. Park 2024-06-08 101
66 더깊은신앙으로 예배란 무엇일까 최주훈 목사 2022-10-12 116
65 더깊은신앙으로 거듭남(요한복음 3:3-5) 이성훈 2021-03-27 200
64 더깊은신앙으로 열두 제자명단, 어느 것이 진짜인가? file 박경은 목사 2020-03-22 217
63 더깊은신앙으로 [이지현의 두글자-옹근] 비우면 채워주시니 온전하지 않겠는가 최용우 2018-04-19 280
62 더깊은신앙으로 지구별 마지막 전쟁 이현주 2016-11-30 202
61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5)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이현주 2016-10-11 493
60 더깊은신앙으로 예수도 제자들을 편애하셨나? 이현주 2016-09-28 488
59 더깊은신앙으로 약은 청지기의 처세술 file 이현주 2016-09-18 708
58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4) 위대한 종님 이현주 목사 2016-05-17 468
57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3) 당신이 누구요? 이현주 목사 2016-05-02 283
56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2) -불공평한 하나님 [1] 이현주 목사 2016-04-22 319
55 더깊은신앙으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1) 하나님 맙소사! file [1] 이현주 2016-04-20 370
54 더깊은신앙으로 성 프란체스코와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3-27 1950
53 더깊은신앙으로 시편과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3-27 2229
52 더깊은신앙으로 무지의 구름과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3-27 1666
51 더깊은신앙으로 토머스 아 켐피스와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2-10 2014
50 더깊은신앙으로 아빌라의 테레사와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2-08 1411
49 더깊은신앙으로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30일 이현주 목사 2014-02-08 2221
48 더깊은신앙으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와 함께 30일 이현주 2014-02-05 1523
47 더깊은신앙으로 노르위치의 줄리안과 함께 하루 묵상30일 이현주 목사 2014-02-04 1813
46 더깊은신앙으로 반만 먹지요 이현주 목사 2012-09-09 2232
45 더깊은신앙으로 먹이사슬도 살생인가? [2] 이현주 목사 2012-09-09 2326
44 더깊은신앙으로 그러므로 저는 당신입니다. 최용우 2012-04-15 2006
43 더깊은신앙으로 너답게 살라고? 최용우 2012-04-15 2171
42 더깊은신앙으로 한알학교 대화수업 최용우 2012-04-08 2444
41 더깊은신앙으로 참 종교인의 삶 최용우 2012-04-08 2161
40 더깊은신앙으로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를 구별하라 이현주 2012-04-05 1775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