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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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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https://www.facebook.com/choeseongsu.382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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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네 번째 시험: 복음의 확장인가, 본질의 변질인가?
- 기독교 미디어 비평의 필요성에 대한 단상 -
맬콤 머거리지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미디어(Christ and Media)』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던집니다. 만약 예수의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대중매체가 존재했다면, 사탄은 세 번의 시험을 마친 뒤 반드시 ‘네 번째 시험’을 제기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가 재구성한 시험의 풍경은 대략 이러합니다.
1. 거부할 수 없는 확장의 유혹
갈릴리를 지나던 로마의 한 거부가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예수를 발견합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이 가진 지적 가치와 시대적 호소력에 경탄하며, 이를 로마 전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할 프로젝트를 구상합니다. 그는 예수께 다가가 대중매체의 가공할 영향력을 설명하며 파격적인 제안을 건넵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이 척박한 갈릴리에 머물기엔 너무나 아깝소. 내게 전 세계인의 안방으로 당신의 목소리를 송출할 기술과 자본이 있소. 단 한 가지 조건만 수락하시오. 가르침에 대한 비용은 충분히 지불하겠으나, 중계권과 판권은 내가 갖겠소.”
머거리지는 예수께서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예수의 목적은 세상 모든 이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려주는 것이기에,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도구든 사용하셨을 것이라는 거죠. 텁수룩한 몰골로 하층민과 섞여 지내는 대신, 로마제국의 심장부에서 전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어찌 거부하겠느냐는 논리입니다.
2. 왜 예수님은 ‘네 번째 시험’을 거절하셨을까?
하지만 미디어 전문가이자 마스터미디어 인터내셔널(Mastermedia International)의 설립자인 래리 폴랜드(Larry W. Poland)는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이 네 번째 시험 역시 단호히 물리치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복음 전파를 위해 미디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집단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폴랜드의 주장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최초의 민영 방송국 CBS나 최초의 라디오 방송인 극동방송의 사례처럼, 교회는 늘 새로운 매체를 통해 복음의 지경을 넓혀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폴랜드는 왜 미디어와 예수의 사역이 서로 상보적일 수 없다고 보았을까요?
그 핵심은 미디어의 ‘중립성’에 대한 오해와 ‘운영 주체’의 가치관에 있습니다.
3. 매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폴랜드가 우려한 것은 단순히 전달 수단으로서의 기술이 아니라, 그 매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그는 미디어를 “대중 전달의 수단들을 관장하고 운용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정의하며, 이들이 가진 반기독교적 세계관과 전도 열정이 결국 복음의 본질을 왜곡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깊은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 성육신(Incarnation) 대 표준화(Standardization)
예수의 사역은 개별적인 인간과 깊이 마주하는 인격적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메시지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표준화’하고 ‘소비재’로 전락시킵니다. 마샬 맥루한의 말처럼 “매체는 메시지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미디어라는 필터를 거치는 순간 복음의 ‘자기 부인’과 ‘십자가’라는 핵심은 ‘자극적 콘텐츠’나 ‘대중적 위로’로 변질될 위험이 큽니다.
둘째, 가치관의 무의식적 잠식
미디어 배후에 흐르는 세속적 가치관은 복음을 전파하는 척하면서, 정작 수용자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적 가치관에 반대되는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지지하게 만듭니다. 결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디어를 잡았으나, 도리어 미디어의 가치관에 복음이 잡아먹히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4. ‘영적 미디어 리터러시’를 향하여
오늘날 우리는 1인 미디어와 SNS, 그리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가짜 뉴스는 단순한 오보를 넘어 개인의 신념을 조작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광야에서의 처음 세 시험을 말씀과 신앙으로 이기셨듯, 현대의 네 번째 시험을 이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 비평 교육’, 즉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선별하는 기술을 넘어, 미디어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세계관을 해독하는 영적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미디어 비평은 미디어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운영하는 인간의 탐욕과 세속적 프레임을 경계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알고리즘이 편집한 가상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보존하고 복음의 진정성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네 번째 시험에 응전하는 방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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