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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도 — 예배에서 가장 위험한 순서

목회독서교육 최주훈 목사............... 조회 수 66 추천 수 0 2026.02.12 11: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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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페이스북 
<교회의 기도 — 예배에서 가장 위험한 순서>
예배 순서지를 펼쳐보면 '대표기도' 혹은 '목회기도'라는 항목이 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주의 깊게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단상에 올라 자신의 근심 목록을 읊조리고, 회중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생각 속으로 흩어진다. 이 순서의 원래 이름은 '교회의 기도'(Kollektengebet, Prayer of the Church)다. 루터가 1520년 『선행론』에서 이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매우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기도가 없다면 차라리 예배 자체를 없애버리는 게 낫다!" 설교도, 찬양도, 성만찬도 아닌 '기도'에 대해 이런 극단적 언어를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루터가 파고든 핵심은 단순하다. 'Kollekte'는 '모은다'는 뜻이다. 흩어진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회중 전체의 마음을 한 자리에 모아 드리는 기도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루터의 발명품이 아니다. 2세기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제1변증서』에 이미 말씀 선포 후 회중이 함께 일어서서 공동으로 기도하는 순서가 기록되어 있고, 이후 동방과 서방 교회 모두에서 연도(Litany), 신자들의 기도(Oratio Fidelium)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 기도의 본질은 애초에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내 사업의 번창, 내 자녀의 성적, 내 건강의 회복 등등, 이런 것들이 기도의 내용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기도의 전부가 되는 순간, 루터의 표현을 빌리면, 그 모임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기적인 기도"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의 '대표기도'와 '목회기도'는 이 전통 위에 서 있을까. 계보상으로는 분명히 같은 뿌리에 닿아 있다. 한국 개신교 예배는 19세기 말 미국 장로교·감리교 선교사들을 통해 도입되었고, 이들이 가져온 예배 순서에는 'Pastoral Prayer'(목회기도)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 전통에서 목사가 회중을 대표하여 드리는 공동 기도, 즉 교회의 기도를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출발점은 같다. 그러나 도착지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교회에서 벌어진 변화가 흥미롭다. '목회기도'와 별도로 '대표기도'라는 독특한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 평신도 한 사람이 지명을 받아 단상에 나와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하는 형식인데, 이것은 서양 교회 전통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적 변용이다. 문제는 이 형식이 루터가 경고한 바로 그 현상을 구조적으로 발생시키기 쉽다는 데 있다. 한 개인이 준비 없이 단상에 서면, 기도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개인적 신앙 경험과 관심사로 채워진다. 회중 전체의 아픔, 세상의 필요, 교회 밖 이웃의 궁핍을 담아내는 공동기도가 아니라, 개인의 간증이나 신앙고백에 가까운 독백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루터가 "한 개인의 잡설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그 경계선이 구조적으로 흐려진 셈이다. '목회기도'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경우 설교의 연장선처럼 운용되거나, 교회 내부의 행사와 프로그램 안내를 기도의 형식으로 포장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회중과 세상을 향한 중보의 자리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여기서 대부분이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루터는 교회의 기도를 단순한 영적 의례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 이해했다. "교회를 반대하는 모든 일에 대항하여 싸우는 가장 힘센 일"이라는 그의 언급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었다. 16세기 초 비텐베르크의 맥락을 떠올려 보면, 교회는 로마의 권력과 지역 영주들의 이해관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회중이 한 마음으로 드리는 공동 기도는 곧 외부 압력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선언이기도 했다. 기도가 사라지면 교회는 건물만 남은 껍데기가 된다. 루터가 "움막이나 누추한 오두막"을 "기도 없는 대성당"보다 더 두려운 곳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루터의 경고가 500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교회에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가 나열한 것들을 보라(이하 루터의 글)— 교회 건축, 재산 헌납, 노래, 독서, 다양한 예배 프로그램. 이것들이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고 그는 인정한다. 문제는 기쁨 자체가 아니라, 그 기쁨이 만들어내는 착각이다. 화려한 예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최신 음향 장비를 갖추고, 감동적인 영상을 틀면서 "우리의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 정작 예배의 심장이어야 할 공동 기도는 형식적 통과의례로 전락한다. "과시하느라 정작 해야 할 교회의 공동기도는 잊혀져버리고, 효력 있고 열매가 풍성한 교회의 기도는 죽어버리고 만다"는 루터의 진단이 지금 이 시대 교회의 CT 사진처럼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교회의 기도가 진짜 '교회의 기도'가 되려면, 한 가지 불편한 전환이 필요하다. 내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눈물을 보는 것, 내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침묵을 듣는 것으로 기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루터는 이것을 "이웃의 아픔을 내 교회 공동체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일이라 불렀다. 이 공감 없이 드려지는 기도는, 아무리 간절하고 눈물이 넘쳐도, 교회의 기도가 아니라 개인의 독백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교회 일부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신자들의 기도'(Prayers of the People) 형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도 제목을 미리 구성하고, 회중이 응답구를 함께 낭독하며, 교회 안팎의 구체적 필요를 체계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사실상 500년 전 루터가,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초대교회가 실천했던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다. 새로운 실험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본질의 회복이다.
이 질문만을 꼭 한 번 가져보자. 우리는 '대표기도'라는 이름을 오래 써왔지만, 정작 누구를 대표하는 기도인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이 질문을 회피해온 시간만큼, 교회는 자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함께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덧) 이하는 루터의 글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유는 교회가 기도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교회의 회중이 한 곳에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교회에 속한 회중과 교회 밖의 사람들이 생명에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의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도’는 언제나 이웃의 아픔을 내 교회 공동체의 아픔으로 공감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확신 가운데 기도해야 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없다면 차라리 예배자체를 없애버리는 게 낫습니다.
만일 교인 모두 각자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씀이 없다든지, 다른 이들의 궁핍을 염려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집에 함께 모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교회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다는 것은 우리가 공동의 기도를 하고, 회중 전체를 위해 기도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소한 이것저것을 구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기적인 기도 외에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런 기도를 두고 어떻게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교회의 기도’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두고 어찌 거룩한 날 모인 회중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반대하는 모든 일에 대항하여 싸우는 가장 힘센 일은 교회의 기도입니다. 땅위에 세워진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큰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회의 공동기도를 자꾸 외면하고 막아 버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기쁘게 교회 건축에 참여시킬 수도 있고, 많은 재산을 교회 기관에 바치게 할 수도 있고, 노래하고 책을 읽으며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고, 많은 예배에 참여케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를 기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서 우리의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일을 하면서 과시하느라 정작 해야 할 교회의 공동기도는 잊혀져버리고, 효력 있고 열매가 풍성한 교회의 기도는 죽어버리고 만다는 점입니다.
기도가 시들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성령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없게 되고, 저항의 힘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기도한다면, 비록 움막이나 누추한 오두막이라 해도 우리를 대적하는 이들은 기도 없는 대성당보다 훨씬 더 이곳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건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되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진정한 교회의 기도, 오직 이 기도만이 문제입니다.”
["Treatise on Good Works", in: Works of Martin Luther I (1915), 183-186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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