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민들레공동체에 다녀와서
* 경남 산청군 신안면 중촌갈전로 762-12
7월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솔섬 바다구경을 하였다. 빵과 맛있는 쨈으로 아침을 먹고 이번에는 산청 민들레공동체를 찾았다. 허름한 옷을 입고 털신을 신은 김인수 대표가 일행을 맞는다. 먼저 부엽토(휴마스)를 소개하며 휴맨, 겸손, 분변토 - 미생물이 살고 있는 검은 흙을 보여주면서 민들레공동체를 소개한다. 30년 전통의 농촌선교공동체로 선교(교회), 교육(대안학교), 농촌(흙, 농업), 공동체(삶)의 네 가지 가치를 지향한다.
...나쁜 흙을 좋은 흙으로 만들 듯 안 좋은 사람을 좋은 사람 만들기는 건강한 땅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매년 아일랜드 만큼 사막화 되어가는 땅을 회복해야 아며 사람 또한 온유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마치 부엽토와 상통한다.
네 가지 자급자족이 필요하다.
1. 식량자급자족 : 5-60명 쌀, 감자, 고구마, 양계, 양돈, 양봉, 고추, 콩 일체의 작물을 재배하여 자급하고 있으며
2. 에너지자급자족 : 태양광, 적정기술, 다양한 대안으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며
3. 교육과 문화의 자급자족 - 민들레학교, 문화적 공유와 자급자족, 시와 그림과 음악을 하고 유치 초 중 고 과정이 있으며, 30주년을 맞아 청년대학과정도 준비 중에 있다.
수시입학, 행복학교, 치유, 7:50 조식, 노작, 저녁 먹고 목함 시간, 10시 취침, 여름 겨울캠프 등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1주일 살아보고 결정, 학비 60만원 = 수업료 25만, 생활비 35만)
건물 지붕에 풀이 자라있는데 이를 리빙 루프라고 한다. 아스팔트 쉬트 깔아 방습하고 짚과 황토로 단열하는 특별한 집이었다.
4. 신앙과 양심의 자급자족 : 특별한 영성, 신학 등 지도자가 아니라 스스로 성경 읽고 가르침, 공동체 생활 영유가 곧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다.
사용면적은 만여 평으로 여러 건물과 농지, 솔밭(유치원) 등 엄청난 규묘다. 여학생 기숙사와 남학생 기숙사, 농막, 아주 잘 지어지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렉마 나가 부족박물관, 옛것박물관, 페시바 하우스(열기 빼는 동으로 된 공기통이 특이), 대단한 규모의 사단법인 대안 기술센타, 훌륭한 카페, 도서관과 연구동, 베이커리는 마을기업이고, 교회(독립교단), 강당, 식당으로 사용하는 첫건물 등 상상초월이다.
“농촌은 움직이면 돈이 들어오고 도시에서는 움직이면 돈이 들어간다”며 민들레철학을 소개한다. 김인수 대표는 85년부터 농촌사역, 전도사, 기도사역, 설교, 제자훈련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촌선교전략가로 고유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며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고 했다.
91년부터 민들레공동체를 시작했으니 30주년이 되고 있다. 농촌 작은 빈집에서 시작한 공동체가 오늘에 이르도록 자라났다. 거기에는 민들레 철학이 있다.
1) 민들레 잎- 촌스럽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자. 소외되고 가난한 곳에 관심을 가졌다.
2) 뿌리 - 끈질기고 깊게 살자. 다른 말로 하면 뿌리 깊은 삶을 추구한다.
“농사는 돈이 안되기에 해야 한다.”며 자급자족,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며 꾸준히 해가면 그 후에는 이윤이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지론이다.
3) 홀씨 - 300km까지도 날라 간다는데 평소엔 대가 축 쳐져 있다가도 씨가 날 때가 되면 대를 곧추 세운다. 바람 따라 날아감은 숙명이다. 임의결정 안된다. 임의로 이사나 움직이지 않는다. 임의 계획 세우지 않고 숙명 따라, 목숨 걸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단순 소박한 삶, 뿌리 깊은 삶, 숙명에 따른 삶을 살라.
영적, 육적 구분하지 말고 전인적 복음을 말했다. 사랑과 삶에서 나온 신학과 철학을 주장하며 가난하게 살라고 한다. 손과 발을 움직이며 살라.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일하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쪽팔린다”는 말은 부끄러운 말이다.
가난에는 소극적인 의미가 있고,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은 스스로 가난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소유를 공적으로 쓰고 근면하면 후에 부유케 된다. 대학 4년 허송세월 말고 기술 양계 삶을 배워 자립하라며 대학철폐운동이라도 펼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촌에서 살자고 주장한다. 대기업, 광고에 종노릇하지 말고 자유케 살라고 강력 주장한다.
캄보디아 선교 등 해외선교와 농촌선교 등 선교에도 상당하다. 실제로 미국 등 외국인도 여럿 보이고 아주 행복하게 함께 일하고 있었다. 매일 5-60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30년 역사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행은 왜 여름에 털 스웨터를 입고 털신을 신었느냐고 물었다. 오늘같이 바가 오는 날에는 기온이 내려가는데 그냥 편한 옷을 입은 것이고 신발은 겨울에 4천 원짜리 털신을 신으면 1년 내내 신는다고 한다.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불필요해 보인다.
* 막 받아적은 글이라 투박하지만 생두나 현미라 생각하시고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