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말씀요약
1.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눅9:51)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눅9:51) 예수님의 승천으로 이 땅에 구속 사역이 마무리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이고 reign, rule, kingdom, domain 등을 가리킵니다. 핵심적인 의미는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2.예수님을 사마리아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눅9:53)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 일행이 하룻밤 쉬자고 하는 것을 사마리아인들은 거절합니다.(눅9:53) 유대인들과 원수 관계인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어서 자기들만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따로 지어 중앙 성소로 삼았습니다.(요4:20). 이런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들은 유대인들인 예수 일행이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3.예수님을 따르려면-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눅9:55-58)
유대 사회의 최고 상위계층에 학식, 재력, 권력을 다 가진 서기관이 ‘어디로 가시든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섭니다. 서기관은 예수 믿는 것을 ‘입신양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가는 길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십니다.(눅9:55-5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로 가는 길인데 서기관은 그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4.예수님을 따르려면-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라.(눅9:59)
아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터에서도 부모의 장례식에는 다녀올 수 있도록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고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눅9:59)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뜻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 정도의 결기가 있어야 한다는 비유입니다.
5.예수님을 따르려면-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면 안 된다.(눅9:61-62)
손에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목적은 밭에 고랑을 내는 것인데 다른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고랑을 바르게 칠 수 없습니다.(눅9:61-62) 그런데 어떤 제자가 가족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가족의 만류가 간절해질 경우 가정에 발목잡힐 가능성이 많습니다.
6.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눅9:57-62)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눅9:57-62)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인데, 아버지 장례까지 포기하고 가족과의 작별 인사도 사소하게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지난 신앙의 여정에서 그런 갈망을 경험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