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말씀요약
1.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적은 무리’였다.(32-33절)
마태, 마가, 요한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면 ‘누가복음’은 유일하게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모였던 ‘이방인’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다음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닌 ‘적은 무리들’이었습니다.(눅12:32-33)
2.초기 기독교는 ‘재림을 기다리는 공동체’였다.(34-36절)
초기 기독교는 ‘재림 공동체’였습니다.(눅12:34-36) 구약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성경이라면 신약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경입니다.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시지 않자 가짜 예수들도 수없이 등장하고, 다른 방법으로 이미 오셨다는 이론도 나오고 있지만, 속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가신 모습 그대로 오십니다.
3.재림은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자기 일어난다.(39-40절)
재림은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십니다.(눅12:39-40) 우리가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고 이 세상 가치관의 삶에 빠져 있을 때, 또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맞이하여 임마누엘의 기쁨을 맞 본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4.재림주는 이 세상에 ‘인자(人子)’로 오신다.(40절)
재림주는 ‘인자(人子)’로 오십니다.(눅12:40) 예수님은 힘의 논리만이 작동하는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오욕을 단숨에 무너뜨리실 분으로 오십니다. 어쩌면 ‘과잉 소비’ 형태로 심판이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잉 소비란 ‘영혼의 만족’이 없기에 대리만족을 찾으려는 삶의 형태입니다. ‘환경 문제’의 원인은 ‘과잉소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5.인자란 ‘세상 마지막 때 나타날 심판자’란 뜻이다.
인자란 구약 묵시사상에서 나온 개념으로 ‘세상 마지막 때 나타날 심판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포로기에 ‘바벨론’은 오늘날 미국과 같은 절대권력이 있었지만, 선지자들은 바벨론을 심판할 ‘인자’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은 ‘페르시아’에게 어이없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인자’란 ‘자본주의 미국을 망하게 할 분’이란 뜻입니다.
6.재림을 맞이할 ‘준비된 삶’이란 어떤 삶인가?
재림을 맞이할 ‘준비된 삶’이란 어떤 삶인가?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언론에 선동당해서 투표를 하여 대통령을 뽑으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망대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망대지기가 절대 필요한 세상입니다.-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