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말씀요약
1.키리에 엘레이송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이 외치는 ‘키리에 엘레이송’소리를 들으셨습니다.(눅17:11-13) 불쌍히 여겨달라는 절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떨어진이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과학이나 의사나 경제나 정치가 우리를 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키리에 엘레이송’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2.예수님이 치유하심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눅17:14) 당시 율법은 병이 나았는지의 여부를 제사장이 판단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길을 가다가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하고 너무 좋아서 각자 집으로 가버렸든지 가고 싶은 대로 흩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았다는 것입니다.
3.돌아온 사람
나병이 나은 것을 감사하기 위해 한명이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눅17:16)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영광과 감사는 어떤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나병이 나은 사람은 열 명이었지만 ‘영광과 감사의 영성’에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4.어디 있는가?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는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눅17:17) 하나님의 은혜는 보편적이어서 사람 가리지 않고 전부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이라고 그때와 다를까요?
5.유대인과 이방인
예수님은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마도 나머지 아홉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들은 사실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소외된 이들에게서 더 드러납니다.
6.참된 구원
이방인 나병환자는 육체의 치유를 받으면서 믿음으로 영혼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눅17:19) 그는 다른 아홉 명과 똑같이 육체적인 구원함을 받았고 더불어 더 본질적인 영혼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영혼 구원이야말로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참된 구원입니다. 육체적 구원은 이 땅에서 끝나지만, 영혼 구원은 다음 세상까지 영원합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