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요약
갈망하는은혜(시123:1-4)
1.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123:1)
2.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시123:2)
3.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123:2)
4.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시123:3)
5.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시123:3)
6.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시123:4)
1.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123:1) 하늘은 우주의 신비가 숨겨진 곳입니다.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이 밝혀낸 우주에 관한 정보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미미한 것일 뿐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본다는 뜻이며 기독교 신앙은 눈을 들어 주님 계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2.주님만 바라봄
종들의 눈이 주인의 손을 바라보듯이, 우리의 눈은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여종의 눈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듯이 우리의 눈은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시123:2) 종의 목숨은 전적으로 ‘주인’에게 달려 있으니 ‘주인’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목숨줄이 걸린 ‘돈’만 바라보는 눈과 같습니다.
3. 기다림의 영성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 여호와를 바라봅니다.(시123:2)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기다림’입니다.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실 때까지 무한 기다림입니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입니다. 마라나타입니다. 우리는 지금 궁극적인 대상인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삽니다.
4.자비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시123:3) 히브리어로는 ‘한네누 야훼 한네누’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여호와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우리가 수많은 멸시를 견뎌 냈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를 ‘자비’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5.안일한 자들의 조롱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시123:3) ‘안일한 자들’은 인생이 잘 풀려서 잘나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범주에 들어와 자신들의 인생업적, 권력, 치적을 부러워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 쯤 무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6.교만한 자들의 멸시
교만한 자의 멸시가 영혼에 넘칩니다.(시123:4) ‘교만한 자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자들이나 돈지랄을 하는 ‘주류’들 입니다. 요즘 ‘주류 정치인들’은 국민들로부터 조소와 멸시와 야유와 냉소와 비아냥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멸시를 받고 있으니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성: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