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그냥생각

독서 쓸쓸한 날에 받은 선물 -기일혜수필집8

is3927 2024.02.13 15:18 조회 수 : 20

BK86000086.jpg

 

쓸쓸한 날에 받은 선물/기일혜8

크리스챤서적/4000/1998

 

얼마 뒤, 들어온 점심상은 아주 간소했다. 혼자 자취

하시는 임 선생은 김치도 없다시면서 삶은 콩나물 한

양푼에 달콤하게 매운 실파를 송송 썰어넣은 양념장

한 보시기를 곁들였다. 고슬고슬한 더운 밥에 콩나물

을 얹고 참기름 향이 고소한 양념장으로 간 맞춰 비벼

먹는데, 칼칼한 맛이 그만이었다. 요 근래에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애들처럼 몇

번이나 맛있다고 하면서 콩나물밥을 다 먹고 나니, 어느

진수성찬을 들고 난 후보다도 뒷맛이 개운하고 좋았다.

*본문에서 옮김

 

 

얼마전, 조문할 일이 있어서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남편과

함께 기차를 타기로 했다. KTX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책 한권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다. 언제 기차를 타보았는지

기억도 까마득하니 오랜만이어서인지 약간 설레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자리를 잘 잡고 앉아 남편은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하고

나는 지나가는 기차 창밖의 풍경을 잠시동안 바라보다 책을 꺼내

들었다. 언제적 감성인가! 기차안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던 오래전

추억...지금은 너 나 없이 핸드폰과 일치가 된 사람들이 앞 자리에도

건너편 옆 자리에도 있을 뿐이다.

책을 몇 장 읽어 나가다 보니 위의 콩나물밥 이야기가 너무나 맛있

게 들어왔다. 포스트잇에 콩나물밥이라고 써서 해당 페이지에

붙여 놓았다. 집에 돌아가면 콩나물밥을 해먹으려는 마음에서다.

꼭 해먹어야지...’ 몇 번 다짐을 한 며칠이 지난 어느날 마트에서

콩나물 한봉지를 사왔다. 냉장고 안에서 써 줄 날을 기다리고 있던

무와 당근, 그리고 말린 표고버섯도 불려서 썰어 넣었다. 양념장에는

파와 청량고추 약간, 마늘과 양파도 참기름과 깨도 넣었다.

~~맛있어 보인다. 양념장을 밥에 넣어 골고루 비빈후 한 입 와앙~

~이 맛이 아닌데? 글을 읽으며 글 속의 현장에서 상상으로 함께

먹었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한 상상을 했나보다. 그래도

한 대접 잘 먹고 조금 남은 것은 저녁에 마저 비벼 먹었다.

어떤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종종 그 글의 현장속에서 함께

거닐게 된다. 다른이의 글을 통한 간접 경험일지라도 나를 풍요롭게

하는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974 [글씨30] 읽어야 될 책이 너무 많아 배불러 file 2024.06.06 2
973 잠시 쉬어가도 [1] file 2024.05.15 7
972 내가 잘 하고 싶은 것 [1] file 2024.05.15 8
971 [글씨29] 잘 살아라 쿨하게 돌아섰지. [1] file 2024.05.08 15
970 [글씨28] 안녕, 누군가 가만이 손을 흔드네 file 2024.04.08 27
969 [글씨27] 그래도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니 file 2024.03.19 25
968 내 마음이 가는 사람 -기일혜수필집10 file 2024.03.10 10
967 들꽃을 보러 다니는 사람 -기일혜수필집9 file 2024.03.10 7
966 [글씨26] 그래도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니 file 2024.02.21 19
» 쓸쓸한 날에 받은 선물 -기일혜수필집8 file 2024.02.13 20
964 일단 웃자 -오혜열 file 2024.02.13 25
963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file 2024.02.09 29
962 오두막 일기 -최용우 file 2024.02.07 25
961 유쾌함의 기술 -앤서니T. 디베네뎃 file 2024.02.01 22
960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file 2024.01.29 18
959 자존감이 쌓이는 말, 100일의 기적 -이마이 가즈아키 file 2024.01.26 43
958 [글씨25] 내 뱃속에 썩은 걸레가 있는 게 분명해 file 2024.01.22 46
957 아내에게 바치는 시 -최용우 file 2024.01.18 28
956 발레리나 잘 있어요? -기일혜수필집7 file 2024.01.17 25
955 며느리는 200년 손님 -기일혜수필집6 file 2024.01.13 47
954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 -기일혜수필집5 file 2024.01.11 34
953 냉이야 살아나라 -기일혜수필집4 file 2024.01.08 25
952 나는 왜 사는가 -기일혜수필집3 file 2024.01.04 45
951 가난을 만들고 있을때 -기일혜 수필집2 file 2024.01.03 26
950 내가 졸고 있을때 -기일혜 수필집1 file 2024.01.02 19
949 [글씨24] 힘들면 잠시 기대도 돼 file 2023.12.26 78
948 결국 2023.12.16 13
947 [글씨23] 처음에는 처음이니까 처음처럼 file 2023.11.28 25
946 [글씨22] 진짜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file 2023.11.01 33
945 [글씨21] 생각이 너무 없어 버리가 텅 빈 것 같다 file 2023.09.23 117
944 [글씨20] 시인은 쓰디쓴 외로움이 밥이다. file 2023.09.04 24
943 오이 생각 2023.08.08 31
942 선풍기 안녕 2023.08.05 31
941 [글씨19] 지갑 빈 것보다 [1] file 2023.08.02 40
940 [글씨18] 나중에 꼭 해야지 그때 꼭 할걸 file 2023.06.27 39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