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헌금 (막12:38-44)
2024.11,10 들꽃교회 주일
전한 사람 -최용우
<요약>
1.예수님은 무리가 어떻게 헌금하는지를 보셨다.(막12:41)
2.예수님이 보시니 부자들은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다.(막12:41)
3.예수님이 보시니 가난한 과부는 두 랩돈을 헌금했다.(막12:42)
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은 다음 두 헌금을 비교하셨다.(막43-44)
5.한국 교회의 헌금에 대한 다섯가지 잘못된 인식
6.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참된 자유를 얻은 헌금이었다.
1. 어떻게 헌금하는가?
예수님은 무리가 어떻게 헌금하는지를 자세히 보셨습니다.(막12:41)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함은 성전의 가장 바깥 뜰이며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여인의 뜰’에 13개의 나팔 모양으로 생긴 헌금함이 놓여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먼저 헌금을 넣은 다음 안으로 들어가 제사장에게 헌금한 내용과 액수를 말했습니다.
2. 부자들의 헌금
예수님이 보시니 부자들(율법학자들)은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막12:41) 부자들은 체면 때문에 헌금을 많이 했고 헌금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과부들은 헌금을 드리면서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에도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공개하여 헌금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3. 과부의 헌금
예수님이 보시니 가난한 과부는 두 랩돈을 헌금했습니다.(막12:42) 두 랩돈은 1달러 정도 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고백으로 헌금’을 드렸습니다. 자신의 미래마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결단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생활비 전부를 바친 것입니다.
4. 헌금 계산법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은 다음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43-44)고 하십니다. 계산법이 다릅니다. 한쪽은 돈의 액수를 보고 다른 한쪽은 돈을 내는 사람을 봅니다. 자(資)를 본(本)으로 하는 인간 세상은 ‘부자들의 헌금’을 좋아하고 신(神)을 본(本)으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과부의 헌금’을 반깁니다.
5-1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
한국 교회는 헌금을 율법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뿐만 아니라 10의 9조까지 모두 다다 하나님의 것인데 도적질을 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5-2. 십일조와 면죄부
한국 교회는 헌금을 주술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과거 ‘면죄부’를 사면 연옥의 조상이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한 로마 가톨릭은 그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을 촉발시켰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새롭게 ‘십일조’를 등장시켜 십일조 헌금을 하면 창고가 차고 넘치게 축복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엔 ‘십일조’가 없습니다.
5-3. 기복적 헌금
한국 교회는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헌금을 적게 하면 복도 적게 받는 것처럼 기복 신앙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헌금’의 원래 뜻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망하지도 않고,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큰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은 마음에 감동되는 대로 하면 됩니다.
5-4. 냉소적 헌금
한국 교회는 헌금을 냉소적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헌금을 할 바에야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의 운영과 복음 사역에 헌금으로 동참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형용모순입니다. 한국교회 개혁은 헌금 개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5. 기득권자들의 위선
한국 교회는 헌금에 대해서 복음의 차원에서 헌금에 참여하는 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헌금 문제는 사회 문제와 민감하게 결합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이야기는 헌금을 많이 하라는 헌금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부와 같은 사람들을 방치한 ‘기득권자들의 위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6. 자유를 주는 헌금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참된 자유를 얻은 헌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나라를 대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조건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리: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