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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누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80 추천 수 0 2025.06.29 19: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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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28-36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1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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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1P8IsCjrsEQ 
성경본문 : 누가복음 9:28-36 
오직 예수!
눅9:28-36, 예수 변모 주일, 2025년 3월 2일
 
변화산에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나타나신 날을 기리는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자 예수 변모 주일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에 따르면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 즉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을 때 환상적으로 보이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산은 하나님을 경험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구약에도 그런 이야기는 종종 나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하루 앞두었을 순간에도 기도하러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 눅 9:29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라고 합니다. 용모가 변화되었다는 말은 실제로 얼굴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기보다는 옷에 광채가 났다는 말처럼 얼굴에 환한 빛이 충만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아우라가 예수를 둘러싼 상태입니다. 출 34:29절 이하를 따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이 적인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서 모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전할 때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광채 경험은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상대방을 빛으로 경험합니다. 그 상대방의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이는 겁니다.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손자와 손녀들은 무엇을 하든지 예뻐 보입니다. 보물처럼 보입니다. 빛으로 경험되는 거지요. 제가 어렸을 때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줄넘기하거나 말타기하는 모습이 빛으로 경험되었습니다. 그 장면만 크게 클로즈업되어서 저에게 다가오는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을거리만 보면 눈에 빛이 납니다. 그 사람에게는 맛난 음식이 빛으로 경험되는 겁니다. 겨울나무가 빛으로 경험되거나 응달진 곳의 잔설이 그렇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이를 가리켜서 존재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런 경험의 절정에 들어간 사람을 가리켜서 성인이라고 합니다. 성인의 눈에는 세계가 다 빛이고 거룩함입니다. 부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면 악인들까지 선하게 볼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혹은 힘든 일까지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일반적인 논리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성인의 논리로는 가능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친구처럼 지낼 가능성이 ‘1’도 없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아주 유치한 사람, 비열한 사람, 파렴치한 사람, 철면피, 매국노, 감옥에 들어가 마땅한 사람, 천국에 그 사람이 가면 나는 천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있다고 합시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그런 사람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없는 존엄성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가 따라갈 수 없는 존엄성입니다. 이를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기에 아무리 극악무도하고 유치한 인간에게도 남아있는 그 존엄성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 곧 성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무기징역은 몰라도 사형에 처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도 이런 뜻을 포함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세와 엘리야
 
눅 9:30절에는 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와 대화했다는 겁니다. 모세는 당시로부터 대략 1천3백 년 전 인물이고, 엘리야는 9백 년 전 인물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그 장면은 사진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만이 이 세상의 reality가 아닙니다. 우리의 꿈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으나 분명한 reality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중요한 성령을 과학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으나 명백한 생명의 reality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 현상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모세와 엘리야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끌고 나온(엑소더스) 모세는 율법 종교의 대표자입니다. 구약성경 앞에 나오는 다섯 권을 모세 오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죽음에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죽었습니다. 40년간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고난의 행군을 거쳤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가나안 입성의 기쁨과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신 34:6절에 따르면 모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민족 영웅이 죽으면 그의 무덤은 성지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모세의 무덤이 버려졌다는 게 말입니다. 엘리야에게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교를 떠받치는 두 기둥과 같은 인물인데 무덤이 없다는 사실은 예수의 시신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세나 엘리야 수준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본문 바로 앞 단락을 보면 제자들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눅 9:18절 이하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이미 예수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나사렛 사람 예수가 누구이기에 많은 기적을 행하고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전하는지가 궁금했던 겁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중 심리에 묻혀서는 제자가 될 수 없으니 실존적인 대답을 해보라고 말입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병행구인 마 16:16절에는 완성도가 더 높은 대답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과 삼 일 만의 부활을 말씀하신 다음에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제자들에게는 강력한 도전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곧이어 오늘 본문의 변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당시 제자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예수에 관한 소문은 많은데, 우리는 정말 예수를 누구라 생각하고 따르는 걸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는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수준의 영적 권위가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예수와 모세가 겹쳐 보였고, 예수와 엘리야가 겹쳐 보였습니다. 이것이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에 등장했다는 본문의 실체적인 내용이 아닐는지요.
 
이 장면을 어떤 화가의 그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주보 표지 그림에는 등장인물들이 흑인으로 나옵니다. 예술가에게는 저런 그림이 가장 분명한 reality입니다. 중세기 어떤 성화에는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와 부모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나오고, 뒤로 골고다 십자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술가의 영적 시각에는 예수의 탄생 장면에 인류 구원의 십자가라는 운명까지 들어온 겁니다. 제 생각에 예수 변모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영적 경험이 문학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대답을 알고 있는 분은 나중에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32절에 따르면 졸다가 깬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예수의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 순간에도 제자들은 졸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가 엘리야를 위한 초막 세 채를 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순간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산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구름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비슷한 이야기가 예수의 세례 장면에도 나옵니다. 눅 3:22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입니다. 사도신경 둘째 항목과 같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는 사람처럼 자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우리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유일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만이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오늘 설교 본문 마지막 절인 36절을 들어보십시오.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은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습니다. 예수만(Jesus alone) 남았습니다. 환상은 그것이 아무리 황홀해도 한순간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일상은 남습니다. 그 일상은 이 변모 이야기에 이어지는 귀신 들린 아이와 예수의 고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오직 예수’(only Jesus)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만 보여야 합니다. 모세도 위대하고 엘리야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예수에게만 하나님의 외아들이라는 지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지 그 이외에 구원자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행 4:12절에는 베드로가 당시 유대교 최고위 법정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에서 행한 연설 중의 한 구절이 이렇게 나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이런 유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라는 고백이 21세기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질 겁니다. 대중 가수의 열광적인 라이브 콘서트장에 가서 ‘예수만이 구원자이십니다.’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완전 자율 주행차 시범장에 가서 ‘예수만이 구원자이시니 그를 믿으십시오.’라고 하면 미쳤나,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겠지요. 지금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헌재에서 진행 중입니다. 심리 절차는 끝났고 최종 결정만 남았습니다. 탄핵 찬반 대중 집회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그들에게 가서 ‘예수만이 구원자이십니다.’라고 말하면 몇 사람이나 귀를 기울일까요? 서울역 광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방식으로 전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앰프로 찬송가를 틀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민폐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표현이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민폐 수준의 말로 들릴지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오직 예수’라는 표현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 삶의 행복은 다른 데 있고, 예수는 죽음 이후의 안전보장 정도, 보험 정도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율법 종교, 기적 종교 넘어
 
‘오직 예수’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다시 모세와 엘리야를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모세는 율법 종교의 중심인물이고, 엘리야는 초자연적 기적 종교의 중심인물입니다. 율법과 기적은 아주 매력적인 것들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사람들에게 존경받습니다. 율법, 즉 세상 이치를 다루는 법 전문가가 되면 변호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니까요.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킨다는 말은 요즘 말로 ‘대박’을 터뜨리는 겁니다. 벼락부자가 되는 겁니다. 율법의 삶과 기적의 삶을 무조건 나쁘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능력으로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되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나라의 정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서 의미 있는 일에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어려운 지역에 학교도 세우고 도서관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을 선하게 쓰는 이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자기를 자랑하는 일에 씁니다. 권력과 돈이 가능한 한 선하게 쓰이는 세상이 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겠으나 그런 일에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오용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과학 발전이 전쟁의 위험성과 인류 멸절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지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일론 머스크가 콜라보를 이루면서 조폭 두목처럼 거들먹거리는 데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모세도 없어집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엘리야도 없어집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 남습니다. 예수가 누군가요? 오늘의 미국이라 할 당시 로마 제국의 사형제도인 십자가에 처형당한 인물입니다. 물론 예수만 십자가에 처형당한 건 아닙니다만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특별한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 죽음은 곧 하나님의 죽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말의 깊이가 느껴지십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즉 절대 생명으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습니다. 자기 세계 안에 갇힌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자기 연민에 떨어진 사람이 어떻게 원수 사랑이라는 말에서 영혼의 떨림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철저하게 세속적인 메커니즘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성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적당한 정도로 율법 종교에 머물거나 적당한 정도로 기적 종교에 머물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요. 그는 결국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다는 궁극적인 진리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라는 저 문장을 기억해 두십시오. 언젠가 우리 인생살이에도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그치고, 심지어 찬송가 소리와 설교도 그치고,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에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면서 죽었던 ‘예수만 홀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겁니다. 그 엄청난 순간을 미리 당겨 지금 여기 일상에서 누리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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