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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정연주] 부자들의 잔치

무엇이든 정돌이............... 조회 수 479 추천 수 0 2002.08.27 20: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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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잔치/ 정연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를 둘러싼 시비가 쉬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올 대선에 미칠 파괴력과 폭발력 때문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다, 사건의 바닥에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키 179㎝에 몸무게 45㎏’이라는 생물학적인 수자다. 과연 ‘고의감량’이나 ‘부정한 방법’ 없이 그런 키와 몸무게를 일정기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사실이다. 5년 전에 처음 불거진 뒤 지금껏 가라앉지 않고 계속 의문부호가 따라다니는 근본원인도 따지고 보면 선뜻 이해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이 생물학적인 수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쉽게 수용안되는 생물학적 수자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자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게 아닌데...뭔가 있을꺼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은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병역면제는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 등과 함께 우리사회 특수계급이 누려온 ‘특권적 행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터다.

특수계급의 행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개 500만원하는 외국산 곰인형을 버젓이 아이들 장남감으로 사다주고, 80평이 넘는 아파트 두 동을 털어 그 주변에 조깅 코스까지 만든다. 그런 기이한 행태들은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서 길바닥으로 내쫓긴 사람들을 비롯하여 곰인형 값의 절반도 훨씬 못되는 수입을 위해 한달동안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서민들의 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사회의 잘못된 기계적 산술적 평등주의와 입시제도 때문에 부자 아이들이 이른바 ‘명문대학’에 더 많이, 더 쉽게 들어가고, 이들은 우리사회 기득권 계층인 의사, 변호사, 판검사 등에 더 쉽게 편입된다. 돈이 많이 있으면 비싼 쪽집게 과외도 받게 되고, 외국 어학연수를 다녀와 영어시험 점수도 더 잘 받게 되고, 돈을 들여서 여러가지 ‘과외활동’ 점수도 더 잘 받게 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가산점같은 ‘평등점’을 주지 않는 산술적 평등주의 아래서는 대학입학도, 사회진입을 위한 각종 시험에서도 부자집 아이들은 절대적 우위를 갖는다. 부자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다.

특수계급의 단단한 요새 안에는 여러 유형화된 형태들이 있다. 며느리나 딸이 아이를 낳을 때 쯤이면 미국으로 건너 가 갓난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만들고, 끼리끼리 알고 있는 연줄과 노하우를 통해 병역면제의 길을 찾아내고, 쪽집게 과외도 알아내고, 기숙사가 딸린 외국 사립학교로 조기유학도 보내고...특수계급에 속한 사람들, 특히 그 부인네들한테 물어 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것들이다.

장상 전 국무총리 내정자가 인준에서 실패한 것도 우리사회 특수 기득권 세력이 누려온 ‘행태들’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저항감 때문이었다. 본인은 여러 특수정황들이 고려되지 않은채 매도되어 억울하다 하겠지만 아들 국적문제, 부동산 투기, 아파트 두 동 트기 등 쟁점으로 떠오른 문제들이 죄다 우리사회에서 5%도 안되는 특권계급의 ‘행태들’과 관련된 것이며, 이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이 컸던게 사실이다.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이 정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의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깔려있다. 그것은 단순히 병역면제의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 특수 기득권층의 ‘특권적 행태들’과 연관지어 받아 들이는 인식과 정서가 퍼져있다.


어둠 밝히는 촛불


가진 자들, 부자들의 잔치가 너무도 요란한 탓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인데도, 나누는 삶, 이웃의 고통을 함께 껴안는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장상 총리 인준 거부는 특권적 행태를 보이는 인사가 고위직에 갈 수는 없다는 좋은 교훈을 주면서 부자들의 잔치에 경종을 울렸다.

“어둠을 저주하지 말라. 오히려 그 어둠을 조금이라도 밝히기 위해 촛불 하나를 켜라”는 말이 있다. 특권적 행태가 분명 어둠의 자식일진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촛불 하나보다 더 환한 불빛을 밝히는 일이다.

정연주 논설주간 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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