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주 주보를 만듭니다.
2.한 주일동안 해 온 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보고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꼭 필요한 최소한의 부수만 만들어서 매주일 100%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4.우리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드리는 <예전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5.성서일과(lectionary)는 반더빌트대학교, 전체 예배 구성은 정용섭 목사의 안을 따릅니다.
예수와 영생 (요3:1-17)
2026.3.1 들꽃교회 주일
전한 사람 -최용우
1.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2.독생자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
3.믿음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요3:16)
4.멸망 -멸망하지 않고 (요3:16)
5.영생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6.거듭남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1.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하나님의 존재론적 근거는 사랑이며 하나님은 사랑으로써 존재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의 사랑, 또는 사랑의 능력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열린 사람은 세상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2. 독생자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독생자라는 말은 ‘외아들’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을 리 없습니다. 독생자라는 표현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은유(메타포)입니다. 그 신성은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유일무이한 현상이라서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3. 믿음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요3:16)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즉 하나님의 신성이 유일하게 나타난 인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라는 사실에 운명을 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4. 멸망
멸망하지 않고 (요3:16) 멸망은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생명에서 제외되는 것이며,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이 사랑의 능력에서 제외되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5. 영생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위르겐 몰트만은 “영생이 이 땅에서 누리는 생명을 끝없이 늘려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을 늘리려고 애쓰는 오늘날의 의학적, 생물학적 활동은 종교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영원은 무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6. 거듭남
몰트만은 “우리가 영생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러한 원천에 도달하는 것은 생명의 시간적 길이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생명의 순간적인 깊이다.” 성경은 창조와 부활의 실체(reality)가 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경험한(거듭난) 사람만이 진짜 영생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최용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