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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38]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치매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3월 22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날씨도 푸근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일반인 89%가 최근 1개월 내 수면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특히 수면 문제를 겪었다고 한 응답자 중 58%에 달했습니다.
한국에자이는 3월 13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전국 19~69세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현대인들의 수면 행태 및 치료 인식’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일반인 상당수가 수면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나, 실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제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처음엔 이상하다는 희미한 예감이 들었고, 그다음엔 ‘설마’하는 불안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저는 멈춰 섰습니다.
인생의 많은 일이 그렇듯, 시작은 분명했지만 정확히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거세게 흐르는 강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받는 쪽이었고, 엄마는 늘 주는 쪽이었습니다. 모녀 사이의 사랑에도 저울이 필요하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랑은 본래 계산 바깥에 있다고 믿었고, 엄마는 언제나 그 바깥에서 저를 온전히 감싸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언젠가는 그 사랑의 빚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날이 옵니다. 피하려 할수록 그 무게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그런 날 말입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한데이, 난 괘안태이.”
“엄마, 뭐가 맨날 괜찮아요? 이제는 진짜 할매가 되었는데…”
“너나 잘 살아래이. 내 걱정은 한 개도 하지 마래이.”
엄마의 투박한 말투는 기억의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제게 남은 유일한 이정표였습니다. ‘괜찮다’라는 짧은 한마디에 숨겨진 아흔 해의 인내를, 혜화동의 좁은 골목을 돌며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당신의 몫보다 큰 짐을 지고 살아온 삶. 네 자식을 키우며 자신을 돌볼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고단한 삶 속에서,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엄마의 몸에 밴 슬픈 언어였습니다.
단정하고 강단 있던 엄마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저의 세상을 지탱하던 견고한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고 제 형편을 저울질할 겨를은 없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워냈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치밀어오른 그 마음 하나가 저를 움직였습니다. 내가 엄마의 처지였다면, 엄마는 결코 나를 홀로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출처;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에서, 김영연 지음)
●우리에게는 오직 단 하나의 제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십자가라는 제단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율법에 매달려서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 제단에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히13:10)
●나의 기억력이 오직 해가 밝게 빛나는 시간을 가리키는 해시계 같기를(미셸 투르니에)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암에 걸린 채 탈북한 그의 마지막 기도
나는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 예배당 앞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커다란 캐딜락 한 대가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장례차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슬픔이나 절망의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평안했고, 어딘가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이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이상하게 그 장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연락이 왔습니다. 북에서 내려와 치료받고 있던 50대 초반의 광이(별명)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3년 전 북한에서 내려와 신체검사를 받을 때 간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나라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길을 찾고 있었지만, 병세는 이미 깊어졌습니다. 작년 봄 강원도 평창의 우리 공동체에 왔습니다. 그는 한 가지 소망을 말했습니다. “산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땀 흘려 일하면서, 실컷 살고 싶습니다.” 그는 공동체에서 몇 달을 함께 지냈습니다. 아픔을 잊고 함께 어울려 지내며, 앞장서서 일도 참 잘했습니다. 무엇보다 얼굴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유로운 삶을 깊이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가을 무렵 그는 공동체를 떠나 다시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공동체를 떠나던 날 말했습니다. “정말 살고 싶습니다. 정말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의 맑아진 눈 속에는 삶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퇴원 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그를 정성을 다해 돌봤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큰 위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혼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상에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주님께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예배 중에 매주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의 삶을 마친 것입니다.
그에 대한 꿈이 떠올랐습니다. 슬픔이 아닌 평안과 위엄이 가득했던 분위기! 어쩌면 주님께서 한 영혼을 맞이하는 장면을 잠시 보여주신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가 모든 고통을 잊고, 천국에서 평안히 쉬고 있으리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그가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생각할수록 또 하나의 깊은 아픔이 남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이 이렇게 세상을 떠났을까? 우리는 같은 민족이지만 이 지상에서 가장 깊은 적대적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오가는 새처럼 구름처럼 모든 원한을 씻고, 다시 한 민족으로 평화를 누리는 날은 언제 올까? 그 날은 반드시 오리라! 그리고 그 소망을 품으며, 나는 매달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출처 ; ‘산모퉁이 돌고 나니’에서,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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