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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41] 2026년 4월 12일 일요일
그래도 참고 견디자!
할렐루야! 2026년 부활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4월 12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약간 구름이 있긴 하지만 맑게 개인 상태입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부활절을 맞아 독일의 한 숲에서 달걀을 찾던 주민 3명이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5일 NDR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쯤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미텔앙겔른의 숲에서 쓰러진 나무가 사람들을 덮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합니다.
삶의 끝자락, 당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순간에도 엄마는 유진(외손녀)이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어느 날은 밥숟가락을 든 채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계시길래 “엄마, 식사하세요”하고 재촉했더니, 유진이를 생각한다며 나지막이 말씀했습니다.
“인자 마이 컸네…”
이미 장성한 손녀건만, 할머니 눈에는 아직도 밥때를 챙겨야 할 어린아이로만 보이는 모양이었습니다. 엄마는 “우야든둥 아 밥 좀 잘 거다 먹이래이”라며, 자신의 끼니보다 손녀의 허기를 더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삶은 늘 승리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비도 오지 않는데 엄마는 검은 우산을 지팡이 삼아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못 나가요. 엄마 문이 또 고장났나 봐요”
제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습니다.
“저거는 잘도 나가고 들어오더마…내만 나갈라카믄 이 문이 와 이 지랄이고? 유진아, 니가 문 좀 열어봐라.”
유진이가 망설이자, 엄마는 분풀이라도 하듯 우산으로 문을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쾅쾅 기괴한 타격음이 제 가슴뼈를 직접 때리는 채찍질처럼 울렸습니다. 며칠 전, 새로 달아 둔 잠금장치를 다시 살폈습니다.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닫혀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뜻했습니다.
며칠 전, 문을 분명히 잠갔다고 굳게 믿고 잠시 집을 비운 적이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엄마가 골목 너머로 증발하듯 사라졌던 아찔한 기억 때문에, 저에게 문은 더 이상 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신의 대상이자 공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문을 여닫는 행위는 소리 없는 연극이 되었습니다. 저는 문을 수리하는 척 몸으로 엄마의 시야를 가리고, 죄인처럼 숨을 죽여 열쇠를 돌렸습니다. 찰칵- 소리 내지 않고 맞물리는 음속의 감각, 그 작은 잠금장치 뒤로 저의 ‘착한 거짓말’은 계속되었습니다. 문을 잠그고 돌아설 때마다 느껴지는 서늘한 확신과, 그 뒤를 따르는 비릿한 죄책감이 늘 교차했습니다.
“내가 뭘 만졌다 카노? 내는 손꾸락 하나 안 댔다!”
엄마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리며 높아졌습니다.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거친 사투리가 공기를 채웠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세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서글픈 그늘로부터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갈등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고장 난 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온전히 품어내지 못하는 두 영혼의 시린 풍경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위태로운 길 위에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서로의 떨리는 손끝을 맞잡으며 천천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깊은 불신의 늪 아래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느다란 밧줄을 놓지 않은 채 내일로 건너갑니다.(출처 ;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작가)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아라. 속이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라[레19:11]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개성을 지킬 용기만 있다면 제각기 다른 길에서 의미를 찾는다.(조던 피터슨)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회개는 용기·용서·사랑 낳더군요!
이주연 목사는 “부활절을 앞두고 노숙인 형제들이 회개하고 용서하고 치유되는 변화를 보면서 은혜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회개는 용기를 낳습니다. 용기는 용서를 낳고, 용서는 사랑을 낳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와 용기, 용서 그리고 사랑입니다. 올해 부활절에는 변화의 모습들이 보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활절(5일)을 앞두고 지난 1일 강원 평창 ‘산마루예수공동체’에서 만난 이주연(69) 목사는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해발 700m 고지, 꽃은 아직 멀었지만, 개울물 소리와 폭신해진 흙에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수확한 곰취는 진한 향기를 뿜었고, 20만 주를 심은 산마늘도 곧 수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는 주말엔 서울 공덕동 산마루교회에서 설교하고, 주중엔 평창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밭을 개간하고 농사짓습니다.
그는 올해 사순절을 맞아 산마루교회 새벽기도회에서 ‘원죄’와 ‘회개’를 설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죄는 단순히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움, 불안, 분노, 교만, 결핍, 공허 등이 그 관계 단절에서 비롯됩니다. 회개는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고요. 그런데 올해 사순절 기간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적은 이 목사가 20여 년 전부터 돕고 있는 ‘노숙인 형제들’의 변화입니다. 10여 년 전 경기 포천에서 농사를 짓던 노숙인 공동체 숙소가 전소(全燒)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건 후 사라진 한 젊은이의 실화(失火)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의 학대로 10대에 가출해 거리를 떠돌던 청년이었습니다. 사건 후 소식이 끊겼던 그가 3년 전 이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심한 알코올 중독을 겪어 심신이 피폐한 상태였습니다. 사연은 묻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평창에서 술을 끊고 농사일을 도우며 지내던 청년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지난주 그 청년이 이 목사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때 제가 숙소에 불붙은 연탄을 놓고 나왔어요.” 10여 년 동안 억눌러 뒀던 이야기였습니다. 고백의 계기는 이 목사의 ‘회개’ 설교였다고 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가출 후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회개와 함께 아버지를 용서할 용기가 생겼다는 것. 그는 마침내 1일 오전 아버지에게 전화해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산마루예수공동체는 아침저녁으로 ‘용서하고, 용서받고, 감사하자’는 기도를 올립니다. 3년 동안 청년이 기도한 결실이 부활절을 앞두고 터져 나온 것.
과거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긴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 목사가 “84세 아버지가 때린들 얼마나 아프겠냐?”고 설득했지만 끝내 부자 상봉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무섭습니다.
사례는 또 있습니다. 평창 공동체에서 지내던 한 노숙인은 며칠 동안 언덕 위 십자가까지 걸어가 혼자 기도를 올렸습니다. 회개 설교를 들은 후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목사를 찾아와 “내가 교만했다. 마음속으로 목사님 욕을 많이 했다”고 고백하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교만이라니. 이 목사는 “노숙인들은 속으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세상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교만이라는 성벽을 쌓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벽을 스스로 허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회개하면서 스스로 아버지와 화해하고 용서하게 됐고, 그러면서 스스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목사는 이런 일을 겪으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 목사는 “사실은 누구나 영혼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노숙인들은 당장의 밥과 술에 갈급하지만 일반인 역시 물질과 육신의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것. “노숙인들은 돈 생기면 술을 마시면서 ‘교양 없이 죄’를 지어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어떤가요. 역시 물질적 풍요를 좇으면서 ‘교양 있게 죄’를 짓지 않나요.”
그는 “부활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증거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 세포를 분석하고 유전자를 편집하고, 장기를 복제해도 ‘생명 그 자체’는 알 수 없습니다. 신비일 뿐입니다.
“예수의 운동은 죽음 이전에 이미 파국 상태였습니다. 예수가 죽기도 전에 제자들은 배반하거나 부인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침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게 되자 흩어졌고요. 그럼에도 예수 죽음 이후에 다시 모입니다. 더 심한 탄압과 죽음이 기다리는데도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부활 사건 하나뿐입니다. 바로 죽음을 넘어 부활한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를 통해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을 믿게 된 이들이 변화했고, 그 변화가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이어오게 한 동력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변화가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여겨온 노숙인 형제들의 회개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 공부 50년, 목회 인생 45년을 맞는 그는 “올해 들어 긴 세월 동안 조각조각 경험했던 깨달음이 퍼즐 조각 맞추듯 하나로 연결되는 은혜를 느끼고 있다”며 “결국 남는 것은 회개와 감사”라고 말했습니다.(출처 ; 이주연 산마루예수공동체 목사 부활절 특별 인터뷰,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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