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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어리석은 목사
예전에
어느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입장권 2장이
아는 분을 통해서 나에게 주어졌다.
순간, 우리교회 남자 집사님 한 분을 떠올렸고. 그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부터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뼈저리게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아내는 음악회 입장권을 받는 순간 나와 함께 음악회에 갈 꿈에 빠져있었다.
결혼하고 음악회는 단 한번도 가지 못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더구나 아내나 나는 음악회를 구경할 기회가 있는 도시출신이 아니고
허구 헌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들로 산으로 일하러 가야하는 농촌출신이다 보니
음악회 티켓이 주는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다.
나로부터 집사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자 아내는 무척 서운해했다.
그러나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나에게 건냈다.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가는 구나 하고 집사님 댁으로 갔다.
약속시간에 집 앞으로 나온 집사님은
혼자가 아닌 그의 아내인 여집사님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아뿔사! 이게 아닌데...,
더구나 그 여 집사님은 "아니 왜 사모님은 안오셨어요?" 라고 나에게 물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며 " 아 그게...., 0 집사님하고 둘이서만 가려고 했거든요?"
나의 말에 여집사님은 당황하며, "그럼 두분이서 잘다녀오세요. " 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 집사님은 얼굴을 이쁘게 화장하고 옷도 신경써서 입었던 것으로 생각이 난다.
돌아서는 그 마음을 나는 그때 전혀 몰랐었다.
단지 미안했을 뿐이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일 처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아내도 그 여집사님도 함께 동행했을 것이다.
그것이 맞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당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
우선 그 음악회라는 문화를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난한 목사의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약 5년전의 일이었는데, 그 티켓값이 5만원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모두 동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구 돈이 문제라니까?
그날 음악회에 갔을 때, 더 기가 막힌 것은 티켓이 없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음악회가 기독교 단체의 찬양음악회라서
원하는 자에게는 입구에서 티켓을 그냥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두 분의 여인께 고개가 숙여진다.
차라리 집사님 부부가 갈 수 있도록 하든지, 우리 부부만 갔다오든지,
아니면 4인 모두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리석은 목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집사님이 지금도 우리교회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있다는 점이다.
기적이다.
집사님! 어리석은 김목사를 용서하세요.
예전에
어느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입장권 2장이
아는 분을 통해서 나에게 주어졌다.
순간, 우리교회 남자 집사님 한 분을 떠올렸고. 그에게 동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부터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뼈저리게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아내는 음악회 입장권을 받는 순간 나와 함께 음악회에 갈 꿈에 빠져있었다.
결혼하고 음악회는 단 한번도 가지 못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더구나 아내나 나는 음악회를 구경할 기회가 있는 도시출신이 아니고
허구 헌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들로 산으로 일하러 가야하는 농촌출신이다 보니
음악회 티켓이 주는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다.
나로부터 집사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자 아내는 무척 서운해했다.
그러나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나에게 건냈다.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가는 구나 하고 집사님 댁으로 갔다.
약속시간에 집 앞으로 나온 집사님은
혼자가 아닌 그의 아내인 여집사님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아뿔사! 이게 아닌데...,
더구나 그 여 집사님은 "아니 왜 사모님은 안오셨어요?" 라고 나에게 물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며 " 아 그게...., 0 집사님하고 둘이서만 가려고 했거든요?"
나의 말에 여집사님은 당황하며, "그럼 두분이서 잘다녀오세요. " 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 집사님은 얼굴을 이쁘게 화장하고 옷도 신경써서 입었던 것으로 생각이 난다.
돌아서는 그 마음을 나는 그때 전혀 몰랐었다.
단지 미안했을 뿐이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일 처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아내도 그 여집사님도 함께 동행했을 것이다.
그것이 맞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당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
우선 그 음악회라는 문화를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난한 목사의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약 5년전의 일이었는데, 그 티켓값이 5만원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모두 동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구 돈이 문제라니까?
그날 음악회에 갔을 때, 더 기가 막힌 것은 티켓이 없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음악회가 기독교 단체의 찬양음악회라서
원하는 자에게는 입구에서 티켓을 그냥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두 분의 여인께 고개가 숙여진다.
차라리 집사님 부부가 갈 수 있도록 하든지, 우리 부부만 갔다오든지,
아니면 4인 모두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리석은 목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집사님이 지금도 우리교회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있다는 점이다.
기적이다.
집사님! 어리석은 김목사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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