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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세븐 일레븐에서 생긴 일

스콧............... 조회 수 1817 추천 수 0 2007.07.21 18:15:37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세븐 일레븐에서 생긴 일

  몹시 추운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겨울날 아침이었다. 날씨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먼저 따뜻한 훈풍이 불어와 눈을 녹이고는 모퉁이를 돌아 뒷골목과 낮은 지대를
지나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다음에는 앙갚음을 하듯 혹독한 추위가
되돌아와 또다시 길과 지붕 전체를 하얗게 덮어 버렸다. 지난 번 돌풍에 휩쓸려 가지
않고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것들마저 꽁꽁 얼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얼음판
위에서 팔을 휘저으며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이런 날은 집 안에 있는 것이 제격이다. 코감기에 걸려 엄마가 끓여주는 따뜻한
수프를 기다리는 것이 어울린다. 그리고 뉴스로 가득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눈이
지붕 높이까지 내리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날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덴버 컨벤션 센터에서 이백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강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코를 훌쩍이며 엄마가 끓여
주는 수프를 기다릴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날씨에 대해선 우리가
어떻게도 할 수 없다. 날씨에 대해 떠드는 것 말고는.
  벌써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나는 무선 마이크에 들어갈 건전지가 필요했다.
게으름 피울 시간이 없었다. 여분의 건전지를 챙겨 오는 걸 잊었던 것이다. 정말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건전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숙이고,
단단히 옷깃을 세운 뒤, 형편없이 얇은 신사화 구두를 끌면서 살을 에는 바람 속으로
걸어나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양복 바지가 뒤로 달라붙었다. 옷이 너무 얇아서 만일 이런
어리석은 옷차림으로 바깥에 나가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틀림없이 나를 집 밖에
내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퉁이를 돌자 24시간 영업하는 세븐 일레븐 편의점의 작은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보폭을 크게 해서 좀더 빨리 걸으면 숨을 쉬지 않고서도 그곳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어찌나 맹렬하고 차가운지, 숨을 들이쉬면 기관지가
금방 타 버릴 것만 같았다. 덴버에 사는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덴버의 겨울은 참을
만한 괜찮은 경험이라고 농담을 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친척들의
질문에 덴버의 시민들은 곧잘 말한다.
  "좀 건조한 편이지요."
  좀 건조하다구! 맙소사! 이건 순전히 고추가 다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다. 습도가
부족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극을 능가하는 시속 60키로의 강풍이 등짝을
냅다 후려칠 때는 말이다.
  세븐 일레븐 안에는 두 영혼이 있었다. 계산대 뒤에 있는 여성은 로베르타라고 적인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얼굴 표정으로 보아 로베르타는 얼른 집에 가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 주며 위로의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소망과는 다르게 그녀는 지금 사람의 발길조차 뜸한 시내 한복판에서 상업의 첨병
역할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토록 추운 날에 바깥으로 나온
소수의 어리석은 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리라.
  추위로부터 피신해 온 또다른 영혼은 키가 크고 나이가 많은 어떤 노신사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들어와 있는 장소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 서둘러 편의점 문을 나가서
무자비한 바람과 싸우고 싶은 표정이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얼음이 뒤덮인 거리는
늙은 나이의 사람에게는 위험천만이었다.
  나는 그 노신사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날에 밖으로 나와 다리를 질질 끌며 세븐 일레븐까지 물건을
사러 나온 걸 보면 올바른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어쨌든 나는 제정신이 아닌 노인에게 관심을 둘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건전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을 제쳐놓고 내가 컨벤션 센터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백 명의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에겐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어쨌든 나보다 먼저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자기가 고른 물건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 로베르타는 그 빈약한 물건들을
하나씩 들어 각각의 가격을 계산기에 등록했다. 이 노인은 지금 싸구려 옥수수빵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사기 위해 이 추운 덴버의 겨울 아침을 뚫고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이런 엄청난 실수가 다 있다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옥수수빵 한 개와 바나나 한 개 정도는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동장군이 물러나고 거리가 웬만큼 기운을
추스렸을 때 천천히 산책을 하며 나와서 사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노인은
아니었다. 그는 마치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낡은 노구를 이끌고 이 추운 겨울
아침 속을 항해해 온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정말로 내일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매우
나이가 많아 보였다.
  마침내 로베르타가 금액을 말하자 지치고 늙은 손이 낡은 바바리 코트의 주머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오, 제발! 하루 종일 꾸물거릴 거예요? 난 지금 무척 바쁘단 말예요!'
  주머니를 뒤지던 손이 마침내 동전 지갑을 꺼냈다. 지갑은 노인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었다. 동전 몇 개와 구겨진 1달러 지폐 한 장이 계단대 위로 떨어졌다.
로베르타는 마치 보물이라도 받은 듯이 그것들을 소중히 다뤘다.
  그 열악한 물건들이 비닐봉지에 담기고 났을 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노인은 아무 말없이 늙고 지친 손을 천천히 계산대 너머로 내밀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방향이 확실했다.
  로베르타는 비닐봉지의 손잡이를 벌려 노인의 손목에 부드럽게 걸어 주었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손가락들은 노인의 나이를 상징하듯 온통 주름투성이였다.
  로베르타는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계산대 너머로 몸을 숙여 노인의 또다른
늙은 손을 들어올리더니 그 두 손을 맞잡아서는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그렇게 노인의 손을 자기 얼굴에 대고 따뜻하게 덥혀주기 시작했다. 위 아래,
그리고 양 옆까지.
  노인의 언 손이 얼마쯤 녹았을 때 로베르타는 손을 뻗어 노인의 굽은 어깨로
흘러내린 스카프를 집었다. 그녀는 그것을 노인의 목 둘레에 꼭 동여매 주었다.
그때까지도 노인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 순간을 자신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 두기라도 하려는 듯 정지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기억이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리라. 그가 다시금 추위 속을 뚫고 이곳까지
와야 하는 내일 아침까지는.
  로베르타는 노인의 늙은 손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단추 하나를 단단히 채워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노인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손가락을 들어 조롱하듯 이 노인에게
말했다.
  "자, 존슨 씨! 건강 조심하셔야 해요!"
  그러더니 그녀는 강조하려는 듯 약간 말을 멈췄다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난 내일도 당신이 여기에 꼭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구요."
  그 마지막 말을 귀에 담은 채로 노인은 자기가 산 물건을 들고 천천히 돌아섰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친 발 하나가 질질 끌리며 다른 발 앞으로 약간 나아갔다.
그렇게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덴버의 겨울 아침 속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노인이 바나나 한 개와 옥수수빵 하나를 사기 위해
그곳에 온 게 아니라는 걸. 그는 따뜻해지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의 가슴속까지.
  나는 말했다.
  "와우, 로베르타! 정말 대단한 고객 서비스군요. 저 노인이 당신의 삼촌이거나
이웃에 사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나요?"
  로베르타는 내 말에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그런 훌륭한
서비스를 한다는 내 생각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로베르타에게는 모든
사람이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스콧 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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