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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와 밥상

정춘희............... 조회 수 1501 추천 수 0 2008.04.04 08:18:28
.........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열 살된 유미는 도시락을 안 싸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날따라 어디론가 다급하게 나가는 유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똑똑’ 하고 누군가 앞문을 두드렸다. 여든 훨씬 넘어뵈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저 유미 할맨데요. 도시락 주려구요” 하면서 손수건에 꼭 싸맨 도시락 하나를 내미셨다. 중풍이신지 옷자락 뒤로 숨기신 오른팔과 다리가 몹시 떨리셨다. 난 너무 당황해 우선 도시락을 받아들고 유미가 교실에 없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들 속에 유미의 빈자리를 발견한 할머니는 큰일이 난 듯, 유미가 갈 만한
곳을 물으셨다. 할머니와 함께 유미를 찾아보다 찾지 못하고 혼자 집에 가시게 할 수 없어 옆 반 선생님께 다음 수업을 부탁드리고 유미네 집으로 향했다.
“우리 유미 참 맘이 이뻐요. 다른 애기들처럼 뭐 하나 사달란 소리도 않고,
밥짓고 빨래하고 혼자 다 할 텐께 할머니는 오래만 살아달라구….” 할머니는
연신 눈물 콧물을 닦아내느라 바쁘셨다. 집 앞에 이르자 할머니께서 냉수라도
마시고 가라며 붙잡았다. 어르신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마루 곳곳에 유미가 받은 상장들이 삐뚤빼뚤 붙어 있었다. 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할머니와 나는 할 말을 잊었다. 한쪽에 예쁘게 차려진 밥상 때문이었다. 마른 나물 한 접시와 계란 후라이, 콩나물국이 전부인 밥상. 그리고 공책 한 장에 큰 글씨로 적은
유미의 편지. ‘할머니, 오늘 4교시가 조금 빨리 끝났어요. 어디 가셨나 모르지만 들어오시면 꼭 드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유미 할머니는 몇 번이고
편지를 읽으시더니 다시 상보를 덮으셨다. “우리 유미 오면 같이 먹어야겠시유.”
- 정춘희, 월간 〈낮은 울타리〉 2002년 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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