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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뒷골목의 음식 나누기

김종천............... 조회 수 1520 추천 수 0 2008.05.29 07: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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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인 서울의 을지로 뒷골목에는 봉제공장, 인쇄소, 종이 만드는 공장 등 갖가지 영세업소들이 벌집처럼 빈틈없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 홀로 사장’들이다. 그들은 대개 점심을 식당에서 시켜먹는다.
백반이나 찌개, 또는 생선구이 등을 주문하여 먹고 식반을 신문지로 덮어 점포 앞이나 계단에 내놓는다. 바람이 불면 남은 음식 속으로 먼지나 오물이 얹히기 일쑤지만, 언젠가부터 그 음식들을 눈치보며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로는 여인이 비닐 봉지에다 담아가기도 하고, 혹은 폐품을 주워 연명하는 할아버지께서 마치 꿀꿀이죽처럼 지저분하게 남겨진 음식찌꺼기를 두 손으로 부지런히 드시기도 했다. 그날도 언덕배기에서
뒤로 미끄러지면 수레와 상자의 무게에 깔려 끔찍한 일을 당할 것만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손으로 눈을 털며 계단에 앉아 남은 찬 음식을 들고 계셨다.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도 들기 어려울 연세에, 이미 얼음장 같은 음식들은 잘 넘어가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 옆 가게에서 누군가가 나왔고, 할아버지께 따뜻한 물과 소주를 조금 가져와 말을 붙이는 이가 보였다. 다음부터는 깨끗이 보관해둘 테니 자주 오시라는 말을 했고, 할아버지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일이 있어서 술은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이셨다. 그 뒤로 알게 모르게 여러 주민과 영세업자들은 누구나 이심전심이 됐다.
꼭 먹을 음식만 손 대고 깨끗이 가다듬어 식반을 내어놓게 되었다.
이들 모두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 김종천, <한겨레신문> 2002년 2월 14일자 '희망찾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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