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월간 푸른초장 2001.5월호-(주제 가정 화목)
우리집 가훈은 '밝고 좋은'입니다.
최용우 (들꽃편지 발행인)
아주 평범한 우리 집 가훈은 큰 공주 '최좋은' 과 작은 공주 '최밝은'의 이름을 따서 '밝고 좋은'(성경 잠언 15:30)입니다. 행복이나 화목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무심결에 지나가는 작은 이야기 속에 마음 따듯한 행복이 숨어 있습니다. 자, 밝고 좋은 우리집을 잠시 수채화처럼 그려 보겠습니다.
1.밝은이 이야기
으앙!
밝은이가(21개월) 우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가 보니 손바닥에 빨래집게가 달려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빨래집게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집게에 물린 것입니다. 꽃게도 아닌 것이 손바닥을 꽉! 물고 놔주지 않아서 으앙 울었던 것입니다.
으앙!
또 밝은이의 울음소리에 달려가 보니 복도 청소를 할 때 대문이 닫히지 말라고 괴는 작은 벽돌 아래 손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벽돌이 손을 꼭 누르고 있어서 빼지도 못하고 으앙!
어른의 시각으로 보면 빨래집게나 반 토막 짜리 벽돌이나 아무것도 아니지만 밝은이 에게는 무서운 적입니다. 그래서 빨래집게랑 벽돌을 막 혼내줬습니다.
"떼끼! 나뿐놈들! 우리 이쁜 공주님을..." 밝은이는 그놈들이 혼나는 것을 보며 물방울이 데롱거리는 눈으로 베시시 웃구요!
2.좋은이 이야기
오후2시30분에 유치원에서 돌아온 좋은이가 4시 다 되어서 혼자 아빠가 있는 교회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실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놀더니 아까부터 아빠에게 뭔가 할말이 있는 듯 "그런데요...아빠.." 하며 몇번이나 말을 빙빙돌립니다. 녀석! 누가 네 마음을 모를줄 아느냐!
"좋은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 줄까?" 했더니 금새 입이 쪼개놓은 수박만큼이나 벌어져 버립니다. 하루에 아이스크림 한 개씩만 먹기로 엄마아빠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돌아온 즉시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을 것입니다. 이 더운 날 아이스크림 한 개 가지고 되겠는가! 그래 더 먹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아빠가 있는 사무실로 쫄래쫄래 내려왔을 것이다.
좋은이의 손을 잡고 수퍼마켓으로 가는데 좋은이의 발걸음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3.엄마 이야기
내일 유치원에서 용의검사를 한다고 좋은이가 손톱 발톱 다 깎고 엄마의 무릎에 누워 귀를 팝니다. 밝은이도 덩달아 엄마의 무릎에 누워 귀를 팝니다. 귀이개로 귓구멍을 살살 긁어주면 시원하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아이들은 온 몸을 오징어처럼 빙빙 꼬며 간지러움을 참느라 애를 씁니다. 엄마는 움직이지 말라고 아이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합니다. 아이들의 귀를 다 파면 그 다음은 아빠 차례.
"오메, 뭔 귀구멍이 손가락이 쑥 들어가네. 동굴이여 동굴."
꼭 한 마디 하면서 귀를 파주는 아내. 아내의 무릎에 누워 귀를 팝니다. 적당히 기분 좋게 간질간질하는 귓구멍. 눈을 살그머니 감고 흠뻑 심호홉을 하며 맡아보는 아내의 냄새. 가장 가까이서 맡아보는 기분 좋은 아내의 냄새. 아내의 냄새를 맡으며 어째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4.아빠이야기
아내가 피곤하다며 빈둥빈둥 대길래 결혼하고 나서 제 기억으로는 거의 두세번째인 것 같은 밥하기에 도전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밥을 제대로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똑같이 하는데도 신기하게 안됩니다. 오늘도 역시나 손등까지 물이 찰랑대게 조절해서 밥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밥이 한덩어리 입니다. 주걱으로 인절미 자르듯이 똑똑 잘라 밥그릇에 담아 차렸습니다.
아내가 말문이 막힌지 밥도 못하는 남편을 불쌍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얘들아! 요건 아빠가 특별히 만든 밥떡이다 밥떡" 너스레를 떨고 밥떡을 먹자고 했더니 좋은이가 먼저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 맛있는 밥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밝은이도 덩달아서
"예수님! 밥떡을 맛있게 먹겠습니다."
(요눔들이... 아빠를 지금 놀려!!)
5.하나 더
좋은이가 엄마에게 혼났습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오후 내내 벌을 선 모양입니다. 이유는 쌀독의 뚜껑을 깼기 때문입니다. 싱크대가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으니 무엇인가 디디고 올라가야 되는데 마침 냉장고와 싱크대 사이에 쌀독이 있었고 가끔씩 살그머니 쌀독 위에 올라가 손을 씻거나 선반 위의 물건을 내리곤 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그만 항아리 뚜껑에 금이 뚝! 가면서 쪼개져 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깨질새라 살그머니 올라가고 내려오고 했는데 울먹이며 '동생이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무심결에 항아리 위로 훌떡 올라간 것이겠지요.
어찌 좋은이 뿐이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을 하다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중에는 조심성이 없어지고 그래서 꼭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