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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거장들의 특징은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적으로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
일를 하면서, 걸어 다니면서도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
방언으로 기도할수록 방언은 바뀌어 진다.
그 방언은 새방언(막15:17)이 되며 이 때의 방언은 점차 능력의 방언이 된다.
방언은 모든 은사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영적 거장들은,
그리고 영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는 사람들은 방언으로만 기도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으로 받는 은사가 방언이며,
이 방언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이 임재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행2:4)
기도를 세가지 종류로 구별해 보면, 1,육의 기도 2,심령의 기도 3, 영의 기도가 있다.
육의 기도와 심령의 기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심령의 기도와 영의 기도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 시간의 방언기도는 심령의 기도 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비록 방언을 하면서 그 뜻을 내가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이, 우리의 깊은 소원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방언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생각이 방언의 뜻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방언 기도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전14:18) 그러므로 방언에는 무엇인가 깊은 것이 숨어 있다.
아직도 소수의 교회에서는 방언기도를 금하고 있는 곳이 있다.
그러나 말씀에는(고전14:39)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였다.
성령께서 주신 은사라면 반드시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신다.
방언을 하면 자신에게 스스로 축사가 되어진다.
이사야28장 11-12절의 말씀은 방언의 유익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즉 악한영이 우리를 곤비케 하지만, 방언을 통하여 이것들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상쾌함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은 안식이며 상쾌함을 준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혀(말)를 사로잡으시기를 원하신다.
더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잡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생각과 혀가 성령께 사로잡힐 때 성령으로부터 쓰임받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되려면 늘 습관적으로 방언을 하면서 내 혀가 성령께 잡히는 훈련을 해야 된다.
방언을 습관적으로 하고 다니면서 좋은 점은,
다른 생각(잡생각)들을 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내 생각도 그분에게 잡히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방언기도(엡5:18)하라.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영의 소리(방언기도)를 듣기를 원하신다.
방언을 받기를 원한다면, 사모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내어 이렇게 구하라.
"방언을 원합니다, 방언을 원합니다" 계속적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하라.
빠르면 2-3분에, 그리고 늦으면 2-30분안에 혀가 말리면서 내가 원하지 않은 다른 말이
나오게 된다. 그것이 방언이다. 방언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함께 도와 주면 더 좋다.
방언을 받게 되면 20분정도 더 방언으로 기도하라.
이때에 축사가 되기도 하며,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며, 회개의 은혜를 주기도 한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적으로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
일를 하면서, 걸어 다니면서도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
방언으로 기도할수록 방언은 바뀌어 진다.
그 방언은 새방언(막15:17)이 되며 이 때의 방언은 점차 능력의 방언이 된다.
방언은 모든 은사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영적 거장들은,
그리고 영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는 사람들은 방언으로만 기도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으로 받는 은사가 방언이며,
이 방언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이 임재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행2:4)
기도를 세가지 종류로 구별해 보면, 1,육의 기도 2,심령의 기도 3, 영의 기도가 있다.
육의 기도와 심령의 기도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심령의 기도와 영의 기도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 시간의 방언기도는 심령의 기도 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비록 방언을 하면서 그 뜻을 내가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이, 우리의 깊은 소원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방언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생각이 방언의 뜻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방언 기도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전14:18) 그러므로 방언에는 무엇인가 깊은 것이 숨어 있다.
아직도 소수의 교회에서는 방언기도를 금하고 있는 곳이 있다.
그러나 말씀에는(고전14:39)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였다.
성령께서 주신 은사라면 반드시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신다.
방언을 하면 자신에게 스스로 축사가 되어진다.
이사야28장 11-12절의 말씀은 방언의 유익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즉 악한영이 우리를 곤비케 하지만, 방언을 통하여 이것들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상쾌함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은 안식이며 상쾌함을 준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혀(말)를 사로잡으시기를 원하신다.
더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잡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생각과 혀가 성령께 사로잡힐 때 성령으로부터 쓰임받는 자가 된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되려면 늘 습관적으로 방언을 하면서 내 혀가 성령께 잡히는 훈련을 해야 된다.
방언을 습관적으로 하고 다니면서 좋은 점은,
다른 생각(잡생각)들을 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내 생각도 그분에게 잡히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방언기도(엡5:18)하라.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영의 소리(방언기도)를 듣기를 원하신다.
방언을 받기를 원한다면, 사모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내어 이렇게 구하라.
"방언을 원합니다, 방언을 원합니다" 계속적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하라.
빠르면 2-3분에, 그리고 늦으면 2-30분안에 혀가 말리면서 내가 원하지 않은 다른 말이
나오게 된다. 그것이 방언이다. 방언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함께 도와 주면 더 좋다.
방언을 받게 되면 20분정도 더 방언으로 기도하라.
이때에 축사가 되기도 하며,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며, 회개의 은혜를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