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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일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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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명정옥 자매 |
| 참고 : | 새길교회 2007.10.7주일설교 |
제목: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본문: 요한1서 4:13, 16-21
설교: 명정옥 (새길교회 2007.10.7주일설교)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다른 종교라고는 접해 볼 기회도 없었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회만 다녔습니다. 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늘 들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 따라서 주일에는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일 이외에 청소, 빨래, 외식이나 시장 가는 일 등이 모두 금지 사항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말씀에 복종하려고 노력했던 어릴 적 기억이 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하라는 말씀을 따르려고 골방을 찾다가 이불장 속에서 기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또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고 하지만, 천국이라든가, 하늘나라, 심판날,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신다는 등의 말씀은 멀리 높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높은 곳에서 세상 사람들을 늘 감시하고 계시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강력하신 하나님, 이분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럽기도 했고 또 의기양양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요한 1서 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각각 나누어 주셨으니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시고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멀리 계신 주님이 아니라 내 안에, 네 안에 그리고 내 곁에, 이렇게 가까이 주님이 계시다는 말씀 아닙니까.
지난 5월에 오강남 형제님께서 오셔서 해 주신 말씀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문 중에서 한두 구절만 읽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속에, 저희 존재의 바탕에 계시는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탕자가‘자신에게로 돌아감’으로써 아버지를 다시 발견한 것처럼, 저희도 저희의 속을 다시 들여다봄으로 당신을 뵙기 원하옵니다.”
“나를 내 속에 임재한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거기에서 나의 참된 정체성을 찾는다고 하면 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세상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떳떳한 자유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속에 뿐만 아니라 남의 속에도 똑 같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때 자연히 그와 동질성을 느끼고 그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말씀입니다.
또 이 13절 말씀은 성서 말씀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면 죄는 밉지만 어떻게 그 사람 속의 주님까지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파렴치한 살인범, 범죄자라 해도 그 사람 안에도 주님의 영이 조금이라도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 안, 어느 한 구석에 숨어 계실 것 같은 주님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사랑, 이웃사랑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사람 안에 주님을 생각하면 원수사랑도 이웃사랑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중, 4장 16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영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사랑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사랑, 사랑의 힘, 사랑의 씨앗을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성서는 통 털어서 한마디로 사랑이야기라고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그리고 한없는 용서가 성서의 기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신문에서나 TV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테레사수녀님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중증 장애아를 입양해서 17년 동안이나 사랑으로 극진히 돌봐주고 여러 번의 수술로 빚까지 지면서 지내온 어느 경찰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지난주에도 노숙자들의 큰 형님이 되어 그들을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내용의 신문기사도 읽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늘 새롭습니다. 감격과 감동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오를까. 어떻게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생각해 봅니다. 성령 체험을 통해서 가능해 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특권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참으로 장애아 속에, 노숙자들 속에 똑같은 동질의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해왔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가정, 우리 가족, 나의 형제들 사랑합니다. 내 친구들, 함께 자라고 어울리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나의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주일이면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새길 교우들 역시 저의 사랑의 식구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제가 만든 작은 울타리 안에서의 사랑일 뿐입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평생을 교회에서 살아온 제가 그렇게 많은 사랑의 메시지를 들어 왔음에도 아직도 이 좁은 한계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이 좁은 한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더 들면 좀 넓어지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넓어지기는커녕 더 좁아지는 게 아닌가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남을 속단하기보다는 폭넓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지니게 하여 주옵소서. 내 가족, 내 지역, 내 종교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 기도가 저와 그리고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년 전입니다.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경기도에 있는 어느 소년원에서 봉사하지 않겠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선뜻 승낙을 하였습니다. 저도 사랑 체험을 갖고 싶어 하는 오랜 숙제 같은 것이 내 심중에 있어서인지 가겠다고 약속을 해 버렸습니다. 이 소년원은 범죄를 저지른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감금해 놓고 일정 기간 동안 교육하고 기술도 가르치고, 선도하는 곳입니다. 소년원 안에 여러 종교단체들의 모임들이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곳은 그중 하나인 기독교 어머니모임인데 몇몇 교회의 권사님과 집사님들 약 20여 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가 안계시거나, 계셔도 면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년들을 위해서 감금된 그 기간 동안 그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 주는 일을 합니다. 어머니와 소년과 1:1의 관계를 맺고 매주에 한 번씩, 한 시간 정도 만나서 함께 예배보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점심을 같이 하고 나머지 주는 간식을 먹고, 함께 대화하다가 헤어집니다. 제가 요즘 맡은 아이는 17세 된 키가 작고 나약해 보이는 소년입니다. 우리 봉사부에서도 이 모임의 점심을 위해서 한 달에 10만 원씩을 후원해 주고 있습니다. 봉사부장과 부원들이 방문도 해 주셨습니다. 이 아이와 만나면 그냥 사랑의 표시로 등도 도닥거려 주고 손도 잡아주고 음식 먹을 때는 많이 먹으라고 챙겨주곤 합니다. 무슨 잘못을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전 궁금하지도 않고 묻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들어줄 뿐 절대 묻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다시는 그런 일 하면 안 된다 등의 충고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듯하게만 해줍니다.
이곳을 다니기로 마음을 먹고 얼마동안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얼마간을 지난 후부터는 가끔씩 가기가 귀찮아 지는 날이 있더니 일주일에 하루, 월요일을 매번 빼앗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제가 그 아이들에게 도무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만 두자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곳에는 새길교인은 저 하나 뿐입니다. 제가 성실하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새길의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만 두겠다는 등, 경솔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면 저 혼자는 괜찮은데 우리 새길 이미지에 손상이 될 것 같은 염려가 앞섰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시 먹고, 내 마음을 추스르는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 다니는 것, 기쁜 마음으로 다니면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질 것 같았습니다. 새벽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그곳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맡은 아이에게라도 기도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날 그 아이에게 우리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네 자신을 위한 기도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한마디 “주님, 저와 항상 함께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절대 잊지 말고 매일 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매주 만날 때마다 기도를 확인하고 채근합니다. 거짓말은 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딱 1번 했다고 하고 또 그 다음 번엔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하고, 두 번, 세 번 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그렇게 시작한 기도가 요즘엔 제법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저는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을 떠나려니까 이 아이가 제일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기 전 몇 번 기도 다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기도하라고. 돌아와서 물어보니까 기도도 했고, 특히 제가 여행 중에 건강히 있다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손자를 돌보느라 힘들었었는데 병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이 이 아이의 기도 덕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생각해 보면 전에 내가 이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성급한 저의 판단은 교만이었다고 느껴집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이 아이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저는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기도를 자꾸 하다보니까 제 정신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전 그 아이가 앞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고비마다 외로울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험난한 인생길에서 주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힘이 될 것입니다.
소년원에 갇혀 있는 이 아이들 모두가 정말 너무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받은 온갖 상처로 얼룩진 상처투성이입니다. 이 아이들의 부모, 가정환경, 주위환경, 어느 것 하나 문제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불쌍하다고 생각은 하는데도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내 가슴이 아파오는 그런 애절한 기도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나 아픔을 위해 기도할 때처럼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리는 그런 기도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제가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이 정규환 신부님이 쓰신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읽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머리로 하는 기도와 가슴(마음)으로 하는 기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머리로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 제목을 생각하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생각이 행동을 앞서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력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힘이 들고 에너지가 소모되고 그러다가 에너지가 방전되면 기도가 지속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는 대상이 나의 가슴으로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서 대상의 어려움, 아픔, 고통 등이 내 아픔이 되는 기도입니다.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거지요. 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 기도이므로 계속적으로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도 네 속에도 똑같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며 드리는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또 저자이신 정규환 신부님은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은 머리에서 가슴 사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저는 위로를 받습니다. 이 아이를 위한 내 기도가 지금쯤엔 머리에서 가슴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그를 위해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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