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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동 여행길의 하나님

요한계시 김병종............... 조회 수 2181 추천 수 0 2007.12.20 0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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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3:16-17 
설교자 : 김병종 교수 
참고 : 새길교회 

지난여름에 좀 하기 힘든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아서 새길교우들에게 제가 보고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6월 중순경 어느 기업이 많은 경비를 들여서, 자기네 유선 TV방송을 동행시키고, 저희 미술가 몇 사람으로 하여금 Silk road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고대문명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을 기획하여 그 곳에 동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요즈음 많이 유행하는 여행사에 의한 패키지 성지순례가 아니었습니다. 대단히 고생을 많이 했는데, 비행기만도 그 더운 여름에 21번을 탔고 사막과 광야를 버스로 10시간 이상씩 이동하기를 몇 차례 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이슬람, 그리스정교, 로만 가톨릭 국가들을 왕래하였고 거쳐 지나간 나라 수는 11개국에 상당했습니다.
이 여행은 고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동서문명의 십자로를 탐색하는 여행이었으며, 제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강 유역을 올라가는 여행을 했던 터라서 그와 비슷하게 고대문화 탐사여행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여행을 하고 보니까 그것은 거의 성지순례처럼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떠나온 분들이 "왜 그것을 미리 얘기하지 않았느냐, 왜 기독교 유적지 중심으로만 돌아다니느냐"고 항의가 대단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분의 이야기로는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성서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메소포타미아 고대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고대사가 엄청난 혼란에 빠져버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성서 이상의 어떤 적절한 잣대로도 근동 고대사의 발생과 전개를 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저는 성지순례도 한번 못했는데 잘됐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지만 다른 분들은 내내 떨떠름해 했습니다.
한 예로 Lost City라 불리는 다메섹의 페트라성은 1810년 스위스 고고학자 요한 마르크가 구약성서 열왕기, 역대하, 예레미야 등을 읽어가면서 면밀하게 위치를 발굴해낸 불가사의한 도시였습니다. 184년 대지진에 의해 땅 속에 함몰되었던 이 거대한 도시가 융기되어 올라온 것을 이 성서학자이자 고고학자가 찾아 낸 것과 같은 사안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걸쳐 참 많이 전개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페트라성은 약 7시간 정도 광야를 달리다 보니 갑자기 융기되어 올라온 그런 바위 성이었는데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다녀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인디아나 죤스라는 영화를 촬영한 현장이라고 하더군요. 그 신기한 바위도시에서 전설에 의하면 바울 사도가 3년 간 숨어서 신학의 체계를 세운 곳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터키 북방의 아라라산, 노아의 방주, 무리바의 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대 유적들이 성서의 표준에 의해서 발굴되어졌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서의 세계가 아주 사실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그러한 현장으로 진입을 한 것이지요. 어찌했던 이런 경유로 해서 저는 애굽에서 출발해서 시리아, 요르단, 이란, 터어기, 그리스 그리고 북방으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다시 이태리로 돌아왔고 그 속에서 특히 구약 세계들의 생생한 현장 체험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애굽에서 시작해서 사해의 소돔과 고모라를 거쳐 헬몬산 아래 요르단 강을 지나 멀리 모압 즉 지금의 요르단 파락산을 통과해서 다메섹 즉 다마스쿠스의 왕의 대로를 지나 가나안 입구까지 갔습니다. 이후 에베소와 고린도 그리고 밤모섬 등 신학의 현장들도 갔습니다.

유적지를 보는 여행 중에 제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고대인들이 죽음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집착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말티아' 즉 과녁이 빗나간 것이 아닌가 이었습니다. 하말티아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의 과녁이 빗나간, 즉 하나님을 똑바로 맞추지 못했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죄의 원 개념이죠.
흔히 거짓말, 도적질, 간음, 살인 이런 행위적인 측면을 우리는 죄라고 보지만 죄의 근본은 인간이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만나지 못하는 하말티아에 있다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서 저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번에 의미의 상당부분이 풀렸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대인들과 고대 국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신을 찾았고, 또 죽음 이후의 영생을 구했으며, 수십년 혹은 수백 년에 걸쳐서 그들이 예배할 신전을 지었으며, 이렇게 무언가 인위적으로 집결된 노력을 기울여 특히 규모가 거대하게 하면 할 수록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지 않을까 라는 환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규모의 신전들을 짓고, 사람의 상상력을 동원한 여러 가지 형상의 신을 만들고, 특히 자연물 속에서 신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가 과녁이 빗나가버린 비극의 현장들이었습니다. 한 예로 제가 통과한 애굽에서는 태양신 '라'를 숭배하였는데, 거대한 도시 카이로, 룩소에는 람세스왕의 독려로 '라'의 신전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암만의 에돔왕국이나 탈미드 고대 유적지에는 달 신과 별 신 등 눈에 보이는 대상을 경배하는 아주 숨막힐 듯한 규모의 장려한 신전들이 있었고 또 에베소에는 엄청난 크기의 아데미 여신관, 스스로 신이 되었던 로마의 트리아, 가드리아, 네로 등의 어마어마한 신전, 그리스 쪽의 미너스, 제우스, 비너스, 크노세스 신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의 이름과 신전들을 보면서 저는 계속 '하말티아', '하말티아'하고 다녔습니다.
근동 고대인들은 거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문제에 집착하면서 살았던 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범 국가적으로 모든 것을 바쳐서 죽음의 문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규명하고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친 것 같았습니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700-800년씩 걸려서 지은 신전들의 위용이 대단했는데 특히 팔미르신전, 암만 크레타신전, 애굽의 룩소들은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위용을 자랑하는 신전들이 모두 사막 가운데서 폐허가 되어서 무너져 있거나 망가져 있어서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인들이기 때문에 어리석게 어떤 형상들에 집착해서 생애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같이 동행한 사람 중에 지금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이 계셨는데, 어떻게 고대인들은 죽음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이런 신전을 만드는 일에 집착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물었더니, 고대인들뿐만이 아니고 자기가 아는 동경대학을 나온 수재들도 상당한 사람들이 옴 진리교에 빠져서 그 교주를 신으로 받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들이 그렇게 영명하거나 똑똑하거나 그럴듯한 존재는 아닌 것 같고, 현대에도 이런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레닌, 모택동, 김일성 같은 사람들은 거의 신의 위치에 세워졌는데 로마인들이 황제의 신전을 세운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유명한 위정자가 아주 자긍심 있게 "나는 박정희교의 교도다"라는 말을 했고 또 우리가 아는 장 무슨 동이라 하는 집사님께서도, 그 사모님이 쓰신 간단한 간증이 섞인 글을 보았는데, 자기가 섬겼던 주인인 전두환씨를 신 못지 않게 섬긴, 이런 현상들은 고대뿐만 아니라 현재도 볼 수 있다는 점을 서로 토론하면서 길을 갔습니다.
어쨌든 이 여행 중에 저는 우리가 너무도 쉽게, 사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어려운 선택이었겠지만, 고대인들과 같은 그러한 노력 없이도 선물로서 제대로 과녁을 맞추어 대상을 찾고 영생의 길을 향해서 간다고 하는 사실에 새삼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뚫어 놓은 구원의 대열을 믿고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대인들은 말하자면 서울서 부산 가는 고속도로를 자기가 직접 삽질을 해서 뚫고 가야 안심하는 것처럼 직접 그 엄청난 역사들을 이루고 그 속에서 구원을 얻어보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번 여행에서 성서의 표현 그리고 그 세계가 현장에 가서 보니까 모두 너무도 real한 실존 그대로를 묘사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성경은 처음서부터 끝까지 관념이 아니라 실존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요한 마르크처럼 에레미야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얻은 결론이 아니고, 그 현장들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그 모든 서술과 사실들이 실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 진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과 어두움의 비유 같은 것도 실재로 근동의 햇빛은 너무 강렬해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서는 망막을 상할 만큼 강했고 또 나무 한 그루나 물도 없이 10여 시간을 가는 광야 길의 척박함 역시 성서에 나오는 광야 이야기의 살아 있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아레논 계곡이나 무리바의 샘 등도 그대로였고 특히 모세의 샘을 보면서, 날이 더워 그 샘물을 한잔 떠먹으면서, 거기 계신 분에게 이 물이 모세 사건 이후에 계속 나오는 것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분이 저를 보면서 교회에 다닌다면 믿으셔야죠라고 말씀하더군요.

이렇게 중 근동을 돌면서 묘하게 이스라엘은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설명하신 분이 이스라엘은 그 중에서 가장 미약하고 볼품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해서 성서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졌는지 의문이 간다고 했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전부 산유국들이었고, 땅 넓고, 인종 또한 크고 강성한 나라요 민족들이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만 대단히 가냘프고, 척박하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위태위태한 나라요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치 못자리 판에 모처럼 시험관 비이컨의 시험 물처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인류의 연약함의 총체성, 대표성으로 삼으면서 이스라엘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존하고 살수밖에 없도록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의 말씀처럼 주변 모든 국가들은 부유하고, 강성하며, 기름이 넘치고, 광야가 많았지만 상당한 물질적인 부를 누리는 데도 오히려 이렇게 헛된 이방 신들을 찾고 이스라엘의 참신을 외면해버린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상 한번도 마음놓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늘 실패하곤 하나님께 돌아오고, 조금 부유해질 만 하면 또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리에 섰다가 다시 매를 맞고 돌아오는 이러한 모든 과정과 경로는 우리 인생들 특히 흩어져 있는 영적 이스라엘인 크리스천들에게 해당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연약하고 의지할 데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릎 끓고 하나님께 고하고 또 도움을 청하는 이런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과 이스라엘의 삶의 과정이며 그래서 성서의 오묘한 진리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여행 중 또 놀라운 것은 인간 바울의 전도여행이었습니다. 성경의 제일 앞 페이지에 보면 바울의 전도여행의 경로가 나와 있어서 눈으로 대충 보아 알고 있었는데 그 현장들을 다녀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42-43도를 오르내리는 광야와 뱃길은 사람을 금방 지치게 했습니다. 냉방장치가 된 버스로 달려도 한 10시간쯤 달리다보면 지치는데 바울은 수천키로씩 되는 육로 해로를 어떻게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터키 남부 다소에서 출발하여 사이프러스로 해서 뱃길로 더가 안디옥, 그리스 마케도니아, 서모나, 라오디길라로 해서 골로새로 다니면서 교회를 세웠다는 것인데 이 경로를 거의 다 답사를 했습니다. 그 길을 저희는 냉방된 버스로 달렸지만 한결같이 그리 만만치 않은 행로였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 일부 교회에 편지했다는 교회들 중에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지밀의 써모나교회였습니다. 벨을 누르니까 신부가 문을 열어주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가톨릭 교회로 쓰고 있더군요. 영적으로 죽은 교회로 책망을 받은 사대교회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제우스가 태어난 곳인 테모르스산 근처에 있었는데 아데미 신전 뒤쪽에 기둥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대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가모아 투아드라 교회가 있었는데 흔적뿐이었습니다. 왜 사대교회가 책망을 받았을까 하는 것은 현장에 가보고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아데미 신전은 그 기둥 하나를 장정 8명이 팔뚝을 벌려서 감싸 안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것으로써 유방이 124개가 달린 여신이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생각에 인간의 이런 코믹한 상상력은 한번 웃고 지나가버릴만 한데 그 당시 사람들은 아데미의 권위를 철저하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처음에 이곳으로 전도를 왔을 때 아데미의 세력은 아주 강성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데미의 신전을 장식한 은장, 금장들의 조합이 아주 견고해서 그 조합원들을 상대로 해서 힘겨운 싸움을 벌인 이야기도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어쨌든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로서 높이 130의 돌기둥이 127개나 서 있다고 했습니다. 기둥 하나의 무게가 24톤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하죠. 그 당시 바울이 눈물 뿌려서 기도했다는 에베소와 고린도는 다같이 이런 이방 신들을 섬기는 엄청난 부와 환락의 항구도시로서 타락상이 아주 극심했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하신 분의 얘기를 들으니까 에베소나 고린도 사람들은 원래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는데 물질적 부요가 넘치면서 특히 항구도시로서 동서 물산의 집결지가 되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타락상이 가속화되었고 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창녀들이 밤사이에 애를 나아서 새벽이면 강에 수없이 던지고, 마술이 횡행했으며, 특히 남자 성기 조각들이 수없이 발굴되었다는 것입니다. 돌로 형성된 건물들, 회의장, 경기장, 목욕탕들은 아주 장관으로 펼쳐져 있었고 창녀촌 입구에는 돌 판에 소년 발자국을 찍어 놓고 그보다 작은 발은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수퍼 스타이시셨지만 정말 제자 하나는 잘 두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몇 개 국어를 했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 생애 자체가 활화산 같았고 한번 회심한 후엔 뒤를 돌아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밤모섬의 요한 사도의 기도들도 잊을 수가 없는데 이 밤모섬은 요즈음도 많이들 가지만 그곳까지 가는 항로인 에게해의 파고가 아주 만만치 않아서 바울이 목선으로 이곳으로 건너갔을 때의 어려움을 짐작케 했습니다.

기독교의 이러한 유적지뿐만 아니라 이번에 또 하나 배운 것은 이슬람에 관해서 이었습니다. 이슬람은 복종, 그리고 무슬림은 이슬람은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이집트, 시리아, 이란, 터키, 요르단 모두 이슬람국가로 약 8대 1 내지 9대 1정도로 이슬람이 기독교에 비해 우세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지만 아브라함의 자식 이삭과 이스마엘 중 이스마엘에게 정통성을 두고 있으며, 알라는 곧 하나님이고, 구약을 철저히 믿는다는 점에서는 유대교와 비슷하지만 예수님을 무함마드와 같은 대 선지자 정도로만 믿고 구세주로서는 인정을 안 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플러스 유대교 플러스 민속 미신이 만들어낸 것이 이슬람 종교로 생각되어졌습니다. 테헤란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는데 짐 검사를 마치고 나니까 5시 30분이 되었어요. 이란에 들어갈 때는 속옷까지 철저하게 검색을 하는데 이유는 성경을 못 가지고 들어가도록 철저히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서양사람들 보기는 아주 어렵고 우리 조선조 사회의 유교 이디올로기처럼 이슬람 이디올로기로 철저하게 봉쇄된 사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교회마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서 전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슬람은 생활 신앙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해서 이 생활 속에서의 계율을 아주 철저하게 강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기독교가 예배중심 신앙이었던데 반해서 그곳은 생활중심 신앙이어서 지금도 미혼 처녀 총각 90프로가 순결을 지킨답니다. 도적질을 하면, 이란의 법은 프랑스 법을 모법으로 하여 시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촌락에서는 지금도 손을 잘라버린다고 합니다. 더구나 흑인과 빈민층에 파고들면서 알라와 자기와의 사랑을 전파하며 빈민구제, 형제 사랑, 정직 등을 강조하였고 이렇게 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구약의 율법신앙에 철저하게 묶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이기적이며, 공격적이고, 미국 종교로서 자본주의 논리에 방패 역을 하며, 그리고 세속화된 종교라고 매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매도에 부당한 점이 많았고, 그들이 섬기는 신 즉 하나님은 철저하게 무서운 복수 계율의 하나님이어서 기독교의 은혜, 자비, 용서의 하나님과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만 그러나 타종교권에 가서 그리고 비기독교인들과 여행을 하면서 저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행을 같이 한 동료 중 기독교인은 저와 다른 한 분이 있었는데 이상스럽게 저희들을 대표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공격을 했습니다. 저는 대게 주일날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이 같은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에 저를 객관화 시켜놓고 거울로 비춰볼 수 있는 다른 공동체를 별로 경험을 못했는데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불만을 같이 간 동료 분들이 저에게 많이 하는 경험을 가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때로는 우리가 비기독교인 친구들 또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과 많이 어울릴 필요가 있겠으며, 우리가 교회에서 우리끼리만 아멘 할렐루야하며 생활중심의 신앙 강조가 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이슬람 문화권에 가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씀은 넘쳐나는데 지식으로 알고 깨닫기만 하며 생활 속에는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을 했습니다. 저의 삶을 아는 사람들이 그 중에 한 두분 있었는데 그분들이 방패막이를 해주지 않고 같이 공격하는 것을 보아서 모든 빌미는 저에게 있지 않았나, 특히 저에게 해당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종교를 철저하게 생활 속에 침투 시켜서 거의 생활화해버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많이 배워야 될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한국 재소자의 반이 종교 난에 기독교인이라고 썼다는 모습도 보이고, 삼풍의 주인이 독실한 안수집사라는 이야기, 어찌됐던 아버지를 살해한 교수도 기독교 신자라 하고, 재야인사들을 많이 고문한 사람들 중에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 많다고 하고 그래서 이 독실하다는 의미가 무언지 참으로 혼미했습니다. 이러면서도 우리는 행위 측면을 간과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며 자기에게 맞게 적용시키고 합리화시키는데 체질화됐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대단히 철저한 계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의 복종이라고 하는 의미 속에서는 징계가 항상 따르기 때문에 현실적인 진리가 있고 사회에서도 그렇다라고 하기 때문에 타율적인 부분이 많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돌아오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이제 무언가 새로운 전도 대책으로 그런 점이 들어가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녹음된 것을 옮겨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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