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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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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5년 4월 3일 주일3부설교 |
-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소위 조모씨의 이야기가 온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조모씨는 과거 부유층과 고위 권력층 저택만 상대로 하룻밤에 수억대의 금품을 턴 후 일부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1982년에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15년을 보냈습니다. 1998년 11월에 출소하여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새 삶을 시작하고 결혼도 하고 한 경비업체에 취직도 하고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2000년 11월 신앙간증차 일본에 갔다가 빈집에 들어가 금품을 털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검거되어 징역 3년 6개월의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3월에 석방 귀국하였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또다시 좀도둑으로 변해 모치과 의사의 집을 털다 경찰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한때 개과천선하여 좋은 성도가 된 줄 알고 기뻐했는데 이렇게 된 타락상을 보고 탄식스럽기 한이 없고 어안이 벙벙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
첫째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십시다.
구약에 사울왕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입고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선망을 받고 사랑을 받고 존경을 입던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 1절에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고 축하했습니다. 그런 사울이 어떻게 하여 타락했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용감한 투사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는 암몬족속을 멸하고 크게 해방을 갖다 준 위대한 장군이요,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육신의 정욕의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왕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날 때를 기억한다. 느비딤에 있을 때 아말렉이 처들어와서 너희들 노중에 피곤할 때 일절 멸절시키려고 하였다. 그 위기에서 겨우 살아남았으니 그것을 나는 기억하고 오늘 이 시간 아말렉을 처서 임금으로부터 백성까지 짐승의 새끼까지 다 멸절하라.” 그렇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왕의 마음속에 탐욕이 생겨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무시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쳐서 사람과 짐승을 다 멸하라 하셨으나 살찐 짐승을 살려서 끌어오고 아말렉왕 아각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사무엘상 15장 8절로 9절에 보면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의 명령보다도 양이나 소나 기름진 짐승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육신의 정욕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안목의 정욕의 시험에도 빠졌습니다. 자기 과실을 위해서 아말렉의 왕을 살려 끌고 오며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었습니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그 나라왕이나 포로들을 끌고 행렬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전쟁에서 돌아오는 장군과 군대들을 향해서 박수를 치고 그 뒤에 끌려오는 적국의 왕들이나 군사들을 야유했습니다. 자기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런 승전의 행로를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살렸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5장 12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념비를 세웠으면 모르겠는데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중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자랑에 그만 푹빠져서 그는 자기 자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해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생의 자랑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세상 부귀, 권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앙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세상이 들어오니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 그는 온 마음에 세상이 꽉 들어찼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세상이 들어오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푹 빠져 버려서 그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만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와서 그를 점령하매 악령에 그는 몹시 시달렸고 결국에는 블레셋과 전투에 나가서 그 아들 셋과 함께 패전하고 전부 죽임을 당하고만 것입니다. 구약에서 표준적으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분의 모습이 바로 사울왕 입니다. 그는 성령이 떠나자 악령이 와서 그를 점령했고 악령에 시달리다가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가룟유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지혜있고, 총명하고, 열심있는 제자였습니다. 12명의 제자를 선택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고 그의 지혜와 총명을 높이 평가해서 그에게 돈궤를 맡겼습니다. 신뢰하지 않으면 돈을 맡기지 않습니다. 돈은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 중에 가룟유다를 굉장히 신뢰하셔서 돈괴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점점 마귀의 탐욕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돈주머니를 맡았는데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옥합을 깨뜨려서 기름을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에도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자 가룟유다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5절로 6절에 보면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배신한 것입니다. 그는 또 안목의 정욕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을 업고 이스라엘 독립을 가져와 영웅이 되고 싶은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습니다. 그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래서 ‘아~ 이 대군중의 힘을 이용해서 로마사람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독립을 가져오게 되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총애받는 제자로써 영웅이 될 것이다’ 그런 영웅심에 들떴습니다. 안목의 정욕의 시험에 빠져서 그는 하늘나라보다도 이스라엘의 독립과 그 가운데서 자기가 영웅이 되는 것을 더 기대했었습니다. 세상탐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생의 자랑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세상 부귀, 영화를 꿈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천국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 국권을 회복하면 그도 장관자리 하나 얻고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겠다고 하니 자기 꿈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그 분노가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해서 예수님을 팔아먹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서 종을 사고 파는 금액인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겠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을 찾아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14절로 16절에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그 이후에 가룟 유다속에 마귀가 들어가매 그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유다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육체로 마치고 성령이 떠나가고 마귀가 들어온 대표적인 신약의 인물인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 로렌드 힐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돼지떼가 한 사람을 따라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호기심에 그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돼지가 모두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힐 목사님은 돼지를 이끌고 온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콩이 담긴 바구니를 가지고 걸으면서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됩니다. 그러면 돼지들이 그 콩을 주워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자신도 모르게 도살장으로 얌전하게 들어옵니다. 마귀의 수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성도들 주위를 맴돌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콩을 떨어뜨립니다. 경계하지 않고 주워 먹는 사람은 파멸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에밀졸라는 「나나」에서 “괘락은 가장 완전하게 인간을 파멸시킨다”고 말했습니다.
2. 우리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는 마귀
둘째로, 항상 마귀는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됩니다.
베드로는 “경성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왕의 문제도 마귀의 유혹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가룟유다도 마귀가 유혹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대적을 안했습니다. 마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라간 것이 문제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육체의 일로 시험당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40주 40야를 금식했으니 얼마나 주리겠습니까? 그때 사탄이 와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으로 구복부터 채우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아들이 권능을 사용해서 비정상적으로 돌이라도 떡을 만들어 구복부터 채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순순히 그 말을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대적했습니다. 그 다음 안목의 정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지요.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으로 기적을 행하여 명예를 얻으라. 사람들이 너를 추앙하고 받들어 모시고 구름떼같이 따라오면 얼마나 좋을 것이냐. 명예를 얻으라.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을 이용해서 기적을 행하라.
마태복음 4장 5절과 6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이 그 말대로 순순히 높은 꼭대기에서 뛰어 내렸나요? 아닙니다. 단호하게 대적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그리고 마귀가 이 세상의 자랑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네가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권력을 다 주겠다. 사람들이 와서 제게 묻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왜 세상 부귀, 영화, 권세를 다 얻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일본같은 나라가 어떻게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마귀는 세상 임금이라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줍니다. 마귀를 따라가서 절하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되 대가로 영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영혼을 바치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되 영원한 지옥불로 끌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귀, 영화, 공명을 영혼과 바꾸는 것입니다. 절대로 마귀가 공짜로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시험한 것도 그것입니다. “네 영혼을 내게 맡겨라! 나에게 엎드려 절하라! 그러면 부귀, 영화, 공명을 주겠다.” 사울왕도 거기에 굴복했고, 가룟유다도 굴복했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결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조모씨가 당한 시험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것은 조씨는 마귀를 대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났지만 신앙이 아직 미숙해서 마귀에 시험을 당할 때 대적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적어도 대적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조모씨에게 육신의 정욕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야~ 쉽게 돈버는 법을 알지 않느냐. 애써서 돈 벌 것이 무엇이냐? 네가 담만 뛰어 넘으면 하루 저녁에도 수억씩 손을 벌지 않았느냐? 지금도 돈이 필요하지? 담을 뛰어 넘어라!’ 그가 마귀를 대적했으면 그것을 이겼을 것입니다. 어떻게 대적합니까? 마귀야 기록하였되 도적질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랬더라면 그 마귀의 시험은 이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모씨는 그것을 대적하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듣고서 담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쉽게 돈 버는 것에 물이 들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어느 자매님 한분이 울면서 내게 도와 달라고 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그 자매님은 시골 출신으로써 서울에 와서 조그만한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 공장에서 일한 월급으로써 자기 생활비 내고 몸치장하고 얼마남지 않은 것 시골로 붙이고 나면 내내 빈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가 어떤 업소에 가서 몸을 팔기 시작하자 하루 저녁에 자기들 한달버는 돈보다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유혹을 했어요. 몇 번 망설이다가 돈에 유혹되어서 그도 그 업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다음 몸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저녁에 화대가 한달내내 피땀흘려 번 돈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한 달만 하고 그만두어야 되겠다. 그 다음 달이 오면 한 달만 더하고 한 달만 더하고 그것이 몇 년째 되는데 이제는 빠져 나오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나와서 자기가 어떤 직장을 얻어도 도저히 오늘날 버는 돈을 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몸은 망쳐 놓았겠다. 세상에 나가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돈은 못벌겠으므로 자기는 그 유혹의 소굴에서 빠져나올 도리가 없다. 지금보다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모르겠지만 자기는 못 빠져 나오겠다. 그곳에 있으면 멸망 받는 줄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신의 정욕, 육신의 탐욕은 무섭습니다. 바로 조모씨가 빠진 유혹이 그것입니다. 그는 안목의 정욕에 빠졌습니다. 즉, 교만입니다. 절도전문가이니 문제가 없다고 마귀가 말합니다. “너 절도 전문가 아니냐? 너 담을 뛰어넘고 창문을 털고 들어가서 훔친 과거가 있지 않느냐? 너 전문가 아니냐?” 그가 이미 나이가 70이 다되고 담도 잘 뛰어 넘지 못하고 도망도 잘하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아직 젊은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마귀가 꾀니까 자기도취에 빠져서 “그렇지! 나는 절도전문가잖아. 나 같은 기술을 당할 자가 누구냐? 나는 담을 뛰어넘고 어느 창문도 뚫고 들어가서 훔칠 수 있다. 자신만만했습니다.‘안목의 정욕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이생의 자랑으로 꾀었습니다’야~ 너 그래도 대도 조모씨가 아닌가! 너를 의적이라고 사람들이 부르고 홍길동같은 사람 아닌가! 너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너는 대도다! 너 굉장한 사람이다! 너 영웅이야 영웅!‘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마귀의 이론에 우쭐했습니다’그렇지~ 나는 영웅이지. 나는 온 천하가 다 아는 대도야! 의적이야! 현대판 홍길동이야.‘ 그런 착각에 빠져서 그는 그만 죄를 짓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축하하고 온 교회가 박수를 치고 교회 교회마다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성령의 은혜가운데 있던 그가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육체로 마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냐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19절로 22절 다같이 소리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개가 토한 것을 가서 도로 먹고 있습니다. 돼지가 수렁에서 나와서 씻었다가 도로 수렁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게 전화도 하고 물었습니다. “왜 조모씨가 타락할 수 있습니까? 그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닙니까? 그가 정말 중생했습니까?” 제가 대답하는 것은 “그가 중생했었습니다. 그가 구원받았다 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귀를 대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서 성령은 떠나고 마귀가 그를 점령해서 육으로 마쳤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것입니다.
3.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셋째로,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보호를 받기 위해서 율법과 계명이란 철책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해변가에 가면 위태로운 절벽에는 철책을 쳐놓았습니다. 철책을 넘어가면 뒹굴어서 물에 빠져 죽기 때문에 보호하기 위해서 철책을 쳐놓았기 때문에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안 됩니다. 우리 휴전선에 철책을 쳐놓았습니다. 그 철책을 넘어가면 공산군에게 잡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님이 철책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이요, 계명인 것입니다. 율법이요, 계명의 철책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으면 우리는 크게 상처를 입거나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의 실업가로 체신부 장관을 지냈던 존 워너메이커는 백화점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경영능력의 소유자로 그가 투자한 것은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하루는 신문기자가 그에게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하신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가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책입니다.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를 주고 산 성경책 한권이 바로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워너 메이커는 가난했던 소년시절에 성경을 읽고 꿈을 키웠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율법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이생에 자랑으로 교만하지 않고 세상의 노예가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하는 일마다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율법과 계명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율법과 계명이란 예수님 보혈을 믿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되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 우리가 보호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철책 건너편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 율법이요, 계명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철책을 쳐놓았습니다. 이것을 뛰어넘지 말아라.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이 철책을 무시해버리고 뛰어 넘었습니다. 마귀가 이를 먹는 날에는 내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뛰어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끌려서 그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철책을 무시하지 말고 뛰어 넘지 않았으면 보호를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시편 89편 31절로 32절에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1988년 초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가 친구들과 함께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황태자의 가장 친한 친구중의 한사람이 사망했고 다른 사람들은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알고보니 울타리를 쳐놓고 “이 경계를 건너가서는 스키를 타지 마시오”라고 해 놓았는데 금지한 지역을 그들은 뛰어 넘어서 금지지역에서 스키를 탔습니다. 왜냐하면 경사가 더 급경사니까 더 스릴을 느끼고 더 재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국에서 건너가지 말라고 철책선을 쳐놓았는데 그것을 뛰어넘어 그곳에서 스키를 타다가 뒹굴어서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들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도 스키를 무척 좋아합니다. 저도 최상급에 올라가서 휘~익 타고 내려옵니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는 것은 당국에서 건너가지 말라고 경계선을 지어놓은 그 건너편에는 절대로 안갑니다. 내가 아무리 스키를 즐기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그 건너편에는 어마어마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건너가지 말라고 철책선을 해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으면 부상당하거나 죽습니다. 오늘날 스키 타다가 부상당하거나 죽는 사람들이 다 건너가지 말라는 곳에 건너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만일 찰스 황태자나 다이애나 비와 그 친구들이 그 철책선을 뛰어 넘지만 않았더라면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무시하고 이 철책선을 넘으면 반드시 마귀의 올무에 걸립니다. 마귀는 철책선 건너편에서 우는 사자같이 으르렁 대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의 철책선을 무시하고 그를 뛰어 넘으면 덥썩 와서 할퀴고 물어 찢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마음판에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기록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항상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하여 영적으로 소생하고 성령님과 교통하여 육체의 소욕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읽고,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면 육체를 통해서 오는 시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대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는데로 다 넙죽넙죽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가져오는 것은 대적해야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잇고 성령이 충만하여 강한 자를 대적하면 우리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적막의 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뱃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적막의 섬에서 들려오는 요정의 노래소리였습니다. 선원들이 밤중에 배를 타고 이 섬을 지나가면 사람의 간장을 녹일듯한 요정의 애절한 노래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노래소리에 귀를 가만히 귀울이던 뱃사공들은 모두다 한사람 두사람씩 그 요정에게 나가기 위해서 물에 뛰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빠져 죽고 아침이 되면 빈 배만 물에 둥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막의 섬을 지나갈 수 있는 배가 없었는데 꼭 배 하나는 적막의 섬을 지나다니면서도 희생자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묻자 선장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요정의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우리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노래가 하도 크게 부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귀를 울려서 요정의 노래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에 뛰어들어가지 않고 무사히 지나갑니다.” 맞습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속에 속삭입니다. 육신의 정욕의 소리, 안목의 정욕의 소리, 이생의 자랑의 소리로 속삭입니다. 내말을 들으면 너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재미를 볼 수 있다. 이리로 오라. 그럴 때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외우면 그 마귀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유혹의 소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압도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이 목소리를 피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마귀의 유혹이 있을수록 더 크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마귀의 모든 유혹의 소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의지하며 기도하므로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두 세사람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있다고 합니다. 요사이는 과학이 발달되어서 인터넷을 통해서 집에서도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아~ 나는 뭐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데 복잡하게 교회 왜 가느냐?’ 교회 오면은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보는 것이 마치 큰 불을 지핀 것과 같습니다. 불이 활활타는 데는 생장작을 넣어도 같이 타요. 그러나 장작을 하나 끌어내 놓으면 혼자서는 타지 않고 불이 죽고 재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는 성령의 불이 활활 타기 때문에 생나무도 활활 불이 붓게 되는 것입니다. 구역예배도 한가지입니다. 내가 구역예배에 가서 함께 예배드리면 다른 사람의 신앙 때문에 내 신앙에 힘을 얻고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보호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로 25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열심히 모여서 서로 권면하고 기도하고 도와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태풍이 강타했을 때의 일입니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보고 중 한 숲의 상황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 숲의 나무란 나무는 하나 남김없이 모두 뿌리가 뽑힌 채 땅바닥에 넘어져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놀라서 당장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원인은 나무들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었습니다. 심을 때 나무를 너무 간격이 떨어지게 심어 놓아 뿌리가 서로 엉키지 않아서 바람이 부니까 혼자서 감당하지 못한채 전부다 뽑혀 버렸습니다. 나무를 가까이 심어 놓았으면 뿌리가 뿌리끼리 서로 엉키기 때문에 서로 붙잡아 주므로 안 뽑힐 것인데 아무 나무뿌리도 안 엉키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므로 그냥 나무가 바람에 다 뽑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똑같은 상황을 우리 집에서 보았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널직한 정원이 있어고 정원 가운데는 사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사과가 열리면 언제나 우리 형제들이 그 사과를 따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과나무 곁에는 꽃밭이 있는데 온갖 꽃이 다 있어요. 다리아도 있고 거기에 더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해바라기를 많이 심어서 키가 큼직한 해바라기들이 있고 그 해바라기를 휘휘 감고 나팔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보면서 ‘저 나팔꽃 고약한 놈이구나! 해바라기를 왜 감고 올라가느냐?’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나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저녁에 비바람이 많이 치고 난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정원에 나가 보니까 꽃들이 다 쓰러져 있어요. 비바람에 그냥 완전히 작살이 났습니다. 그 당당하게 서있던 해바라기들이 줄기가 부러져서 축 늘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나팔꽃이 감고 있는 해바라기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나팔꽃 줄기가 해바라기를 감고 있으니까 이것이 서로 붙잡아 주어 가지고서 그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줄기가 부러지지 않았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목사가 되고 난 다음 돌이켜 보니‘그것이 참 놀라운 일이구나! 서로 저렇게 엉켜지면 살고 헤어지면 부러지는구나!’ 나무 숲도 서로 뿌리가 엉켜야만 폭풍우가 불어도 뽑히지 아니하고 심지어 해바라기 하나라도 나팔꽃이 감고 올라가 있으니까 바람이 불어도 그 줄기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혼자면 넘어지나 둘이나 셋이면 강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당에 같이 모이고 구역예배에 같이 모이고 항상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말씀 공부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요, 이웃을 위한 것이요, 함께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성도끼리 서로 교제하며 살아야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주안에 의지하며 기도하므로 서로 도와주어야 어떠한 시험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시험에 빠졌을 때는 신속히 회개하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시험에 안드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아무도 없어요. 큰소리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조씨와 같이 이런 시험에 다들 수 있습니다. 이 조씨도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또 하나님이 용서하고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심판하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 490번을 죄를 짓고도 회개하거든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한없는 용서를 가지고 회개하고 돌아왔으면 다시 구원해 주는 것이니 이 조씨같은 사람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께서 감옥에서라도 명예는 잃었을지라도 구원은 다시 복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고 회개하면 천국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옛날 나폴리에서는 죄를 지으면 그 벌로 노예들과 함께 배 밑에 들어가서 노를 저었습니다. 배에 노를 젓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나폴리 총독 오스나 공작이 그 배를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수들을 일일이 만나 어떤 죄를 짓고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죄수들은 하나같이 억울합니다. 총독님! 누명을 썼습니다. 판사가 판결을 잘못 내렸습니다 등 구구한 변병을 늘어놓았습니다. 한 사람도 자기 잘못으로 죄를 짓고 노예와 같이 노를 젓는 처지에 있다는 말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사람 죄수만이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저는 돈이 탐나서 남의 지갑을 훔친 죄인입니다. 지금 그 벌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나는 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총독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부관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지금 이 사람은 정말 죄인이군. 이 사람을 빨리 배밖으로 끌어내라. 왜냐면 모두 다 죄를 안 지었다고 하는 의인들만 있는데 이 죄인 한사람이 있으면 물이 들까 겁이 난다. 빨리 끌어내!” 그래서 배밖으로 끌어내고 난 다음 총독이 말했습니다. “너는 솔직히 죄인인 것을 고백했으므로 양심적인 사람이요, 개과천선한 사람이다. 너는 오늘부터 자유를 얻으라” 회개한 그는 자유를 얻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남 때문에 재판관 때문에 나라 때문에 내가 이곳에 와있다고 억울하다고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죄수로써 형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듦으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조씨와 같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시험에 빠져 죄를 지었더라면 즉시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될 수가 있어요.
[결론]
조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이야기입니다. 나도 언젠가 깜짝할 순간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계하지 않으면 똑같은 마귀의 시험에 빠져 범죄하게 됩니다. 더구나 과거 깊은 죄악의 늪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꼭 그 마귀가 인격적인 약점을 알고 찾아 유혹합니다. 옛날에 도박하던 사람, 옛날에 주먹쓰고 싸움하던 사람, 도둑질하던 사람, 음란한 사람 그것을 씻고 나왔으나 마귀는 그 약점을 알기 때문에 또 와서 그대로 유혹을 합니다. 마귀는 꼭 찾아와요.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철책을 쳐야 됩니다. 마귀가 뛰어넘지 못하고 나도 뛰어오지 못하게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나귀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탐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철책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쳐놓고 내가 뛰어넘어가지 않으면 마귀도 뛰어 넘어오지 못합니다. 마귀가 오면 단호하게 이 철책에 서서 대적해야 돼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도적질하지 말라 했느니라.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기록하였으되 탐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대적을 하면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 안돼요. 항상 계명을 마음 판에 새기고 자기를 돌보고 이웃을 돌보아 주며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경성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는다고 성경에 말한 것처럼 오늘날도 마귀는 우리들을 유혹에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울왕이 마귀에게 넘어갔고 가룟유다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고 조모씨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우리도 안 넘어가리라는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경성하고 깨어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우리 마음판에 율법과 계명을 분명히 적어놓게 도와 주시옵시고 율법과 계명의 철책을 뛰어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신령한 은혜속에 있고 육체의 소욕을 단호히 대적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 나무 뿌리가 얽히듯 우리가 서로서로 신앙으로 얽혀서 서로 밀어주고 도와주고 끌어주고 당겨주어서 시험에 들어 넘어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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