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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합시다.

골로새서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104 추천 수 0 2009.07.19 2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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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3:12-1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합시다.

골3:12-14

 

세종대왕 때의 일입니다. 민손이라는 사람은 계모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았습니다. 민손의 계모는 엄동 설한에 자기가 낳은 친아들 두 명에게는 따뜻한 솜옷을 입혔으나 민손에게는 갈대 옷을 입혀 추위에 떨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민손의 부친이 민손에게 "내가 관청에 가겠으니 수레를 끌어달라." 하였습니다. 추위에 덜덜 떨던 민손이 아버지가 탄 수레를 잡자 마자 수레가 요란하게 떨렸습니다. 그 부친은, 그렇게 추운가?" 하였으나, "아닙니다." 그래도 계속 떨기에 민손이 입은 옷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때서야 민손이 입은 옷이 얇은 갈대로 지은 옷이란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화가 치민 민손의 부친은 민손의 계모를 불러 "아니, 여보 이럴 수가 있소. 손이의 옷이 그게 뭐요? 이 추운 겨울에. 당장 이 집에서 나가요!"하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매우 난처해진 것은 바로 민손이었습니다. 이내 민손은 그 부친에게 공손히 말하였습니다.
"실로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시게 되면 세 아들이 다 추울 것입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계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아! 내가 잘못 생각하였구나. 내가 죽일 여자이구나."
민손은, 아닙니다. 어머니 계속 애정으로 감싸 주십시요."하고 말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천국의 열쇠’를 쓴 크로닌은 의사였습니다. 어느 날 크로닌은 의료사고를 낸 신참 간호사를 보고 부적격자이니 그녀의 자격을 취소해 달라!는 건의서를 작성했습니다. 이것을 안 그 간호사는 “ 선생님, 저를 용서하시고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라고 울며 호소했습니다.
그 날 밤 크로닌은 기도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주님, 제가 과연 그녀를 용서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것은 제가 올려야 할 기도입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그 건의서를 찢어버렸습니다. 몇 십 년 후 그 간호사는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의 간호과장이 되었습니다.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35)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시체를 전쟁터에 그냥 방치해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식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는데,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작은 공동묘지가 딸린 성당을 기억해 냈습니다. 전우의 시체를 가져간 병사들은 해가 지기 전에야 겨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허리가 굽고 야윈 신부가 그들을 맞아들였습니다. 한 병사가 정중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친구가 전쟁터에서 숨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이곳에 묻고 싶습니다.” 신부는 병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지만 아주 서투른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이곳에 묻어 줄 수가 없습니다.”
지친 병사들은 서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신부가 그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울타리 밖에 묻는 것은 괜찮습니다.”그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병사들은 하얀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어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선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병사들은 성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묻은 자리를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말에 노신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젯밤 댁들이 떠난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울타리를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옮겨 놓는 그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아예 울타리를 없애버리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 10)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가족은 그를 시각장애인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면 삶에 의욕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가 학교에 도착하자 한 선생님이 학교 시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음성이 맑은 선생님은 친절하게 청년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학교의 현관 입구로 안내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현관 밖의 계단을 내려갈 것입니다. 계단은 모두 열 개입니다. 다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화단 앞을 지날 것입니다.”
친절한 선생님의 안내에 청년은 아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청년은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처럼 눈먼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전 학생의 입장을 잘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앞을 못 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남의 입장에 자기를 놓을 줄 아는 것입니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당과 야당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서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하게 자라서 부엌일을 안 해 본 여자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아버지 밥상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걸려 만든 반찬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는데 문제는 밥이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다 되었느냐?”는 시아버지의 말에 할 수 없이 밥 같지 않은 밥을 올리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잘하겠습니다.”
혹독한 핀잔도 달게 받겠다는 며느리에게 뜻밖에도 시아버지는 기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가야, 참 잘됐다. 실은 내가 몸살기가 있어서 죽도 먹기 싫고 밥도 먹기 싫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 이후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극진히 섬겼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한 마디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에 기쁨의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갑시다(잠15:1∼4)
하루는 어떤 제자가 자기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자야,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아라. 누가 보이느냐?"
제자는 창 밖을 내다보고 난 뒤에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서 정답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또 제자에게 일렀습니다.
"이번에는 거울 앞에 서거라. 그리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아라. 누가 보이느냐?" 제자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서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거울 속에는 제 모습만 크게 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제자야, 똑같은 유리인데 어찌하여 유리창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거울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 모습만 볼 수 있겠느냐? 그것은 거울 뒤에는 은칠이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기 위해서는 먼저 네 마음에 있는 은칠을 벗겨버려야 하느니라. 투명해져야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단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편견의 은칠을 먼저 벗겨버려야 합니다. 내 감정의 은칠을 벗겨버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쉽게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들었습니다. 한밤중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가보았더니 남편이 완전히 술에 만취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거기다 혼자만 온 것이 아니고 술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자기 집에서 2차를 해야 되겠다고 친구를 같이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속상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군말 없이 주방에 가서 술상을 차려 대접했습니다.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집 같으면 자기 아내가 난리가 났을 텐데 이 집 부인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습니다. 아주 평안한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술상을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우리 집 사람 같으면 벌써 사네 못사네 하며 난리가 났을 텐데 어떻게 아주머니는 싫은 내색도 전혀 없이 이렇게 대접을 잘해 주십니까?”
그 부인은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또 졸랐습니다.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래야 우리 집 사람도 알고 배울 것 아닙니까?”
남편도 옆에서 어서 알려주라고 거들었습니다. 그제야 부인은 마지못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남편과 제가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남편에게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자고 졸라대었는데 남편은 아직까지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니까 앞으로도 교회에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저는 믿으니까 죽으면 천당가지 않겠습니까? 이까짓 고생이야 좀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남편은 믿지 않으니까 죽으면 지옥에 갈 것 아닙니까?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대접 좀 잘 받으라고 제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술맛이 나겠습니까? 술맛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호미를 챙겨주었습니다. 이웃이 가고 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주어야 하나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란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란다."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요?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은 복수와 증오의 마음을 덮을 수 있습니다.
하루는 당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서 개울을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본시 당나귀는 물과는 거리가 먼 짐승입니다. 게다가 물에 빠졌으니 등에 있던 짐이 물에 흠뻑 젖어 굉장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만 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개구리가 빈정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덩치 값도 못하는 녀석이구먼 우리는 매일 물 속에 살아도 이렇게 침착한데 겨우 물에 한 번 빠졌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개구리는 늘 물 속에서만 사니까 당나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나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오해(5)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세 번(5-3)을 고쳐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해(2)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두 번 하면(2+2) 나도 모르게 사랑(4)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도록 노력합시다
안이숙 씨의 저서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못생기고 모양 없다고 흉보지 마세요. 그를 지으신 분이 그렇게 만드신 것 일테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요.. 화를 잘 낸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일 때문에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하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늘상 늦는다고 수군거리지 마세요. 일이 많아 바쁘고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설사 한가했더라도 시계를 보지 않다가 그럴 수도 있잖아요.. 욕심이 많다고 욕하지 마세요. 매번 다른 사람 생각을 미쳐 못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무식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멸시하지 마세요. 배울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못 배웠으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인색하고 없다고 미워하지 마세요. 경제에 시달릴 때를 염려하여 절제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눈치 없고 염치없다고 시비하지 마세요.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테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요.. 우리 이해하기로 해요. 내가 나를 싸매고 가리고 변호하듯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기로 해요. 마음에 늘 평안이 있어요. 세상사는 것이 재미있어져요. 오나가나 즐겁고 감사하기만 해요.
왜... ! 왜....! 왜냐고 따지지 마세요. 불행해져요. 미움이 생겨요. 친구가 없어요. 세상이 캄캄하고 싫어지게 되요. 세상만사는 모두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요. 세상만사는 모두 그럴 수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지~~ !
이해하는 습관은 행복을 만드는 신호랍니다.
이해의 나무에는 사랑의 열매가 열리고 오해의 잡초에는 증오의 가시가 돋습니다 이해는 내면적인 안목에 의존해서 대상을 바라볼 때 숙성되고, 오해는 외면적인 안목에 의존해서 대상을 바라볼 때 발아됩니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랑을 외형적 안목에 의존해서 바라보는 성향이 짙을수록 오해의 소지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지나치게 외형적 안목을 중시하게 되면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적 가치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함도 내면적 안목에 의존해서 바라보면 아름답게 해설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걸레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외형적 안목에 의존해서 바라보면 비천하기 그지없지만 내면적 안목에 의존해서 바라보면 숭고하기 그지없습니다. 걸레는 다른 사물에 묻어 있는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자신의 살을 헐어야 합니다. 이해란 그대 자신이 걸레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미국신사가 자기 집 정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있었습니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신사는 "너에게 줄 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국신사는 "너처럼 개 같은 인디언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인디언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이 미국신사는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서 사냥개를 놓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에서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가던 인디언이 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당장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며 후히 대접했습니다. 그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미국신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그런 미국신사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감복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그런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형제를 용서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마18:23-35)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흑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남 아프리카 반투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도들은 독일인 미망인 버뮤렌의 17세의 무남독녀를 사로잡아 도끼로 토막을 내 죽였습니다. 그 소녀를 구하려던 이웃 집 소년도 꼭같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폭동 때 독일 개혁파 교회도 불타버렸습니다.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복수심이 일어났고 복수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날 밤은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투족이 그들의 교회를 재건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머니들은 종탑 헌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버뮤렌 부인도 종탑 헌금에 참여했습니다. 그순간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그 반투족들을 증오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서 증오심을 없애 주셨음을 보여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투 사람들의 교회 헌당의 날 그녀가 헌금한 돈으로 세워진 종탑에서 종이 올렸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종소리가 은은히 그 일대를 울렸을 때 그들의 마음을 녹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하였고, 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11:25)하였습니다. 용서는 베풀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인간관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덕목입니다. 또한 사랑은 만사를 이기게 하며 사랑은 어떤 완고한 마음도 솜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미국의 한 흑인이 백인의 집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백인은 이 흑인을 쫓아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흑인은 백인을 사랑으로 굴복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흑인의 소 한 마리가 백인의 초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흑인에게서 많은 벌금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낮에는 백인의 여러 마리 소가 흑인의 농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놀랬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소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백인의 아들은 조금 후에 소와 그 돈을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백인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은 흑인이 돈을 안 받는 것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용서해 주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백인은 마루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흑인을 불러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마침내 백인은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크리스천은 평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짐을 부리울지니라"(출23:4-5)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웃을 향해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게로 끌어들이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능력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모두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바라면서 우리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원한과 미움을 품고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므로 가정이 파괴되고 이웃과 다투며 나라마다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용서한 것은 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사랑하시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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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 마가복음 운명을 창조하라 막10:46-52  한태완 목사  2009-07-19 1984
» 골로새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합시다. 골3:12-14  한태완 목사  2009-07-19 2104
1785 골로새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골2:1-7  한태완 목사  2009-07-19 2565
1784 디모데전 자족하는 삶 딤전6:6-8  한태완 목사  2009-07-19 2432
1783 요엘 꿈과 비전을 가지라 욜2:28  한태완 목사  2009-07-19 2910
1782 출애굽기 그리스도를 닮은 얼굴 출34:29  한태완 목사  2009-07-19 2029
1781 시편 고난의 유익 시119:67, 71  한태완 목사  2009-07-19 2341
1780 고린도전 사랑은 긍휼이다 고전13:4-7  강종수 목사  2009-07-19 2314
1779 요나 사랑은 오래 참고 욘4:2  한완상 교수  2009-07-19 2084
1778 누가복음 삶의 길 눅10:25~28  정지석 형제  2009-07-19 1578
1777 누가복음 예수없는 예수교회 눅4ㅣ1-13  서광선 교수  2009-07-17 2119
1776 요한일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요일4:7-12  정용섭 목사  2009-07-17 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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