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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살림, 지혜 - '새로운 인간성을 향하여'

열왕기상 최만자 자매............... 조회 수 2270 추천 수 0 2009.08.06 17: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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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왕상3:26 
설교자 : 최만자 자매 
참고 : 2009.02.01 새길교회 주일설교 

요한복음 10 : 10, 잠언 8 : 22 ~ 23]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선뜻 ‘생명’ 혹은 목숨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생명을 잃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성서 누가복음에도 예수께서 소유에 집착하는 한 농부에게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그렇게 소중함 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잃으면서도 지키고 따라야 할 의미와 가치를 진리 혹은 정의에 두고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세상의 불의와 맞섰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신 진리를 따라 사는 참 사람됨을 친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숨을 버리면 참 생명을 얻게 되고 목숨을 잃지 않으려 하면 오히려 잃케 된다고 하였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지 않으면 생명도 잃케 되고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 예수께서 주신 교훈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라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지요. 그 참 사람다운 사람은 생명에 우선하여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사는 사람임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20세기 인류 사회는 가장 전쟁이 많았고 기아와 재난, 사회적 불의로 죽임과 고통의 재앙의 시대였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의 행태가 소유, 통제, 지배, 탐욕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며 그래서 진리와 정의에서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0세기적 재앙들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삶의 행태를 소유, 통제, 지배, 탐욕의 행태로부터 벗어나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사는 삶으로 전환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수난의 길로 향하면서 제자들에게 수난예고를 합니다. 그때 분명히 자신의 삶의 방식, 지도력의 방식이 이방 통치자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방식대로 살아야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해줍니다. 곧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막 10:42-45). 다시 말해 예수를 따르는 자의 태도는 지배나 통제의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되고 섬기고 희생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20세기 재앙을 초래한 소유와 통제의 방식을 벗어던지고 우리 삶을 진정으로 섬기고 꼴찌가 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만 예수의 참 제자가 되며 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는 곧 20세기적 왜곡된 인간성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성, 예수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삶으로서 보다 나은 세상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서로부터 예수 따라 사는 새로운 인간성의 모습을 세 가지로 찾아보았습니다. 그 첫째가 연민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연민의 우리말이 주는 뉴앙스는 좀 나약한 의미를 줍니다. 그러나 영어에서 com과 passion의 합성어로서 ‘열정을 함께함’ 혹은 ‘고난에 함께 함’의 뜻으로 ‘불붙는 듯한 열정’으로 감정이입empathy, 상대의 상황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열왕기서의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에는 이 연민의 의미가 잘 나타납니다. 두 여자가 한 아기를 서로 자기아이라고 주장하다가 왕이 칼로 아이를 나누어 주라는 말에 한 여자가 ‘모성애가 불붙는 듯하여’(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because compassion for her son burned within her, 공동번역-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개역-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자기는 아이를 갖지 않아도 좋으니 저 여자에게 주고 아이 생명을 살려 달라 애원합니다. 이 때 단어 ‘모성애가 ’연민‘(compassion)이라는 단어입니다. 오래전에 이 연민에 대한 얘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연민은 ’라하밈‘이란 복수인데 어원은 ’레헴‘이라는 ’자궁‘이라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자궁이라는 여성의 신체기관이 복수로 되면서 추상명사 연민으로 전환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자궁은 소유나 통제하지 않고 양육하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아기의 죽임 앞에서 절박하게 그리고 창자가 끊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가지고 부르짖는 부르짖음의 상태, 그것이 연민입니다. 그래서 연민은 정의와 맞닿아 집니다. 약하고 힘없는 것, 주변부를 향하는 것, 그리고 생명 살리기를 향하여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지는 것, 그래서 불의한 것에 저항하는 것이 연민입니다. 이 연민은 예민한 감수성에서 비롯합니다. 불의에 예민하고 정의에 철저한 감수성에 의해서 발동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윤동주님의 시에 나타나듯 ’작은 잎새에 부는 바람에도 아파하는‘ 그런 인간성, 그러한 심성일 것입니다.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면서 70년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저자 조세희씨는 ’난쏘공 출간 30년이 되었는데 시대는 더 암흑해졌습니다. 참사 보도를 보면서 가슴이 콱 막히고 어지럼증을 느끼면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70년대 경제개발의 물결아래 철거민들이 대거 출현하였고 철거민 처녀 영희의 가족의 삶이 황폐화되어가는 모습을 예리하게 그렸던 이 작가의 가슴에 닿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은 더 예민한 것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 깊은 아픔에서 너무나 무디어진 자신을 보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고역당하는 노예 히브리를 보고 하나님의 ’라하밈의 떨림으로‘(자궁의 떨림) 히브리 노예를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열왕기서의 어머니처럼 히브리 노예의 고통을 보는 하나님의 연민이 끓어 올랐다는 표현입니다. 성서 하나님의 속성은 바로 이 라하밈이라고 표현되고 있고 하나님의 속성은 지극히 모성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의 인간성의 바탕은 이 연민의 인간성이 아닐까요. 교회나 사회나 국가의 정책의 정신적 기반은 바로 이 ’연민‘의 속성 위에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시대와 이웃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연민의 행위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제가 생각하는 성서적 인간형은 ‘살림이스트’(Salimist)입니다. 요즈음 한국여성신학자들 중에는 한국여성신학을 ‘feminist theology'라 하지 말고 ’Salimist살리미스트 theology'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말에 ‘살림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살림, 그것이 바로 생존케하는 살림입니다. ‘살림’이라는 말은 70년대부터 민중신학, 생명신학, 여성신학‘ 등에서 중요한 주제로 얘기 되어왔습니다. 그것은 죽임의 문화가 너무나 팽배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문화를 뒤집어 살림의 상태로 바꾸어 나가자는 의도였습니다. 민주주의가 힘을 잃고 군부 독재 아래 고통과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성공적 상품 만들기, 이윤 남기기, 효율적이고 능력있는 인간되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리고 달려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시켜왔는지요. 그것을 돌아볼 사이도 없었지요. 경제발전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은 제한 없이 개방되어 신음하였지요. 인권은 없어지고 가난한이들 약자들은 더 죽음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에서 무한 경쟁으로 돌입한 세상은 그 대열의 낙오자들은 비인간화시키고 남을 딛고 내가 일어서야 산다는 성공론을 확장시켜 교육에도 종교에도 모두 이 사상이 지배하는 신화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경쟁은 죽이는 문화를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인간을 야비한 인간성으로 죽이는 경쟁문화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모든 문화 안에 경쟁원리들을 체우고 있습니다. 경쟁을 순화시키고 개발은 지속 가능하게 자연과의 조화, 생명을 우선하며 생각해야만 살림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임의 태도는 삯군(표준 새번역-도둑) 목자의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살리미스트로 오신 것이 역력합니다. 그분의 가는 곳마다 병자들이 치유 받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삶의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깨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되고 잃었던 사랑이 회복되는 치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을 성서를 통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다 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삶은 바로 살리미스트로 사는 것일 것입니다. 내가 사는 자리, 내 가정, 이웃, 교회, 학교, 직장 등 곳곳에서 우리는 죽임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지 살림이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제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은 지혜입니다. 여성신학자 E.S. Fiorenza는 예수의 하나님은 지혜-하나님, 곧 소피아-하나님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와 종교가 부른 하나님과는 아주 상이한 하나님 이해를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소피아-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피아-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의로운자, 경건한자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종교적으로 결핍된 자들, 사회적으로 고난 당하는 자들을 부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의로운 자와 죄인들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모든 이들을 포괄하여 안으시는 사랑으로 경험된 하나님이었습니다. 위축된자들, 불구자들, 버림받은 자들, 죄인들, 창녀들- 이들을 하나님은 더 사랑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가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모았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는 죄인들을 기뻐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헤매어 찾으면 기뻐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식탁 공동체에 초대하여 함께 하는 하나님, 아침 일찍 포도원에 온 사람이나 오후 늦게 일하러 온 사람에게 똑 같은 일당을 지불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다 품어 포괄하는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더 나아가 인간의 평등성과 연대성을 일으키도록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소피아-하나님이며 예수께서는 이 하나님이 지혜의 하나님임을 알려주고 그에게로 나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소피아-하나님 이해는 율법을 준수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의인들만의 하나님을 말한 기존한 유대사회 질서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사회의 주변적인 죄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경직된 세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28-29에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가볍고 쉽다’는 말씀은 이 기존 사회질서가 삶을 구속하는 굴레로 씌워진 힘든 자들에게 소피아-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초대하는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예수의 소피아-하나님의 초대는 유대사회 기존질서로부터의 자유로움이었는데 동시에 유대 기득권 질서에서는 이들을 일탈자로 취급한 것입니다. 예수의 소피아-하나님의 선택은 매우 철저하여 옛 질서를 돌아보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죽은 자 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며 네 오른 손이 범죄 하면 찍어 내어 버리라는 등 급진적 회심을 요청하여 명백한 새 질서의 구분을 짓고 있습니다.

 예수의 지혜의 하나님 이해에서 우리가 결론적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혜의 삶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삶, 모든 이를 존엄하게 하는 삶, 모든 구조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의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본문 잠언서 8:22-31에는 지혜에 대한 성서기자의 독특한 이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혜는 태초에 만물보다 먼저 있었던 하나님의 속성이며 이 속성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였을 때에 라고 합니다. 이 본문은 신약성서 요한복음 1:1과 매우 흡사합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 logos는 도, 길, 진리 등으로 해석되는데 이 본문에 소피아를 대응시켜보면 조금도 어색함이 없이 logos와 sophia가 동일한 것으로 연결됩니다. 잠언서 8장은 잠언의 지혜 히브리어 호크마의 선재설과 동시에 지혜는 하나님 자신이거나 신적 존재이거나 하나님의 속성으로 나타나며 피조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로고스와 동시에 소피아도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사는 인간 삶의 길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진리를 인간의 일상적 삶의 경험에서 얻는 것으로 봅니다. 주어진 규범과 원칙에 의해서 진리나 정의를 규정짓는 일반적 법 질서와는 달리, 개개인의 상활과 맥락에서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 지혜의 특성이다. 생활 속의 관계성, 생활 속의 정의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지혜는 원칙의 사회제도나 공정성의 문제를 개인의 개별적 요구와 통합적으로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합리성과 법칙에 의한 정의가 아니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특수 상황과 그 맥락에서 정의를 이루어 나가는 생활 속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지혜는 약한자, 제도화된 사회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힘없는 개인을 살아남게 하는 힘입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많은 깨우침을 그들의 지혜에서 얻게 됩니다. ‘되를 속이면 자손이 잘 안된 데요’ 라고 하는 옆집 아주머니의 말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사람의 ‘도’이며 잘사는 태도라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한 모습을 본다. 우리의 민담이나 이스라엘의 탈무드 등에 나타나는 지혜들은 모두 일상의 삶에서 발견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일상적 삶의 경험에서 얻는 지혜에 의한 질서는 규정적인 법 질서 보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 근원을 두고 있는 삶의 진리이며 그 하나님은 예수께서 보여준 소피아-하나님, 바로 모두를 포괄하는 사랑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지혜는 해학적이며 창조적이며 힘없는 자들의 언어입니다. 삶의 경험은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결과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획일화된 것을 말 할 수 없으므로 다양한 경험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든가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등의 속담은 삶의 지혜의 창조적 진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경계를 넘어서는 융통성과 열림에서 발생합니다. 하나의 진리만이라고 고집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닫힘에서는 지혜가 작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는 힘없는 자들의 언어입니다. 아무 말이나 내 뱉을 수 있는 것은 힘 가진 자들의 행태입니다. 그러나 힘없는 자들은 상황을 고려하여 그 안에서 생존해 낼 수 있는 언어를 찾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의 지혜라든가 우리 민담에 나오는 수 많은 지혜의 이야기들에서 이 점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대체로 여성들의 삶에서, 여성들에 의하여 생성됩니다. 성서의 지혜도 지혜는 여인-지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혜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등장합니다.(우리 민담에서는 특히 할머니들의 지혜나 가정주부 여인들의 지혜이야기가 많습니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 이야기는 여인=지혜의 절정이요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수퍼 우먼이 등장하고 있는 이 잠언의 지혜여인은 그야말로 살리미스트입니다. 이 초인적 여인상은 이스라엘 안에서 강력하게 전승되어온 신실한 여인에 대한 기억이 지속적으로 보존된 것으로 봅니다. 이 현숙한 지혜-여인에 대한 해석은 여성신학자 입장에서는 남성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가부장적 여성상으로 투사해 놓았다는 비판이 많고 그 지적도 매우 중요한 관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여인으로, 혹은 하나님의 속성을 여성원리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 기독교 하나님 이해를 넘어서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하나님 이해를 추구할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지혜-여인에 대한 잠언서의 강조는 기원전 2-3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지혜문서가 편집된 이 시기와의 연관성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희랍의 지배아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고 민족의 정체성과 야웨신앙이 위협받고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헬레니즘 문화 안에서 영지주의 등을 통해 활발히 발전된 지혜사상의 영향을 받아 잠언의 지혜전승을 확장시키게 되었고, 지혜는 하나님의 전달 수단이자 하나님 자신으로 확장되어 표현되었습니다. 민족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자를 소피아-하나님으로 향했고 위대한 여인들의 역할을 구원자의 역할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회적 위기에는 여성들에게 구원의 기대를 거는 경향을 볼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에서도 사랑과 모성적 속성을 강조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소피아 하나님은 자매, 아내, 어머니, 사랑하는 사람, 교사로 불렸습니다. 예수께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었다는 표현은 바로 소피아-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기존한 사회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이 소피아-하나님에게서 위로받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혜-구원자를 표현한 것입니다.

 지혜에서 얻는 결론은 일상적 경험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융통성을 가지고 힘없는 자들에게 소통되는 언어로 여성들의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진리들로 삶의 방식을 가지자는 말이 되겠습니다.

 새해가 되어 또 새로운 다짐이 많습니다. 저도 이제는 한해 한해가 새로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고령사회가 되었다 해도 이 나이에는 인생을 재음미하게 됩니다. 이제는 셈하는 방법도 달라져 갑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아직 꽤 오랜 시간이 있을 듯 하지만 내가 더 마지 할 봄이 열 번 남았구나 생각하면 한 번의 봄이 더 소중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더 의미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생을 잘 마무리 해갈 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정직하게 살아야겠구나, 정의에 더 예민하고 철저해야겠구나, 더 열리고 포괄적이고 융통성이 있어야겠구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살리미스트로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커 집니다.

 21세기 기본 이념은 인간의 평등, 발전과 평화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평등, 발전, 평화의 이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수용태세를 지닐 때 사회변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시대를 감당해내고 더 아름답게 영위하기 위하여 예수를 따르는 연민, 살림, 지혜의 새로운 인간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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