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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욜2:2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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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권진관 형제 |
| 참고 : | 2009.03.01새길교회 주일설교 |
오늘 우리는 90년 전에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삼일운동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은 우리 민족의 웅대한 꿈과 사명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거족적인 움직임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마음 속 구석에 앙금과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아픔입니다. 일제의 침략을 준비하고 대비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우리 민족 공동체에 대한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삼일운동과 같이 거족적 운동이 일제가 침략하기 훨씬 이전에 일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운동을 통하여 사회개혁이 일어나서 근대화를 추진하고, 부국강병해서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 저지할 수 있어야 했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침략 저지 운동이 동학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저는 기독자 교수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전주지역에 있는 동학 유적지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가보았지만, 이번에 그곳에 가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동학의 교도들과 농민들이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와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의 형편을 보고 일어난 사건이 동학농민혁명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동학 전쟁으로 이름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전쟁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이 농민들이 일본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학 농민들은 마지막 전투를 공주 우금치에서 싸웠습니다. 동학의 민중들이 일본과 조선왕조의 연합군과 맞서 싸웠으나 일본의 근대적인 무기 앞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왕조가 일본과 합세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요 조선 엘리트들의 씻을 수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운명이 기울어졌던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는 한 민족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했을 때, 그 민족은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과의 전쟁에 휘말려 수많은 인명을 잃은 이라크를 보아도 알 수 있고, 이번에 일방적인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무참하게 수많은 살상자들을 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우를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독립된 국가라고 되어 있습니다마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비극에 휘말려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제에의 합병도 그랬고, 6·25 전쟁도 우리가 원하지 않은 비극이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민족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민족과 민중을 위한 사명의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진정한 해방을 얻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지금도 서로를 적대시할 뿐 아니라, 요즘은 전면적인 대결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직도 하나의 나라로서의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남북의 주요한 문제들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간섭되고 결정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북핵과 평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리는 6자 회담은 우리 남북의 문제들이 외국의 간섭 없이는 해결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6자 회담도 우리가 진정한 독립국가가 아님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일운동의 목표는 아직도 성취되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삼일운동은 지금도 지속되어야 할 운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천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삼일운동에서 내세웠던 공약삼장이 오늘날에도 매우 귀중하다고 생각해서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은 것인데, 매우 높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公約三章(공약 3장)
一.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一.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一.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저는 삼일운동은 성령의 사건이었다고 믿습니다. 삼일운동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같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마를 대로 말라버린 마른 뼈들과 같았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어오는 생명의 영에 의해서 다시 살아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무리로 다시 태어난 사건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우리 민중들이 나라를 되찾고 국권을 회복하자고 외쳤던 성령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공약삼장을 보면서, 삼일운동을 일으킨 우리 민족의 의지와 뜻이 실로 광명정대하고, 그 비전이 웅대하였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삼일운동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한 단계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삼일운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새롭게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저는 삼일운동을 성령의 사건이라고 보는데, 이것을 말해 주는 성서적 근거를 몇 가지 대보겠습니다. 삼일운동은 바울 선생이 로마서 8:2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속에서 성령의 기도로 이루어진 사건이었고, 선지자 요엘이 보았듯이, 노인과 청년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같은 꿈과 비전으로 일어난 성령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일운동은 기독교가 주축이 되어 일어났었다는 점도 이 사건이 성령의 사건이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삼일운동은 한국 교회와 한국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삼일운동은 예수의 영이 임한 사건으로서, 약자가 해방되고 억눌린 자들이 해방되는 누가 복음 4:18의 말씀이 실현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3년 전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는 작은 사회운동 공동체인 열린평화포럼을 조직하는 일에 힘을 쏟았고, 지금은 이 공동체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어서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운동체를 조직하고 그것을 통하여 정의와 평화의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삼일정신에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야말로 오늘날 이 시대를 위한 영적인 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사건은 인간들의 소통이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은 지역적인 출신이 다른 수많은 이방인들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가 알아듣는 소통의 사건이었습니다(행 2:1-12). 저는 작은 공동체, 운동단체들은 이러한 소통이 일어나는 장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러한 공동체들은 당면한 주제들을 놓고, 그것에 정통한 강사를 초대하여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합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모으고, 힘과 지혜를 모으게 됩니다. 성령의 사건은 고립무원한 개인 안에 일어나는 신비한 사적인 경험이 아니라, 공적인 소통과 교통, 그리고 친교가 일어나 함께 비전을 갖게 되는 공적이고 집단적인 경험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요엘서의 본문의 말씀,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는 이 말씀은 우리가 함께 꿈과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서로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고 하는 가운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꿈과 비전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노년은 꿈을 접는 시기입니다. 요즘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일찍부터 꿈을 접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기은퇴를 하고, 아직 젊은 나이에 꿈을 접고 있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늙은 사람들은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늙은이가 꿈을 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면, 이들에게 비전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두들 코앞에 닥친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좋은 대학을 다니는 유능한 젊은이들일 수록 여유가 없습니다. 너무나 바쁘게 살기 때문에, 남을 돌아본다던가, 사회와 역사를 살핀다든가, 대의를 위해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장래를 길게 보고, 앞날을 위해서 그리고 더 큰 일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환상과 비전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학생회가 약화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이러한 눈앞에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욕망을 버리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삼일운동은 노인들과 젊은이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갖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특별히 온 국민 안에 소통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33인이 앞장서니, 뜻이 모아지고, 입과 입으로, 그리고 이심전심으로 온 국민들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온 국민들 사이에 소통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통은 국민적인 에너지를 모았고, 민족의 성원 각자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사건이 무엇보다 소통의 사건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은 인터넷, 디지털, 이메일, 핸드폰 등에 의한 소통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관광버스가 하이패스 장치를 하고 있어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정지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통행료가 빠져나갑니다. 버스와 톨게이트 아니 도로공사와 교통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서 일이 처리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통신망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제는 전파로 무선인터넷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화상통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편지를 쓰면 미국에 있는 아들이 한 달 후에 받았고, 답장이 오려면 다시 몇 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즘에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화상통화를 하면 순식간에 소통됩니다. 보이지 않는 파장에 의해서 우리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아날로그시대로부터 디지털 시대로 옮겨간 것입니다.
중세 유럽의 수도자 플로리스의 요하킴이 말했듯이, 우리시대는 성부의 시대를 거쳐, 성자의 시대로부터, 소통과 교통의 시대인 성령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년에 있었던 촛불시위가 바로 전형적인 소통의 사건이었습니다. 촛불 시위 동안에 개인들과 작은 집단들이 핸드폰, 무선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웹비디오 등으로 소통하여 수만 명 수십만 명을 동원하고 소통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도 오늘날의 새로운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소통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상호 교통의 사건을 통해 지혜와 지식이 모아지고 통합되고, 발전되어 갑니다. 우리 인류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계와 물건이 나와서 우리가 그것을 다 활용해 쓸 수 있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 전자파나, 디지털 자체가 성령이나 영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런 것들은 영과 비슷한 작용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어 소통하게 한다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통을 활성화시켜주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 일정한 방향을 우리에게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자체로 선이나 혹은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항상 선합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자체가 일정한 방향과 목적을 제시하거나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들은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쓰이느냐에 따라서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고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모든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중립적이고 방향성은 없습니다. 만약 방향성이 있다면 자기 자신으로 끌어들이는 인터넷 중독증만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의 형제분하고 교회 지하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토론을 한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습니다. 성령도 인터넷과 디지털처럼, 그러한 방향성 없는 소통만을 조장하는 존재인가요? 성령도 폭발적인 잠재 에너지를 가졌지만 방향성은 없는, 중립적이고, 바람처럼 불고 싶은 데로 부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그러한 존재일까요(요한복음 3:8)? 성령은 어떠한 지향성이나 목적을 갖지 않은 순수한 잠재력에 불과한 것인가요?
이러한 질문을 제 스스로 던지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령은 적어도 인간의 욕심대로 움직여주는 그런 힘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은 방향성이 없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성령의 방향성에 대해서 적어도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가 존재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순복음 교회의 입장인데요, 성령은 우리에게 복을 주는 존재로, 좀 세속적으로 말하면 성령은 우리를 영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고, 물질적으로는 부자가 되게 만드는 축복의 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오늘날 한국의 기성 개신교회의 대체적인 입장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예수의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방향성에 대한 말씀이 누가 복음 4:1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약자를 풀어주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고, 눈먼자들에게 시력을 회복해 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4:18절에 소개된 성령은 삼일절의 사건을 통해서 역사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 민족은 약자였고 억눌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억눌림에서 풀려나야 했고, 해방되어야 했고 살아야 했습니다. 삼일운동은 이 예수의 영의 활동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삼일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삼일절을 맞아서, 우리 민족은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와 이웃 민족들보다도 우리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미국인들보다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평화를 세울 수 있고, 우리의 독립과 안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숙이란 다소 추상적인 말을 썼습니다마는 성숙이라는 이 말 속에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성숙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자연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문화적 정신적 성숙의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또 다른 성숙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성숙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민족에게 억압과 수탈을 당했었음을 기억하고, 다른 민족들을 존중하고 평화와 정의로써 대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100만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노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대할 때 따뜻하고 정당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민족적인 성숙을 이루는 데에 우리 교회가 앞장 서야 하고, 기독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우리 민족이 일본의 폭압적 지배에 의해 많은 고난을 당할 때 당신께서는 우리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의 힘으로 우리 민족이 독립을 이루었고, 우리가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민족은 어려움을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삼일절을 맞는 저희들에게 민족을 위한 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나라와 민족이 보다 성숙되는 일에 우리가 앞장설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늘 저희들을 일깨우시고,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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