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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전3: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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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용덕 형제 |
| 참고 : | 새길교회 주일설교 2009.04.05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은 그 속담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원래 그 속담이 나오게 된 연유는 중국 고대 전국시대의 지략가들 이야기를 모은 <戰國策>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襄王이 楚나라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의 失政에 대하여 莊辛이라는 策士가 비판을 하고는 趙나라로 떠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襄王은 후에 그의 忠言이 옳았음을 깨닫고 다시 불러 지혜를 구하자 莊辛은 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돌아보아도 아직 늦지 않았으며,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쳐도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해 줍니다.
양을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는 지혜는 확실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을 어리석게만 여기는 우리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해줍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과연 쓸 데 없는 일인지? 그렇지 않으면 소 잃은 것을 깨달아 더 든든하게 외양간을 손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이 필요 없어졌는데도 이것을 고치려는 사람을 비웃는 것은 곧 오늘의 효용성만을 생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차분히, 왜 소가 외양간을 나갔는가를 살펴보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손을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대책이 아닐까요? 그래서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 것을 아는 그것이 곧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겠지요.
우리는 ‘옛것은 느리고, 벗어나야 할 것이고, 새것은 빠르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관념에 어느덧 젖어서 살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주일 ‘느림보’라는 영화사에서 제작한 <워낭 소리>를 보았습니다. 많이들 보셨겠습니다만, 40년 동안을 소와 함께 지내 온, 경상도 봉화 산골에 사는 노인네 이야기입니다. 아니 소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지요.
40년 동안 이 소 덕분에 9남매를 낳아 다 교육시키고, 이제는 80 노인 부부만이 힘겹게 이 소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절대로 소에게 인공사료를 먹이지 않을뿐더러 밭에 농약도 절대로 치지 않습니다. ‘사료 먹여 키운 소는 살이 찌긴 하는데 새끼를 잘 배지 못해’ 하는 말이 오늘 우리 자식들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뜨끔한 경종으로 울리기도 합니다.
또 노인과 소는 상당히 비슷하기도 합니다. 힘이 다 빠져 절뚝거리는 노인이나 뼈가 앙상하여 걷기도 힘든 늙은 소나 서로 비슷해서인지 남의 말은 잘못 들으면서도 이 둘이는 서로 意思가 통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나 이웃 사람들이 늙은 소 죽기 전에 빨리 팔아버리라고 하자, “안 팔아, 안 팔아!” 하고 화를 내던 할아버지가 마침내 소시장에 이 소를 끌고 나갑니다. 그러나 흥정이 될 수 없게 비싼 값을 요구하는 할아버지의 태도에 관객은 순간 당혹하게 되지만 그것이 곧 소를 안 팔려는 할아버지의 지혜임을 알면서, 다시 한번 노인의 지혜에 머리가 끄덕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소가 너무 힘이 들어 나뭇짐을 끌고 가다 넘어지자, 할아버지가 그 짐을 나눠 지고 소를 일으켜 세워 둘이 절름거리며 같이 가는 장면입니다. 그야말로 늙은 소와 할아버지가 서로를 동격으로 똑같이 생각해 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워낭 소리>에 대한 Los Angeles Times의 칼럼 제목도 그래서 ‘어느 한국 농부에게 이 소는 신성한 존재였다’ (To a South Korean farmer, this cow was sacred)고 부친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면서 저는 권정생 님을 떠올렸습니다. 이 할아버지나 권정생 님, 두 분 다 거의 無學이지만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섭리를 체득한 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상도 안동 시골교회의 종지기로 골방에 혼자 살며, 아이들을 위해 얘기꺼리를 만들어 주던 권정생 님은 느리게 살며 자연과 合一해 가는 삶을 보여준 분이셨습니다. 대표작 <강아지 똥>은 오늘날 한국동화문학의 최고 수준을 나타내는 아주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눈 똥이 시골 길가에서 흙을 만나 슬피 웁니다. 더럽다고 외면 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편 흙은 가뭄 때문에 제가 키우던 채소가 다 말라 죽었다고 자기 잘 못인 것처럼 슬피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다 흙과 강아지 똥은 함께 밭주인의 삽에 묻혀 던져져 민들레 씨를 만납니다. 이 둘에게 민들레 씨가 말합니다. 거름으로 변하면 민들레꽃을 피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강아지 똥은 기쁘게 잘게 부서져 흙 속으로 들어가 한 송이 민들레로 피어나 자기 할 일을 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체득한 사람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고, 이야기입니다. 예부터, 가장 잘 깨우치는 사람을 生而知之者(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이 學而知之者(배워서 아는 사람), 困而學之者(곤란을 통해 배우는 사람), 困而不學者(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의 순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을 비웃는, 안목이 좁고 짧은 사람은 困而不學者일 것이고,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는 사람은 그래도 困而學之者 내지는 學而知之者 정도는 될 것입니다. 生而知之者야 말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터득한 지혜의 사람들이겠지요.
‘지식인 집단’이란 말은 있어도 ‘지혜인 집단’이란 말은 없습니다. ‘지식인 교회’라는 말은 있어도 ‘지혜로운 사람들의 공동체 (또는 지혜공동체)’라는 말은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창조의 보전과 완성을 위해 우리의 몸을 바치려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되뇌이고 결단하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온 정성과 다함이 아직도 <워낭소리>의 노인이나 권정생 님의 지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반성하게 됩니다. ‘워낭소리’는 권정생 님이 치는 시골교회의 ‘종소리’이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그는 마을 안 교회로
종을 치러 간다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무사히 넘겼음을 감사하지만
그 종소리를 울면서 듣고 있는 것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버러지며 풀 따위 아주 작고 하찮은 것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지닌 것들이
종소리를 들으면서 울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신경림, <종소리 - 권정생 씨에게>에서
기도 :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섭리자이신 하나님,
인간들의 탐욕과 나태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저희들에게 주시옵소서.
워낭소리가 교회의 종소리로 들릴 수 있도록 저희들의 심성을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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