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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중심의 삶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06 추천 수 0 2009.10.20 00: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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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27: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10월 1일 성찬주일 2부 설교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 중심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는 많고 위험한 물길을 헤치고 갑니다. 전후좌우의 파도에 끊임없이 동요하지만 배는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배를 만들 때 배의 중심이 배 밑에 굳건히 놓이게 해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뚝이를 보십시오. 아무리 넘어뜨려도 항상 벌떡 일어납니다. 저는 어릴 때 오뚝이를 보고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넘어뜨리면 팔딱 일어나고 넘어뜨리면 팔딱 일어나고. 그래서 불퇴진의 생활을 하는 사람보고 오뚝이 같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넘어뜨리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뚝이의 배 밑에 무게 중심을 갖도록 납덩어리를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밑에 납덩어리가 있으므로 가벼운 위에 있는 물체는 바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개인이나 국가가 그 중심을 잘못 잡아 놓으면 역사의 파도 속에 침몰하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억센 파도를 헤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도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수많은 크고 작은 파도를 헤치고 나가야 되고 한 국가도 역사라는 파도 속에 침몰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파도를 능히 이기고 건너가기 위해서는

[본론]
1.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반드시 침몰한다.

하나님 중심이 밑에 콱 서있지 않으면 개인의 풍파와 파도, 역사적인 파도에 반드시 전복되고 침몰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127: 1~ 2에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콱 앉아 계셔서 우리 중심을 붙잡아 주지 아니하시면 다가오는 파도에 휘청휘청 하다가 침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세계도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중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심이 되어 있어야 우리는 평안하게 마음에 안심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를 해도 파도에 휘몰려서 침몰해 버리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모시고 좌정해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전반에 독일은 근대적 통일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해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1811년에 피히테가 베를린 대학의 초대총장이 되면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문을 통해 오직 독일 민족만이 전 인류의 도덕적 개혁에 공헌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2대 총장이 된 헤겔은 독일이 세계정신의 중심에 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은 좋지만 잘못되면 세계에서 자기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 시대에 와서는 맹목 적으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결과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하고 온 유럽을 전쟁의 불도가니 속에 휘몰아 넣었습니다. 그 결과 역사의 파도에 독일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독일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셨으면 침몰 안했을 것입니다.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는 역사의 파도에 침몰하고 만 것입니다. 일본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천황을 ‘아마데라스 오미카미’라는 황신으로 신격화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와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근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서지 않은 일본 역시 역사의 거대한 파도를 만나서 침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이며, 영혼도 정신도 없다고 하는 유물론을 주장했습니다. 칼 막스는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며 종교는 아편이라고 신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엥겔스 역시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라며 인간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신을 부정하고 철저한 인본주의와 무신론 위에서 발전한 소련 공산주의는 결국 역사의 삼각파도를 만나서 처참하게 침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인간의 신념과 사람을 우상화한 민족과 국가는 반드시 역사의 파도를 만나서 침몰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뚝이 같이 늘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잡고 계시지 아니한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반드시 인생의 파도에 휘몰려 조만간에 침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파도를 만나 침몰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사회가 역사상에 너저분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민족을 보면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했을 때 놀라운 축복을 받고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이후 독일 문학의 중심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음악이 찬송이 되고, 독일의 법과 철학이 하나님을 탐구하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문화와 철학이 온 유럽과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독일은 엄청나게 번창하고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만 그 후에 하나님을 저버리고 독일민족을 우상화하고 하나님을 중심에서 내어 쫓아 버리고 난 다음 파멸하고 말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산악 땅에 불과하던 스위스 역시 칼빈에 의해 개신교가 뿌리내린 후 세계에서 GNP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고 세계가 부러워해서 잘사는 나라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위스의 중심에 서니까 그렇게 자연자원이 없고 산악이 많은 빈약한 나라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에 한나라가 된 것입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덴마크는 오스트리아와 트루시아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기름진 땅 스룹수아 홀스타인을 다 빼앗기고 눈 서리치는 북구의 뉴트란드 반도밖에 없는 처참한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국민들은 좌절하고 낙심하고 제대한 군인들은 술주정뱅이가 되고 아가씨들은 몸을 팔아야 먹고사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럴 때 그룬트비 목사가 일어나서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는 참회운동을 일으켜 처처에 학교를 세우고 성경중심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자 100년 내에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농업국가가 되고 잘사는 나라 중에 손꼽히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역사의 파도를 만나 침몰했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자 다시 제기해 일어나서 세계적인 일등국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전성시대는 말씀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항상 성경을 옆에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경을 읽고 성경 속에 계신 하나님을 예비하고 찬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던 것이 미국인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 복음을 나누고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건립된 지 300년이 조금 넘은 오늘날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로 성장 발전하고 만 것입니다. 복음이 중심이 되면 그 나라와 대륙이 복을 받습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우리나라도 잘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 중심에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역사적인 파도, 개인적인 파도가 쳐도 우리는 침몰하지 않습니다. 옆으로 기우뚱 거리고 앞으로 뒤로 기우뚱 거려도 절대로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세상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 쉽게 파도에 휘청거리고 침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해 주고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에 섰는지 안 섰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28:12~14에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백성은 개인이나 국가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도적을 우리의 중심에 앉혀 놓으면 삼각파도를 만나서 침몰할 수밖에 없지요. 인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이 되면은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은 패하실 수 없는 무게 중심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주님을 패하실수 없는 무게 중심으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패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삶의 삼각파도가 와서 쳐도 예수님은 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면 우리 인생의 배는 절대로 침몰하거나 파멸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 조상 아담, 하와 이후로 삼대재앙, 삼대풍파를 안고서 태어난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벌써 인간은 삼대재앙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나올 때 죄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죄의 풍파를 안고 태어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산다는 저주와 가난의 재앙과 풍랑을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 몸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병들고 늙고 죽는 재앙을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곳에 살든지 어느 민족에 속하든지 태어날 때부터 벌써 삼대재앙을 안고 태어납니다. 이 삼대재앙의 풍파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죄악의 파도를 누가 피할 수가 있는 것이며, 저주와 가난과 살기 어려움의 풍파를 누가 견뎌낼 수 있습니까?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누가 피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삼대재앙, 삼대파도를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인류는 모두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 침몰하고 맙니다.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모두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버림당하고 저주가운데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어 영원히 멸망 받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 롬 5:12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이 폭풍우를 잠잠케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상징적으로 보면 누가복음 8장 24절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호수를 지나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이 전력으로 풍랑을 피하고 배를 잡으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침몰직전이었을 때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켰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눅 8:24에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인생에 풍파를 꾸짖어 잠잠케 하실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간에게 주어진 삼대재앙 일으킨 풍파를 잠잠케 해버린 것입니다. 죄악의 재앙을 그 몸으로 받아 몸 찢고 피를 흘려 청산하시고 죄악의 재앙이 가져오는 풍파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셔서 그 보혈로 모든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시고 저주의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치료와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사망을 멸한 놀라운 은 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폭풍우는 잠잠해졌습니다.
요일 2: 2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저주의 폭풍우도 잠잠해지고 만 것입니다.
갈 3:13~14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질병과 죽음의 폭풍우도 잠잠해지고 만 것입니다.
시103: 3~ 4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담이 가져온 재앙과 폭풍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가 큰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재앙은 사라지고 인생에 다가온 모든 폭풍우는 잠잠해지고 만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인생에 다가온 폭풍우를 향하여 “고요 하라!” “잠잠 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시93: 3~ 4에 보면 “야훼여 큰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보십시오. 세상에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다가온 물결이 너무나 높고 소리가 요란해도 하나님께서는 이 요란한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그 위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하여 이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셨으므로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면 죄악의 풍랑도 저주의 풍랑도 죽음의 풍랑도 우리를 침몰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승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학이 아니요, 과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우리 집의 중심이 되고 예수님이 우리 성의 중심이 되면 어떠한 풍파가 일어나도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큰 평안과 안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사망을 향하여 우리는 조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생 풍파가 안다가올 사람 누가 있습니까?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여러분 죄악의 풍파, 가난의 풍파, 질병의 풍파, 죽음의 풍파를 안 경험 할 사람이 누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든 이 풍파를 당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우리를 침몰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승리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야훼 닛시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돈이 이기지 못합니다. 권력이 이기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이기지 못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 이기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파도를 만나면 다 침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면 침몰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서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자로써 우리 중심에 와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항상 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한다.
예수님을 우리가 중심에 모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됩니다. 예수님 제일주의. 밥을 먹어도 예수님, 잠을 자도 예수님, 일을 해도 예수님, 장가가도 예수님, 시집가도 예수님, 살아도 예수님, 죽어도 예수님, 예수님 제일주의로 우리 마음이 점령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일주의가 아니면 예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므로 가장 귀한 보좌에 모시지 아니하면 주님은 오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큰 희생을 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인생에 가장 귀한 보좌 우리 중심에 모시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우리 중심에 오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 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이 중심에 서게면 모든 일은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 1:11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가로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은 아내에게 청혼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첫째이시며, 주님을 위한 일도 최우선입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나의 두 번째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의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결혼생활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도 나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결혼할 때 철저히 자기는 예수중심으로 살 것이고 아내는 자기인생에 두 번째 인생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용납하면 자기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예수 제일주의로 스펄전 목사님이 살았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설교가로서 귀하게 사용했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주님과 주님 나라를 먼저 구해야 주님이 우리 중심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한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해야지 먼저 할 것 나중하고 나중할 것 먼저 하면 만사가 휴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한 가정이 큰 불화가 일어나서 부부가 나에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그런데 남편말도 맞고 부인말도 맞아요. 남편은 하는 말이 “내가 직장에서 돌아와서 아내하고 좀 다정한 이야기도 하고 교제도 하려고 하는데 항상 부엌에서 꾸무럭거리고 내가 와서 잠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바느질하고 앉았고 ‘여보 빨리 와서 자자’고 하면 ‘먼저 자세요. 바느질 좀 해놓고요.’ 그러니 남편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언제나 집안일을 늦게 해가지고서 꾸물거리고 잠잘 시간에 남편보고 먼저 자라고 하고 자기는 꾸무럭거리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생각하기를 ‘이 여자는 나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지 나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 마음에 아주 시험이 들어서 가정을 파괴하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하는 말은 “목사님, 내가 내일 합니까? 자기일 해주지. 집이 누굽니까? 자기 집이고 가사 일은 누구 일입니까? 자기일 아닙니까? 자식들 돌보는 것 자기일 아닙니까? 내가 자기일 해주는데 빠져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먼저 자라고 하는데 왜 나에게 불평을 합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내일합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까?” 남편말도 올바른 말이고, 아내말도 올바른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부부에게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결혼 했어요? 밥 지으려고 결혼했어요? 빨래하려고 결혼했어요? 집안 소재하려고 결혼했어요? 남편하고 하나가 되어 잘살려고 결혼했잖아요. 먼저할일은 남편하고 다정하게 살 일이 먼저 할 일이요, 아무리 당신이 집안 소재를 잘하고 부엌을 깨끗하게 해놓고 빨래를 잘하고 집안일을 잘해도 남편을 등한이 여기면 벌써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남편도 무엇 때문에 사업합니까? 사업한다고 바빠서 아내를 등한이 하고 자식을 등한이 하면 목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사업을 하고 노력을 하는 것도 아내와 자식을 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닙니까?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 집에 심판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 부인보고 “집안이 엉망이 되어도 좋습니다. 부엌일을 안 하고 빨래를 안 하고 쌓아 놓아도 좋습니다. 남편이 자자면 자십시오. 남편을 먼저 섬기면 이 집안일은 모두다 오케이 행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힘이 붙여서 나 혼자 일을 못하겠으니 가사를 돕는 자를 사용해주십시오 하고 남편에게 부탁하면 기쁘게 남편이 돈을 내어서 가사를 돌보는 사람을 쓸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고 또 남편은 아내를 잘 받드는 것이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찰스 휴멜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일이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모든 일이 삐뚤어집니다. 우리가 와이셔츠를 입을 때 단추를 잘못 끼어 넣으면 위에 단추 잘못 끼어 넣으면 끝내 옷이 삐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단추를 처음부터 잘 끼워야 옷이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순순위를 잘못정하면 결국 인생의 항로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기 위해서는 예수 제일주의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제일주의로 하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는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시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주께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주님이 축복해 주시려면 순식간에 복을 주시고 주님이 바람으로 불어 버리시면 있는 것 다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예수 제일주의로 살아야 주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큰 은혜를 받았으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계명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계명이란 우리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철조망을 쳐놓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철조망을 건너가면 영육 간에 큰 상처를 입고 위험을 당할 것이니 철조망을 건너가지 말라고 쳐놓은 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계명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계명을 우리를 괴롭히려고 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항상 계명은 우리가 상처입지 않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출20: 3~17에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면은 벌써 우리는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파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우리에게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창조가 되십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남편도 아내도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조롱의 대상으로 농담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오늘 이와 같이 성수주일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말 할 필요 없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고 우리가 살 수 있습니까? “간음하지 말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을 따라 살면서 간음을 행하면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지 않습니까? 모든 다른 죄는 몸밖에 있어도 간음은 자기 몸에게 짓는 죄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나님의 물건도 도둑질하지 말고 이웃의 물건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끊임없이 이웃에 대해서 거짓증거하고 침소봉대해서 이웃을 훼방하므로 말미암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슬픔이 우리 사회에 꽉 들어차 있지 않습니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남이 잘되면 속이 쓰리고 아픈 이러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계명은 우리가 이 세상에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요, 위험해 건너가지 말라고 쳐놓은 가시넝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중심으로 살면 주님의 계명을 항상 마음속에 지키려고 애를 쓰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살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부부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멀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멀어지는 이유가 부모가 시간을 내어서 자식과 대화하고 놀아주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부모, 자식이 남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먼데 있는 사람 일가친척보다도 이웃에 있어서 서로 자꾸 만나서 대화하면 먼데 있는 일가보다도 친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찾아오시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와 대화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모시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사랑하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와 교제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먼저 교제해야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계시지요.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가장 존귀한 자로 모시고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모시고 살아야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와서 계실 것입니다.
시119:58에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간구하면 주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엡 6:17~18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석유재벌인 록펠러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자인 록펠러의 학교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밖에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44세에 미국 석유산업의 99%를 차지하는 스탠더드 석유연맹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3세에 중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5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남에게 나누어주고 구재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공익사업에 힘쓰고 기도한 결과로 건강을 회복해서 53세에 죽는다는 사람이 99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이러한 록펠러가 있기까지는 그의 어머니의 힘이 큽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러한 열 가지 유언을 유산으로 록펠러에게 남겨준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둘째,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넣어 다녀라. 넷째, 원수를 만들지 마라. 다섯째, 항상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려라. 뒷자리에 앉아 계신 분 죄송합니다. 그러나 앞자리에 와서 앉으라는 것은 열심 있게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아침에는 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 여덟째,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주라. 아홉째, 주일예배는 꼭 자기 교회에서 드려라. 열째, 아침에는 먼저 말씀을 읽어라.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면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 무게가 되어서 어떠한 파도에도 우리를 꽉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록펠러가 세계적인 재벌이 된 것은 어머니가 주신 십계명을 꼭 지키고 그 계명을 따라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중심이 되므로 초등학교 4학년 중퇴밖에 안한 그 사람이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동행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 이 자리에 계세요. 눈에 안보이지만 바람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위대한 위로자요, 선생이요, 안내자요, 변명해 주는 자요, 가르쳐 주는 자요, 우리를 교훈해 주시는 자인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항상 성령님과 동행하면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도움을 청해야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지 도움을 청하지 않는데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여 제게 오셔서 저의 마음에 슬픔을 제하여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담력을 주옵소서. 성령이여 기도하게 해주시고 성령이여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옵소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아버지와 함께 우리 중심에 영원히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제, 오늘 하루만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성령은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국에 들어가서 살 때 영원토록 성령님은 우리의 보혜사가 되셔서 같이 계신 것입니다. 보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곁에 계신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보혜사가 우리에게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의 험한 바다에 항상 풍랑을 만나게 되어도 우리 인생의 배가 파선되지 않은 그것은 예수님이 중심 무게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중심에 무게가 세상에 가있으면 해딱해딱 가벼워서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에 무게가 되어 있으면 우주보다 무거운 무게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파도야 쳐라. 바람아 불어라. 삼박파도야 와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무게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무게 중심이 되어 있으면 예수님과 함께 하면 모든 일에 이깁니다. 죄악의 파도도 이깁니다. 세속의 파도도 이깁니다. 질병의 파도도 이깁니다. 낙심과 좌절과 절망의 파도도 이깁니다. 저주와 가난의 파도도 이깁니다. 심지어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파도도 이기고 영생복락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예수, 예수 그리스도 예수보다 귀한 보배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떠한 보배도 예수보다 귀한 보배가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여러분의 생활에 중심으로 모시면 여러분은 이미 복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예수님을 저버리면 자기 인생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저버리면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서서 우리가 나가면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여! 주여! 한다고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고 예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로 우리의 삶속에 예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고 진짜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해야 되고 진짜로 말씀 읽고 기도생활을 해야 되고 진짜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며 성령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고 승리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중심으로 사는 것보다 귀한 삶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풍랑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모든 것에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풍랑에 침몰해서 멸망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침몰당한 배가 수두룩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중심으로 살면 어떠한 풍랑이 다가와도 침몰당하지 않습니다. 예수 중심으로 예수 중심으로 더욱 더욱 더욱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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