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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3: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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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앞으로 미래 세계는 어떻게 될까? 미래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정보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 1의 농업혁명, 제 2의 산업 혁명이 사람들의 생활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듯이 제 3의 물결은 사람들의 생활을 또다른 생활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화와 지방화(민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3T 즉 교통, 장거리 통신, 관광 등은 전 세계 인류의 생활양식과 문화이해를 공유하게하는 세계화의 촉진제가 될 것이고 반면에 민족마다 고유와 전통을 앞세우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185개국
인 유엔의 가입국이 21세기에는 300내지 1000개국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글로벌 패러독스(Global Paradox)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특성화, 전문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성화, 노인화, 싱글화를 말합니다. 19세기가 아이를 발견한 시대이면 20세기는 여성(우리 나라 2010 40% 직업 종사),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 집단 20%가 지배하는 세상 전문가만 대우받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기술 산업 혁명 발달과 속도화를 말합니다.
기술혁신의 사이클이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전자 자본재, 소프트웨어, 장거리 통신, 광섬유, 로봇, 세라믹스, 데이터 베이스, 정보 서비스, 유전공학들이 발달로 급속하게 기술 개발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한 해 단행본이 3만 종 이상 나오고 있고 현재는 지식의 총화가 매 5년마다 배가 가 되지만 2020년에는 73일마다 배가가 된다고 합니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가지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지극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 그것이 유익하냐 무익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유쾌하냐 불쾌하냐가 기준이 되어 행동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직장인도 직장이 끝나면 뭐 "유쾌한 것 없어"라고 유쾌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을 것이고 학생도 주부도 틈 만 나면 유쾌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말 번역으로 성경에는 유쾌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과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유쾌하게 했다는 딤후1:16절과 잠언 23:16절 말씀입니다.
헬라어 "아나 프쉬크시스"의 번역입니다. 마음이 시원함을 말합니다. 영어에서는 refreshing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플래쉬가 신선함입니다. 대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 플래쉬 맨이라고 하지요. 리는 다시, 강조하는 말입니다. 상쾌한, 산뜻한 가슴이 후련한, 신선한 뭐 그런 말입니다. 우리가 상쾌하게, 산뜻하게, 가슴이 후련하게, 신선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떻게 할 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1.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용서의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17-19).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진수 성찬을 먹는다해도 죄의 문제를 가지고는 산뜻하게 유쾌하게 상쾌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요즈음 세계 강대국 대통령과 총리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모리 총리도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소문의 진상" 이라는 잡지가 1958년 윤락가 단속에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 1학년인 그는 운동 선수로 활동하다가 몸이 아파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살았는데 윤락가에 갔다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총리는 9만 2000달러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를 위해 체포 기록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조사해 주도록 경찰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사실을 두고 보아야 할겠지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무리 권력이 있고 부와 명예가 있다고 유쾌한 삶이겠습니까?
강력한 러시아를 부르짖으며 역사의 무대에 오른 푸틴 대통령도 요즈음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 호에서 훈련 도중 11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침몰한 러시아 핵 잠수함 쿠르스크 호의 침몰 때문입니다. 침몰 그 자체 보다는 침몰 때 보여준 그의 태도째문이 아닙니까? 해군 병사들은 차가운 북쪽 바렌츠해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대통령은 따뜻한 흑해 바다에서 즐기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세계 최 강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어떻습니까? 이제 전당 대회에서 기피 인물이 되었습니다. 성추문 사건으로 자신을 지지해준 전당대회, 자신과 함께 일한 고어 후보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 순간의 쾌락입니다.
지난 10일에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4500명이나 되는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말미암아 하원의 탄핵을 받은 지 일년 반만에 된 일입니다. 일년 반만에 4500명의 목사님들 앞에서 "용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전 세계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지해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원이 나를 탄핵했습니다. 탄핵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만은 오히려 그 탄핵으로 인해서 나는 자유롭게 됐고 이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온 몸을 휩싸는 감사의 느낌을 갖습니다.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100% 진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바로 그 때에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고백이 거짓 고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베드로는 설교합니다.
1)그들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입니다. 사람 죽이고 어떻게 유쾌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17) 그런데 오늘 성경은 모르고 했다는 것입니다.
2)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기는 하였지만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18).
3)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고 유쾌한 날이 그들에게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든지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시16 : 11)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서에는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잠 23: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는 유쾌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죄를 다 토설한 후에는 진정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 중에 아직도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백하지 못하고 그 죄 때문에 고통당하며 유쾌한 삶을 살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옛날 그런 표어 있었지 않습니까? "자수하여 광명 찾자" 말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회 거의 빠지지 않는데 올해 들어와 또 한 번 실수를 하였습니다. 전화기로 벨을 울리는데 아이들이 전화기 코드를 빼놓은 줄 모르고 잤습니다. 일어나 보니 5시입니다. 얼마나 불쾌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이 나와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죄송스런 말음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에게 잘못을 고하고 나면 시원합니다. 제가 부목사로 봉사할 때 월요일 날 담임 목사님이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지 않고 제가 인도했는데 쾌종 시계를 맞추어 놓고 잤는데 그만 피곤하여 울리는 종을 눌러 놓고 잤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일어나 보니 7시가 넘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9시가 되기만 기다립니다. 담임 목사님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입니다. 9시가 되어 전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 인도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 때 담임 목사님이 "괜찮다, 그럴 수 있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감격과 해방감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실수와 잘못을 할 수 있습니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권을 주었습니다. 죄 용서받는 특권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유쾌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쾌하게 살아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천국이 임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살면서 지옥에서 사는 사람처럼 불쾌하게 살지 마십시오.
2. 우리는 믿음으로 건강을 얻어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40대 앉은뱅이가 유쾌하게 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누구에 의해 해결되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유쾌하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1)누가 근본적으로 건강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까?
(1)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 보았습니다.(11-12).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건강하게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1절에 보니 건강하게 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니까 이 광경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주목하였습니다.
(2)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건강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13-16).
2)그가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16)
예수를 믿음으로입니다. 어떻게 믿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분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13-15).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유쾌하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불쾌합니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 뿐 아닙니다. 정신적인 질병, 육체적인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달 전 일이 있어 어느 정신병동에 가보았습니다. 겉은 멀정합니다. 식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병들었습니다. 유쾌한 삶이 아닙니다. 통제를 받고 사는 삶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영적인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사는 것 같지만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은 얼마나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까? 한 때 국무총리를 지냈던 분이 경상도에 있는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답니다. 당시 우리나라 유명한 재벌 회장이 대통령에 출마했는데 그분이 가니까 큰 절을 하고 정도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고 했대요. 그 분이 그 말을 딱 믿고 내각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초기 투표 결과가 발표되어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한 때 국무총리를 한 분이 가서 점을 치니까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답니다. 동쪽으로 출근하라고 하면 멀쩡한 집 문을 놓아두고 사다리를 만들어 담을 넘어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님께 돌아와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영적인 질병으로 불쾌하게 사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을 믿고 기도하면 육체적인 건강도 정신적인 건강도, 영적인 건강도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인 건강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고 하는 사람은 평생 소원이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흥분해 있던 피터 구르퍼가 스트라디벨리우스의 바이올린을 안고서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악기를 손질하는 한 기사가 “내가 그 악기를 고쳐보겠다”고 해서 보냈더니 그 기사가 다시 악기를 잘 만져서 깜잔같이 고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친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깨졌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고침받을 수 없는 상처 투성이인 우리들, 쓸모 없던 우리들, 깨졌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이 붙잡아 주셔서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과거보다 더 좋고 더 귀한 존재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상처투성이의 우리들을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사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붙들고 의지함으로 이기며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건강을 잃으신 분이 있습니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잃으신 분이 있습니까?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건강을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야고보서 5:14-1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우리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치료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았습니다. 혈루증 앓는 자가, 문둥병자가 손마른 자가, 눈먼자가, 중풍병자가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받았습니다.
저는 오늘 날도 이런 치유의 역사가 있는 줄을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평생 동안 질병으로 불쾌하게 살지 말고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주님을 믿음으로 고침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3. 말씀대로 살아 생활에 복을 받고 유쾌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0-26).
26절을 보십시오. 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그 종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복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위하여 그 종을 다시 살려 보내 주셨 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도 빠짐없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여 그를 통해서 축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행 3:26)"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복을 받습니까? 빠짐없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 살게 하여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악한 길에서 돌아섭니까? 말씀입니다.
우리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고 그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20-21). 모세를 통하여 예언(22)하였습니다. 사무엘을 통하여(23) 아브라함을 통한 예언(25)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참으로 복받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쾌하게 사는 길입니다. 신선하게 사는 길입니다. 상쾌하게 사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내 방식대로 살면 유쾌하고 상쾌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약을 먹고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 상쾌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전 인터넷 상에 자신의 어머니를 고발한 하모양 사건을 보았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파출 소장입니다. 아버지는 고등하교 교사입니다. 어머니가 간통죄를 져질렀다고 공개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보니 남편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그분은 학생이었는데 이혼한 선생님이 학생을 건드려 징계로 전출을 가게 되었는데 그 분이 짐을 쌓주기 위해 선생님 집에 갔답니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에게 겁탈을 당하였고 그것으로 아이를 갔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구타가 너무 심해 아이가 크면 이혼을 하려고 딸이 크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겠습니까?
말씀을 떠난 삶 결코 유괘한 삶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의 삶이 유쾌하고 복스러운 삶이 될 것 같습니까? 19세기까지 인류는 자유를 찾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20세기에는 평등을 찾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박애를 찾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조금 잘 살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하였지만 지금 세계 앞에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폴 케네디는 미래 는 인구문제. 환경문제, 기술문제로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고 해도 말씀을 떠나서는 유쾌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경제 불균형은 엄청난 화약고입닏. 선진국 국민 1주일 후진국 1년 번 돈보다 많습니다. 환경 파괴는 인간의 몸과 생활 환경 오염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였지만 이제는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공허합니다. 타락합니다. 마약, 폭력, 쾌락이 지배합니다. 말씀이 없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은 지도와 같은 것입니다. 질병을 깨끗이 낳게 하는 처방전과 같은 것입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발견하게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왜 주었습니까? 신명기 10장 13절 한 번 찾아 보세요.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신명기 28장에 보십시오. 말씀대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합니다. 모든 복을 주십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자녀가 잘됩니다. 사업이 잘 됩니다. 질병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학교 다닐 때 이성 친구 사귄분들 있을 것입니다. 이성 친구가 번역을 부탁합니다. 숙제를 부탁합니다. 그 때 그 숙제를 해 주고 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상쾌하지 않습니까? 날아갈 듯하지 않습니까?
또 해줄 것 없어라고 부탁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아빠의 지시사항을 해놓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면서 매일 한가지 선행을 기록해 놓고 실천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했을 때 참으로 유쾌합니다. QT하시는 분은 그 유쾌함을 누릴 줄 믿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하루에 한 가지 말씀을 순종하려고 매모해 놓고 그것을 실천했을 때 마음의 기쁨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유쾌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쾌하게 사는 것도 사명입니다. 웃음 파업하지 마십시오. 마음에서 웃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어떻게 유쾌하게 살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세가지입니다. 유리은 소유한 만큼 유쾌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만큼 유쾌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유쾌하게 사는 비결은 성경에 있습니다.
1.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용서의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17-19).
2. 우리는 믿음으로 건강을 얻어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3. 말씀대로 살아 생활에 복을 받고 유쾌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0-26).
유쾌하게 되는 날/행3:11-26/김필곤 목사
첫째 정보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 1의 농업혁명, 제 2의 산업 혁명이 사람들의 생활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듯이 제 3의 물결은 사람들의 생활을 또다른 생활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화와 지방화(민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3T 즉 교통, 장거리 통신, 관광 등은 전 세계 인류의 생활양식과 문화이해를 공유하게하는 세계화의 촉진제가 될 것이고 반면에 민족마다 고유와 전통을 앞세우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185개국
인 유엔의 가입국이 21세기에는 300내지 1000개국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글로벌 패러독스(Global Paradox)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특성화, 전문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성화, 노인화, 싱글화를 말합니다. 19세기가 아이를 발견한 시대이면 20세기는 여성(우리 나라 2010 40% 직업 종사),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 집단 20%가 지배하는 세상 전문가만 대우받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기술 산업 혁명 발달과 속도화를 말합니다.
기술혁신의 사이클이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전자 자본재, 소프트웨어, 장거리 통신, 광섬유, 로봇, 세라믹스, 데이터 베이스, 정보 서비스, 유전공학들이 발달로 급속하게 기술 개발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한 해 단행본이 3만 종 이상 나오고 있고 현재는 지식의 총화가 매 5년마다 배가 가 되지만 2020년에는 73일마다 배가가 된다고 합니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가지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지극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 그것이 유익하냐 무익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유쾌하냐 불쾌하냐가 기준이 되어 행동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직장인도 직장이 끝나면 뭐 "유쾌한 것 없어"라고 유쾌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을 것이고 학생도 주부도 틈 만 나면 유쾌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말 번역으로 성경에는 유쾌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과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유쾌하게 했다는 딤후1:16절과 잠언 23:16절 말씀입니다.
헬라어 "아나 프쉬크시스"의 번역입니다. 마음이 시원함을 말합니다. 영어에서는 refreshing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플래쉬가 신선함입니다. 대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 플래쉬 맨이라고 하지요. 리는 다시, 강조하는 말입니다. 상쾌한, 산뜻한 가슴이 후련한, 신선한 뭐 그런 말입니다. 우리가 상쾌하게, 산뜻하게, 가슴이 후련하게, 신선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떻게 할 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1.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용서의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17-19).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진수 성찬을 먹는다해도 죄의 문제를 가지고는 산뜻하게 유쾌하게 상쾌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요즈음 세계 강대국 대통령과 총리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모리 총리도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소문의 진상" 이라는 잡지가 1958년 윤락가 단속에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 1학년인 그는 운동 선수로 활동하다가 몸이 아파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살았는데 윤락가에 갔다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총리는 9만 2000달러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를 위해 체포 기록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조사해 주도록 경찰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사실을 두고 보아야 할겠지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무리 권력이 있고 부와 명예가 있다고 유쾌한 삶이겠습니까?
강력한 러시아를 부르짖으며 역사의 무대에 오른 푸틴 대통령도 요즈음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 호에서 훈련 도중 11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침몰한 러시아 핵 잠수함 쿠르스크 호의 침몰 때문입니다. 침몰 그 자체 보다는 침몰 때 보여준 그의 태도째문이 아닙니까? 해군 병사들은 차가운 북쪽 바렌츠해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대통령은 따뜻한 흑해 바다에서 즐기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세계 최 강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어떻습니까? 이제 전당 대회에서 기피 인물이 되었습니다. 성추문 사건으로 자신을 지지해준 전당대회, 자신과 함께 일한 고어 후보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 순간의 쾌락입니다.
지난 10일에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4500명이나 되는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말미암아 하원의 탄핵을 받은 지 일년 반만에 된 일입니다. 일년 반만에 4500명의 목사님들 앞에서 "용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전 세계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지해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원이 나를 탄핵했습니다. 탄핵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만은 오히려 그 탄핵으로 인해서 나는 자유롭게 됐고 이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온 몸을 휩싸는 감사의 느낌을 갖습니다.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100% 진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바로 그 때에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고백이 거짓 고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베드로는 설교합니다.
1)그들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입니다. 사람 죽이고 어떻게 유쾌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17) 그런데 오늘 성경은 모르고 했다는 것입니다.
2)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기는 하였지만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18).
3)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고 유쾌한 날이 그들에게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든지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시16 : 11)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서에는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잠 23: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는 유쾌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죄를 다 토설한 후에는 진정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 중에 아직도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백하지 못하고 그 죄 때문에 고통당하며 유쾌한 삶을 살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옛날 그런 표어 있었지 않습니까? "자수하여 광명 찾자" 말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회 거의 빠지지 않는데 올해 들어와 또 한 번 실수를 하였습니다. 전화기로 벨을 울리는데 아이들이 전화기 코드를 빼놓은 줄 모르고 잤습니다. 일어나 보니 5시입니다. 얼마나 불쾌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이 나와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죄송스런 말음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에게 잘못을 고하고 나면 시원합니다. 제가 부목사로 봉사할 때 월요일 날 담임 목사님이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지 않고 제가 인도했는데 쾌종 시계를 맞추어 놓고 잤는데 그만 피곤하여 울리는 종을 눌러 놓고 잤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일어나 보니 7시가 넘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9시가 되기만 기다립니다. 담임 목사님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입니다. 9시가 되어 전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 인도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 때 담임 목사님이 "괜찮다, 그럴 수 있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감격과 해방감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실수와 잘못을 할 수 있습니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권을 주었습니다. 죄 용서받는 특권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유쾌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쾌하게 살아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천국이 임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살면서 지옥에서 사는 사람처럼 불쾌하게 살지 마십시오.
2. 우리는 믿음으로 건강을 얻어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40대 앉은뱅이가 유쾌하게 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누구에 의해 해결되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유쾌하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1)누가 근본적으로 건강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까?
(1)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 보았습니다.(11-12).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건강하게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1절에 보니 건강하게 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니까 이 광경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주목하였습니다.
(2)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건강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13-16).
2)그가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16)
예수를 믿음으로입니다. 어떻게 믿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분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13-15).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유쾌하게 살기가 힘이 듭니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불쾌합니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 뿐 아닙니다. 정신적인 질병, 육체적인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달 전 일이 있어 어느 정신병동에 가보았습니다. 겉은 멀정합니다. 식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병들었습니다. 유쾌한 삶이 아닙니다. 통제를 받고 사는 삶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영적인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사는 것 같지만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은 얼마나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까? 한 때 국무총리를 지냈던 분이 경상도에 있는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답니다. 당시 우리나라 유명한 재벌 회장이 대통령에 출마했는데 그분이 가니까 큰 절을 하고 정도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고 했대요. 그 분이 그 말을 딱 믿고 내각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초기 투표 결과가 발표되어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한 때 국무총리를 한 분이 가서 점을 치니까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답니다. 동쪽으로 출근하라고 하면 멀쩡한 집 문을 놓아두고 사다리를 만들어 담을 넘어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님께 돌아와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영적인 질병으로 불쾌하게 사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을 믿고 기도하면 육체적인 건강도 정신적인 건강도, 영적인 건강도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인 건강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고 하는 사람은 평생 소원이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흥분해 있던 피터 구르퍼가 스트라디벨리우스의 바이올린을 안고서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악기를 손질하는 한 기사가 “내가 그 악기를 고쳐보겠다”고 해서 보냈더니 그 기사가 다시 악기를 잘 만져서 깜잔같이 고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친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깨졌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고침받을 수 없는 상처 투성이인 우리들, 쓸모 없던 우리들, 깨졌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이 붙잡아 주셔서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과거보다 더 좋고 더 귀한 존재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상처투성이의 우리들을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사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붙들고 의지함으로 이기며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건강을 잃으신 분이 있습니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잃으신 분이 있습니까?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건강을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야고보서 5:14-1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우리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치료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았습니다. 혈루증 앓는 자가, 문둥병자가 손마른 자가, 눈먼자가, 중풍병자가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받았습니다.
저는 오늘 날도 이런 치유의 역사가 있는 줄을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평생 동안 질병으로 불쾌하게 살지 말고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주님을 믿음으로 고침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3. 말씀대로 살아 생활에 복을 받고 유쾌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0-26).
26절을 보십시오. 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그 종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복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위하여 그 종을 다시 살려 보내 주셨 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도 빠짐없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여 그를 통해서 축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행 3:26)"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복을 받습니까? 빠짐없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 살게 하여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악한 길에서 돌아섭니까? 말씀입니다.
우리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고 그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20-21). 모세를 통하여 예언(22)하였습니다. 사무엘을 통하여(23) 아브라함을 통한 예언(25)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참으로 복받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쾌하게 사는 길입니다. 신선하게 사는 길입니다. 상쾌하게 사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내 방식대로 살면 유쾌하고 상쾌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약을 먹고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 상쾌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전 인터넷 상에 자신의 어머니를 고발한 하모양 사건을 보았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파출 소장입니다. 아버지는 고등하교 교사입니다. 어머니가 간통죄를 져질렀다고 공개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보니 남편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그분은 학생이었는데 이혼한 선생님이 학생을 건드려 징계로 전출을 가게 되었는데 그 분이 짐을 쌓주기 위해 선생님 집에 갔답니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에게 겁탈을 당하였고 그것으로 아이를 갔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구타가 너무 심해 아이가 크면 이혼을 하려고 딸이 크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겠습니까?
말씀을 떠난 삶 결코 유괘한 삶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의 삶이 유쾌하고 복스러운 삶이 될 것 같습니까? 19세기까지 인류는 자유를 찾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20세기에는 평등을 찾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박애를 찾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조금 잘 살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하였지만 지금 세계 앞에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폴 케네디는 미래 는 인구문제. 환경문제, 기술문제로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고 해도 말씀을 떠나서는 유쾌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경제 불균형은 엄청난 화약고입닏. 선진국 국민 1주일 후진국 1년 번 돈보다 많습니다. 환경 파괴는 인간의 몸과 생활 환경 오염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였지만 이제는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공허합니다. 타락합니다. 마약, 폭력, 쾌락이 지배합니다. 말씀이 없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은 지도와 같은 것입니다. 질병을 깨끗이 낳게 하는 처방전과 같은 것입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발견하게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왜 주었습니까? 신명기 10장 13절 한 번 찾아 보세요.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신명기 28장에 보십시오. 말씀대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합니다. 모든 복을 주십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자녀가 잘됩니다. 사업이 잘 됩니다. 질병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학교 다닐 때 이성 친구 사귄분들 있을 것입니다. 이성 친구가 번역을 부탁합니다. 숙제를 부탁합니다. 그 때 그 숙제를 해 주고 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상쾌하지 않습니까? 날아갈 듯하지 않습니까?
또 해줄 것 없어라고 부탁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아빠의 지시사항을 해놓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면서 매일 한가지 선행을 기록해 놓고 실천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했을 때 참으로 유쾌합니다. QT하시는 분은 그 유쾌함을 누릴 줄 믿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하루에 한 가지 말씀을 순종하려고 매모해 놓고 그것을 실천했을 때 마음의 기쁨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유쾌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쾌하게 사는 것도 사명입니다. 웃음 파업하지 마십시오. 마음에서 웃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어떻게 유쾌하게 살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세가지입니다. 유리은 소유한 만큼 유쾌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만큼 유쾌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유쾌하게 사는 비결은 성경에 있습니다.
1.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용서의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17-19).
2. 우리는 믿음으로 건강을 얻어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3. 말씀대로 살아 생활에 복을 받고 유쾌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0-26).
유쾌하게 되는 날/행3:11-26/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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